삶의 '안락함'을 위해 내가 희생한 것들
버지니아 울프는 18세기 중간계급 여성 작가들의 출현을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울프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의 출현이 가능했다고 생각했다. 울프의 생각처럼 요즘 같이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부카(VUCA) 시대*에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기 위해 여성들이 참여하는 활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침전하는 외로운 작업이 아니다. 모임에 참석하고, 타인과 교류하고 함께 에세이를 집필하는 일련의 과정 모두가 글을 쓰는 작업 중의 일부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
현모양처의 꿈
여성은 글을 쓸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자아의 형상을 상상하고, 거기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지 않다. 나 또한 그랬다. 남편이 자기는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르니 나보고 60살까지 다니라고 간절히 애원했던 유명 기저귀 회사 Y는 아이를 돌보겠다는 이유로 관뒀다. 제발 2020년까지만이라도 안 되겠냐며 친절히 회사 근처로 주거지 이동까지 고려해가며 나를 설득하던 그였다. 그는 맞벌이에 대한 일종의 로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무참히 깨버리자 적잖이 나에게 실망한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나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린 시절에는 몰랐다. 회사를 관두고 어린 시절 못 이룬 내 꿈을 이뤄보고 싶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 바깥일(?) 하시는 남편을 도와 내조하는 일, 아무리 쓸고 닦아도 티도 안나는 집안일, 양가 경조사를 챙기는 일 등은 요즘 말로 '핵노잼'이었다. 그때 사랑하는 나의 배우자분께서는 우리 집의 불평등 늑약을 하나 체결하셔서 자신은 회사일에만 집중할 테니, 모든 집안일은 나에게 넘기자고 했다. 나는 수긍했다. 그 정도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도망쳐 가정으로 숨은 것은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내가 선택한 장소에서 내가 뱉은 말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설거지와 다림질
울프가 생각한 '자기만의 방'은 여성 홀로 틀어박혀 있는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자기만의 방'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 그 방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온갖 종류의 집안일 중 제일 싫은 것 하나만 고르라면 바로 설거지다. 요리는 종종 즐겨하나, 설거지는 최악이다. 집안 대청소를 할 때도 제일 마지막까지 미루는 것, 밥을 먹고도 바로 하지 않고 잠시 쉬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하는 것이 바로 '설거지'이다. 다림질도 그렇게 즐겨하는 편은 아닌데 (아, 어쩌면 나는 모든 종류의 집안일을 안 좋아하나 싶다) 요즘은 아침의 루틴이 되었다. 매일 아침, 나는 출근하시는 남편님의 와이셔츠와 바지를 경건하게 다린다. 맞벌이할 때는 그가 나에게 감히 말도 못 꺼낸 일이지만, 회사를 관두고 나의 상태가 '전업주부'로 바뀌면서 나에게 넘어온 tasks 중 하나이다. 와이셔츠 깃을 똑바로 하라는 둥, 목 떼를 깨끗하게 해 달라는 둥 요구사항이 좀 까다롭지만 묵묵히 근 4년을 해오고 있다. 이제는 한 10분이면 마치 세탁소에서 갓 나온 것처럼 능숙하게 다림질을 한다. 이렇게 습관이 무섭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협업과 연대
끊임없이 자기 일과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여성들에게는 개방적이고 따뜻한 협업과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와 글쓰기는 이러한 연대를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이다. 울프는 여성 작가가 자립하기 위해 1년간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환산하면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 여성이 독립적인 자신의 삶을 유지할 만한 재정 상태를 갖추라는 것이다.
경제적 독립과 여성 해방을 위한 길
내 돈 내산 플렉스, 자신의 취향을 선택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 위해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결혼, 임신, 출산 등 다양한 이유로 일을 지속하지 못한 여성들에게 소리 내어 말하고 싶다. 나 또한 그 지옥 같은 터널을 지나왔으니 우리 같이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지난 주말에 며칠 뒤면 곧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나를 위해 '자기만의 방'을 선물했다. 사회로의 재진출과 앞으로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나를 위한 서재를 마련했다. 몇 년 동안 숨 죽인 채 부엌 찬장 구석에 처박혀있던 모든 책들을 꺼냈다.
몇 년 간 남편과 벌인 '책과의 전쟁'으로 인해 마음 상한 일이 많았던, 숨겨온 내 취향을 세상 밖으로 드러낸 일이라 감회가 새롭다. 이 집에서 딱히 정해진 내 방은 없지만, 그래도 거실 한편에 차곡차곡 쌓인 책들을 보며, 가끔 두 남자에게 깊은 '빡침'이 올라올 때마다 위로를 받을 예정이다. 아이와 남편을 무사히 학교와 회사에 보내고 소파와 혼연일체 되어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들고 누워서 커피를 마시는 자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갑자기 써놓고 보니 앤서니브라운의 돼지책이 떠오르는 것은 뭐지. 이 아늑하고 편안한 안락함을 위해 나는 오늘도 설거지와 다림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