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17 / 때론 원수보다 못한 가족
서른 중반의 여성.
“엄마 아빠가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아빠 때문에 정말 모든 게 힘들고 두렵고 무서워요. 이젠 저를 죽일 것 같아요. 저는 30년간 아빠라고 부른 적 없고, 대화를 1분 이상 한 적이 없어요. 구박만 받고 자랐어요. 밥을 먹으면 환장하게 처먹는다고 해요. 밥을 안 먹으면 몰래 뭘 처먹어서 그런다고 해요. 밥을 먹을 수도 없고 안 먹을 수도 없어요. 이름을 불러준 적 없어요. ‘썩을 년’ ‘죽일 년’이 제 이름이에요.”
그녀의 하소연은 아버지의 사채, 경매, 바람피우기 등의 단어로 이어지다가 결국은 ‘죽고 싶어요’로 끝난다.
서른몇 살의 남성.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가 여덟 살 때 엄마는 두 살 위의 누나와 함께 집을 나갔다. 그에게 단 한마디도 없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늘 술을 마셨고, 취한 상태에서 엄마를 구타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마디 위로의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 엄마.
특수 폭력으로 구속된 그는 더 안 좋은 죄명으로 여러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다. 첫 상담에서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지난 과거를 들려주었다. 두 번째 상담에서 엄마에 대해 질문하자 단박에 날 선 목소리로 엄마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고 쐐기 박듯이 소리 지른다.
“그년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위로와 격려의 상담을 여러 차례 진행하자 그제야 “엄마가 보고 싶어요”하며 통곡한다.
스물여섯의 남성.
“엄마에게 엄청 맞았어요. 다섯 살 때부터. 그 어린애가 잘못을 했으면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겠어요? 빗자루로 마구 후려치던 기억이 생생해요. 조금 커서 왜 때리느냐고 덤빈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엄마는 씨익 웃으며 ‘너는 맞아야 사람이 돼’하며 청소기 쇠파이프로 때렸어요. 그때 내 친구들도 집에서 매일 이렇게 맞는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때부터 엄마 아버지를 죽이는 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어요. 아버지요? 엄마를 한 번도 말린 적이 없으니까 엄마와 똑같죠. 지금은 집을 나와 알바해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두 사람을 찾아가서 꼭 물어보고 싶어요. 왜 그렇게 때렸느냐고. 나는 지금도 그걸 이해 못해요.”
부모가 뭔지, 가족이 뭔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나오는 정답 말고 이들에게 들려줄 가족의 의미 말이다, 등짝을 때려주고 싶은 인간이 한둘이 아니지만 등짝 때려서 해결할 수 있다면 차라리 좋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