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짝을 딱! 때려주고 싶어
19. 거짓의 삶, 진실의 삶 중 어느 것?
남 비위 맞추며 산 것이 반이 넘고 /
나한테 거짓말한 것이 반이 넘는다.
공광규 시인의 <자화상> 시 한 부분이다. 자조적으로 말한 것 같지만 사실 남 비위 맞추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기껏 비위 맞춘다고 했는데 상대가 비웃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 진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는 그런다. ‘거짓말을 하려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진실을 알아야 거짓말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진실도 모르고 하는 거짓말은 거짓말도 아니다. 뭔지도 모르고 떠드는 횡설수설에 불과하다.
부르한 쉰메즈의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가난하고 핍박받는 마을 사람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자기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타나 자기가 마을 사람들이 기다려온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하니까 벽이 말하면 그게 증거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가 벽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예언자냐고. 벽이 말했다.
“그는 가짜다.”
재소자 상담을 하다 보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죽어도 결백하다고 한다. 모함을 받았다고 한다. 판검사가 사건 기록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이 따위 판결이 났다고 화를 낸다.
상담원은 그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단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무죄 주장에 섣불리 손을 들어줄 수 없지만 ‘그러냐’고 일단 그의 말을 ‘접수’한다. 그것만 해도 상대의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다. 그에게는 모든 게 불신이므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 해도 적지에서 아군을 얻었다는 심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식구 중의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그러냐’고 일단 수긍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으로 진도를 나갈 수 있다. ‘뭐가 힘드냐’ ‘다른 사람도 다 힘들다’고 하면 그 즉시 대화가 끊기고 벽이 생긴다.
벽이 생기면 거짓도 생긴다. 진심을 숨기는 것, 감정을 속이거나 속에 있는 것을 다 말하지 않은 것도 결국은 거짓이다. 거짓의 바탕 위에서는 뭔가를 쌓을 수 없다. 쌓는다 해도 가짜다. 가짜는 위태롭다.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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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무래도 우울증 치료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높은 층에 삽니다. 뛰어내리고 싶지만 저를 걱정해주시는 부모님 때문에 겨우 참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제가 멀쩡할 겁니다. 대기업에 다니고, 부모님 사랑도 많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있습니다. 이런 좋은 상황이 저에게는 더 끔찍합니다.
객관적으로는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만약 자살하면 저를 미친놈 취급할 겁니다. 그런 평가를 받는 건 싫습니다. 하여튼 저는 당장 죽고 싶습니다. 원인은... 모르겠어요. 아마 열다섯 살 때부터인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무조건 죽고 싶었어요.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어요. 그다음부터는 더 확실하게 죽고 싶어졌어요. 외할아버지의 DNA 때문일 겁니다.
제 감정이나 생각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어요. 아닌 척, 모른 척하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제 감정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을 지경이 됐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나름 죽음을 이겨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네요. 그건 이겨낸 것이 아니라 저를 속인 것이었다고. 저는 그때 망가졌던 겁니다. 그 결과 지금은 한없이 우울해지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입니다. 긴 잠을 잤으면 합니다. 자신을 죽이는 이 상황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요. 그러나 또 걱정이 드네요. 제 스스로 제 목을 조르고 있었을까 봐요. 호르몬 문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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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삶은 어느 정도 진짜일까. 상대가 싫더라도 말하지 않고, 남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어주고, 더러는 진심을 속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기술일까.
거짓말,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