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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Oct 25. 2021

엄마도 처음부터 다정다감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

네 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오늘도 민찬이는 똥을 한 바가지 쌌다. 황금 색깔 똥은 엄마를 기쁘게 한다. 서둘러 물을 준비하고 아이 목욕시킬 준비를 했다. 목욕을 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다섯 살 셋째가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셋째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야 신민유 지금 문 열면 어떡해?

너 들어오지 마!!!"


손이 더 바빠졌다. 최대한 신속하게 목욕을 마쳤다. 셋째가 베란다 문을 여는 바람에 찬 공기까지 들어와 감기에 걸릴까 걱정이 되었다. 서둘러 옷을 입히고 아가를 안았다. 그제야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베란다 창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는 셋째가 보였다. 순간, 날벼락을 맞은 셋째의 얼굴은 슬픔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아참 내가 왜 아가 씻기고 있을 때  문을 열면 안 되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았구나'


왜 엄마가 갑자기 화를 냈는지 저 어린아이가 알기나 할까?....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갑자기 소리 지르고 화내서 미안하고 무안했다. 얼른 창문을 향해 셋째에게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들어오는 셋째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셋째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왜 엄마가 화가 났는지 다 알고 있는 표정을 하고 죽을죄를 지은 죄인의 모습을 하고 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상황 파악을 다 할 만큼 우리 아이가 많이 자랐구나...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집 막내였던 아이다. 그 아이의 눈물을 보니 좀 전의 나의 불같은 화냄이 더 미안하게 느껴진다. 셋째에게 바로 사과했다.


"엄마가 갑자기 소리 질러서 미안해. 민찬이 목욕하느라 옷을 다 벗겼는데 갑자기 네가 베란다 문을 여니까 엄마가 너무 화가 났나 봐. 미안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민유는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알았다고 대답하며 동생을 안아주었다.   




삶이 전투다.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치우고 치우고 또 치우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다 지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으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눈에서 흐르는 그 물을 막둥이가 기어와 손으로 매만진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엽고 사랑스러워 눈물을 흘리면서 웃어버린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오후 5시에 난 분명 다정한 엄마였다. 아이들이 잠드는 10시가 가까워질수록 난 점점 사나운 엄마가 되어간다. 나도 내가 무섭다. 퇴근 시간은 늦은 남편은 늘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내 모습만 볼 때가 많다. 억울하다. 나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거의 많은 시간 동안 엄마는 자주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냈고 남편은 끊임없이 다정다감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일곱 살 둘째 녀석은 "엄마는 속이 좁고 아빠는 속이 넓어."라고 말하면서 내 속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동동거리며 돌봄과 가사 노동을 하는 몸뚱이는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속에서는 '난 왜 이렇게 다정다감하지 못한 속 좁은 엄마란 말인가'라는 자책까지 일자 너무 괴로웠다.


 남편이 출근하고 잠시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앞치마 두른 채 책상 앞에 앉아 글 속으로 피신한다. 쓰면서 다정하지 못한 나 자신을 옹호하고 구해내려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함께 한다고 해도 아빠는 도와주는 거고 집안일이며 아가 돌보는 일의 주인은 엄마다. 주인은 머릿속이 복잡하고 몸은 고달프다. 이게 바로 내가 남편보다 다정다감하지 못한 이유다. 앞으로 점점 더 사나워지지 않으려 노력은 하겠지만 다정한 엄마가 아니라고 자책하진 않으련다.


 넷째도 50일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육아에 치쳐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해도 소리 지를 기운도 없었는데 이제 잔소리도 하고 소리도 지른다. 엄마는 왜 맨날 화만 내냐고 따지는 아이가 있으면 자책 대신 부릅뜬 눈으로 그 아이를 질타한다. 매번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일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화 내고 후회하고 반성하고 다시 화 내고. 이상은 늘 자애로운 엄마를 꿈꾸지만 현실 속 나는 자주 불같이 화내는 엄마다.



 도무지 새벽 외엔 시간이 나지 않는 난, 곤히 잠든 아이들 틈바구니를 조심히 빠져나왔다. 쓰기를 욕망하는 마음이 수면욕을 이긴 날이다. 자리 잡고 앉아 컴퓨터를 켜고 한 문장을 채 채우기도 전에 막둥이가 '에엥' 한다. 빛의 속도로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형님들의 침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행여 막둥이를 누르기라도 할까 봐 첫째, 둘째, 셋째를 나란히 재우고 그다음 내가 자고 내 옆에 막둥이를 재운다. 내가 빠져나간 틈을 타서 큰 형과 작은 형이 막둥이 바로 옆까지 굴러와 있었고 곤히 자다 침투당한 막둥이는 몸 뉘일 곳을 잃고 일어나 앉아 어둠 속에서 눈도 못 뜨고 울면서 구세주 엄마를 찾은 것이다.


서둘러 세 녀석들을 굴려서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얼른 막둥이 자리를 확보하고 자리에 뉘이고 토닥 토닥하니 금세 다시 잠에 빠져든다. 산속에 있는 이 아파트는 자연을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보금자린데 우리 식구들이 살기엔 이제 조금 좁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은 좁다는 것이다. 집이 좁다는 것. 나중에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간 다면 또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살던 이 시절을 추억할 날이 오겠지...


어서 나도 다시 막둥이 곁으로 가서 몸을 뉘이련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내 자리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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