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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4. 2021

슬픈 엄마여도 괜찮아

토닥 토닥 내 마음

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버텨왔던 것일까? 작년 1년을 버텼다. 아이 네 명의 끼니를 챙기고 학습을 도우며 기꺼이 나를 내려놓고 온전한 '엄마'로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내 시간 없음'이 나를 우울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기도 하고 육아 갑갑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과 처지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시간을 꾸리는 법을 조금씩 터득해 나갔다.


그렇게 작년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올 3월 아이들이 각자 삶의 터전으로 갔다. 그 시간이 오기 한 달 전부터 난 다시 찾아올 '혼자의 내 시간'을 이런저런 상상들로 채워 넣으며 셀렘과 기쁨을 만끽했다. 밤 잠을 설쳐가며 하고 싶은 일들을 일기장에 채워 넣으며 혼자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진짜 그날이 왔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수 없었다. 1년 동안 고생한 보상이라 여기며 그 시간 안에서 행복을 누렸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가 지금까지  비교적 잠잠하던 내가 사는 동네까지 잠식해 들어온 것이다. 한 업체에서 쉰 명의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학교는 다시 멈추었다. 어린이집은 물론이고 말이다. 다행히 코로나의 학교 전파는 확인되지 않아 발생 삼일째부터 다시 학교에는 갔으나 다시, 내 삶 속으로 파고든 아이들이 내 삶을 흔들어 놓기에 이틀이란 시간은 충분했다.

1년을 버텼는데 이틀 만에 난 정말 무너져버린 것이다. 한 명의 유아를 돌보면서 세 명의 학생의 온라인 학습을 보조하는 것. 그 아이들의 배를 채워 줄 끼니와 간식을 챙기는 일. 그 중대한 일 앞에서 난 비틀거리고 있었다.



주말이 되자 이내 난 마음까지 우울해져서 내 삶에서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해도 신경질이 나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넷째가 자꾸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도 너무 싫어 귀를 막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뭔가 기분 전환이 필요한데 난 '엄마'라는 틀 안에서 옴짝 달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는 이번 주가 시작되었을 때도 난 기분이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전과 같은 열정과 활기가 내 삶에서 사라진 상태였다.  다시 내 시간이 왔는데도 난 풀이 죽어있었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들은 내게 여전히 귀찮은 존재였고 나는 자꾸만 혼자 있는  시간을 갈망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혼자는 있게 되었을 때는 난 자꾸 나 자신의 '엄마 됨'을 검열하며 자책과 반성 사이를 다급하게 오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쩌자고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한 내게 아이들 네 명이나 주셨을까, 하며 눈시울을 붉히다  네 명이나 주신 것이 축복이지, 하며 감사로 급하게 마음을 다독였다.


늘 엄마는 씩씩해야 하고 밝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슬프고 우울한 엄마는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 여겼다. 이번에는 우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했다.  어떻게든 그 감정을 이겨내고 떨쳐내야겠다고 이를 악물고 버티지 않고 그냥 슬픔과 우울도 자연스러운 것이려니 하면서 그 슬픔을 안은 채 묵묵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했다.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산 길 걷기...

눈물 왕창 쏟아내는 슬픈 영화 보기....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책 읽기....

나만을  위해 맛있는 음식 정성스럽게 차려 대접하기...

시간이 흐르자 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아이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혼자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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