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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 Pul Mar 30. 2024

니체 씨, 오늘은 안녕한가요?_ 글쓰기

# 24 -  글쓰기의 이유

# 24 – 글쓰기의 이유

     

 “나는 이 세상의 인간을 찬성한다. 다시 한번 모순된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가당착에 빠진다. 모순은 세상의 법칙이며, 그로부터 그 두 단어를 탐험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간에 찬성한다. 인간을 다루는 일은 지루하지 않다. 지구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니까. 긍정적인 영웅이라니, 그건 안 될 소리다. 절대, 절대 등장시켜선 안된다. 그런 건 사람들이 읽다가 집어치울 것이다. 멋진 악당이 낫다.”(182쪽)     

 

인간을 인정하되(찬성하고) 인간은 자가당착에 빠지고, 세상은 모순투성이라는 진단은 니체의 목소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니체의 말이 아니라 프랑스 작가의 소설 한 구절이다.


 80 넘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클로디 윈징게르의 <내 식탁 위의 개>는 반(半)자서전적 소설이다(아니, 온전한 자서전인가?). 작중 ‘여성’ 소설가 소피와 남편 그리그는 윈징게르 부부의 삶을 닮았다. 학대받은 개 예스는 실제인지 창작인지 모르겠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인용한 문장을 읽고 난 후 노트에 적은 내 글.


 “인간은 태어날 때 폭삭 늙었으면 좋겠다. 성장하면서 점점 젊어지는 거다(이게 진짜 성장 아닌가?). 그리고, 죽을 때는 아기가 되는 것. 이것이 사람의 일생이라면?(죽을 때면 누구나 아기처럼 무능력해지지 않던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하여튼 적었다. 

 나에게 좋은 책이란 지식을 더하는 책이 아니다. 문장을 읽으며 더 생각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나만의 생각을 한 단어라도(문장이면 더 좋고) 적게 만드는 책이 내게는 ‘좋은 책’이 된다. 책 읽을 날이 많지 않은데, 글 쓸 세월 또한 길지 않을 텐데 지식을 더할 필요 없고, 그저 재미만 있어도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그런 건 쉰 살 50 안쪽에서 할 일).     


 “그렇게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이 우리 종(種) 안에 격리된 존재, 즉 다른 종들과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우리는 그들과 다르긴 하지만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가 인간에 속한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지극히 제한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그보다 훨씬 광대한 존재다.”(179-180쪽)     


 그러니까 인간은 숲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이나 동물과 분리된 종이 아니란 거다. 동식물과 동일한 종으로서의 인간임을 자각할 때 인간은 비로소 광대한 존재가 된다는 자연주의자 소설가의 말이 뜻있게 다가온다. 


 작가가 소개하는 각종 동물과 식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무식이 순간순간 암담하게 만든다. 툭툭 던지는 메모 형식의 글은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꾸역꾸역 읽는 것은 제 몸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존재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 바라보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노 작가의 자의식이 부러워서였다.


 밤새워 글을 쓰는 소피를 보고 남편 그리그가 말한다.

 “읽는 사람도 없는 글을 왜 써? 책방이 자꾸 없어지는데 책은 왜 내려고 해?”


 책 읽기가 삶 그 자체인 그리그의 소망은 무덤에 흙 대신 책을 덮는 것. 평생 그랬듯이 죽어서도 읽은 책, 아직 읽지 못한 책에 갇히는 것. 

 세상에 이런 사람이 실제 한다고 믿기 때문에 힘을 끌어모아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그저 글 쓰는 것밖에 몰라서 글을 쓴다, 이 시골에서. 그뿐.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절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이다, 희망. 니체 씨 역시 독자 한 사람 없어도 희망으로 글을 썼지, 절망으로 글은 쓴 건 아니잖은가.      

 

윈징게르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로도 나는 끄떡없이 글을 쓴다.”     


 * <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민음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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