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일기 5 카페인1
커피 순정
누군가 삶에서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게 무어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단연코 '커피' 일 것이다. 탈출을 결심한 지금도 지고지순하게 사랑을 바치고 있는 커피.
내 평생의 절반은 커피와 함께였다. 어릴 적 손님이 오면 내오던 ‘커피, 프림, 설탕’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등장한 커피믹스를 맛보게 되었다. 그 달콤 쌉쌀한 맛에 반해서 본격적으로 커피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건 중학생 시절. 물론 그때만 하더라도 캔커피 혹은 커피믹스에 우유를 타 마시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어른들이 마신 '블랙' 커피는 아직 어린애 입맛이었던 내게는 너무 먼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왠지 '차가운 도시의 여자'가 마셔야 할 것 같은 이미지였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니까, 성장기 아이들은 키가 안 크니까 등등으로 금지된 탓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몰래 커피믹스를 하나씩 까 마셨다. 금지된 것에 대한 소소한 반항심도 한몫했을 테다.
커피전문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 카페라테, 카페모카 등의 메뉴를 알게 되었으며, 프랜차이즈 카페로 내 ‘커피 반경’은 확장되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 앞 상권이 레드오션인 탓에 생기고 스러지는 수많은 카페들을 등하교와 공강 시간을 이용해 탐방했다. 방학 땐 부산에서 서울로 남들이 ‘인생 커피’라고 칭하는 카페를 찾아가서 빈 속에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켜 두 잔 부어 넣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졸음퇴치용 아메리카노부터 천사의 눈물이라 불리는 더치, 부드러운 연유나 달고 고소한 바닐라 시럽을 넣은 라테, 상큼한 향미의 카페 로마노, 부드럽고 단 크림을 올린 (요즘은 아인슈페너란 이름으로 더 유명한) 비엔나커피… 등. 다양한 커피 메뉴를 섭렵하고 다녔다. 한 달가량이었지만, 커피머신을 다루는 법과 핸드드립을 따로 배운 적도 있었다. 가정용 더치 기계를 사서 한 방울 똑 똑 떨어지는 커피를 기다리기도 하고, 모카포트로 끓인 커피의 맛도 사랑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로스팅 전문 카페에서 원두를 직접 골라 사서 핸드 드립해 먹을 수준에 이르렀다. (tmi. 최근 발견한 존맛 원두는 브라질 옐로우 버번. 참고로 나는 산미가 적은 커피를 선호한다.) 이처럼 나는 커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랬던 내가 어느날 커피를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