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18 /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거늘
파울로 코엘뇨의 소설에서 스물넷의 베로니카는 죽기로 결심한다. 네 통의 수면제를 한 알 한 알 세면서 삼킨다. 그녀가 죽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삶이 너무 빤하기 때문이다. 한창 젊은 그녀에게 앞으로 노쇠와 질병만 있을 뿐. 사라져 가는 친구들과 고통의 위험이 날로 더 커질 것인데 뭣 하러 더 사는가.
둘째,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나 식량 사정, 환경오염 등 모든 게 더 악화될 세상에서 자신은 점점 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갈 것이 확실하다.
베로니카뿐 아니라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 가운데 이 두 가지 이유를 대는 경우가 많다. 흙수저에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앞날이 빤하다, 장애가 있다, 불치의 병이다, 왕따를 당해 관계가 어렵다 등등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더러는 자기를 ‘학대’한 가족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살을 꿈꾸기도 한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백 가지 있어도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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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족의 슬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자살은 하면 안 된다, 삶은 소중합니다, 라는 소리를 하는데 그 어디에서도 ‘내’가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 나를 위한 이유 말이죠. 어차피 자살은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상처 받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 되는 게 없지요. 오직 나만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에게는 지속되는 삶이란 그냥 조금 더 많은 고뇌와 갈등의 시간뿐입니다. 미래가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 너무 많습니다. 압니다.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 그런데 그걸 이루면 뭐가 달라지는 거지요?
사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알아요. 절대 그렇게 못 된다는 거.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래서 평생 제가 이루지 못할 것들을 위해 애만 쓰다 죽겠죠. 만약 이룬다고 해도 너무 늙었을 겁니다. 이룬 걸 누려보지 못한 채 죽겠죠.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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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뇨는 베로니카에게 확신을 심어준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확신 말이다. 죽으면 마침내, 자유, 영원히, 망각이라는 것이라는 확신. 이 또한 대부분의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의 로망 아닌 로망이다. 죽으면 끝!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겁니다. 아니라고 하지 마세요. 그건 협박입니다. 내가 꿈꾸는 건 더 이상의 고통이 없는 세상, 영원히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
우울증을 앓는 서른둘의 이 여성은 코엘료의 말에 적극 동의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 정말 아무도 모른다. 천국, 극락에 더하여 부활과 윤회를 믿어도 죽음의 다음 페이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런데도 ‘마침내 자유’ ‘영원히 망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죽으려고 한강에 나갔다가 무서워서 되돌아 왔다는 스무 살의 여성. 그녀야말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더니 마지막에는 함께 죽을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간단하게 대답한다. “죽음이 두려워서요.”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면 죽음 또한 삶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서둘러 이별할 것도 없다. 서두르지 않아도 죽음은 온다. 그날까지 해보고 싶은 것을 힘껏 해보는 것이, 누려보는 것이 삶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