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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Aug 11. 2020

긴 장마의 우울감

코로나 블루보다도  깊은

축축하다. 모든 것이.


오늘 아침에 또 그새를 못 참고 내리고 있는 비를 보니, 이제는 절망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바다 가까이 있는 우리 집을 둘러싼 것이 퍼붓는 비인지, 밀려든 해무인지, 먼지와 온갖 잡것들이 뒤섞인 것인지, 그것은 매일 아침 창 밖에서 내 실망한 표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위협적으로 사면을 옥죄었다가, 조금 물러났다가. 호흡하는 생명체처럼, 흐리고 축축한 숨을 길게도 내뿜는다.

주말마다 돌리는 빨래는 주중 내내 말려도 말려도 원래 뭔가 냉감이 있는 소재였던 것처럼, 시원함과 촉촉함 사이의 어디쯤에서 계속 머무르다가 결국 냄새가 나고. 침구와 옷가지는 집안의 습기를 모두 흡수해 쿰쿰하고 무겁다. 벽 한쪽에 걸려있는, 제주의 노을 타는 해변이 담긴 종이 포스터도 울룩불룩해지고. 그래 제주도는 이놈의 습기 때문에 사람이 미쳐버린다는데. 

제습기가 있었으면 간단히 해결되었으려나. 그걸 또 안 사고 버틴 내가 미련스럽기도 하고. 



무기력하다. 모두. 


코로나에 익숙해지면서 그래도 산책도 다니고, 아직 할 수 없는 것들은 많아도 원체 단조로웠던 일상이라 괴로운 정도는 아니었는데 축축 처지는 날씨에 무기력이 하루하루 깊어진다. 산책으로 코로나 블루를 겨우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퇴근 후에는 백해무익한 유튜브 채널을 프리미엄으로 무한정 재생하다가 갑자기 기습하는 1일 1피터슨 영상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가 그렇게 폰을 쥐고 눈을 감기 전까지. 

날씨가 좋으면 맥주집에서 시원하게 맥주라도 한 잔 마시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보면서 기분도 날텐데. 이 비를 처뚫고 나가서 맥주를 마신다는 것도 참 알콜중독 같고.


2020년에 계획했던 것이 참 많았는데. 

무엇보다도 뉴욕에 가려고 했고, 그래서 회화 공부도 좀 열심히 하려고 했고.. 이젠 너무 멀어졌지만.

언제 8월이 되어버린 것인지. 

다 같이 공평하게 2020년을 한번 더 살 수는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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