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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Nov 01. 2021

친정은 언제나 좋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다

삶이 고되면 엄마가 보고 싶다. 네 아이 키우며 버둥거리며 사는 나는 힘들 때면 다섯 명을 키워낸 엄마 품이 그립다. 그 시절, 식모까지 있었던 집에서 살았다는 엄마는 살림살이 하나 없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가난한 남자에게 시집왔다.

“왜 아빠랑 결혼했어?”라고 말하면 엄마는 속아서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땐 다 그랬단다.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할 때 되니까 누가 중매를 섰고 그렇게 결혼이란 중차대한 일을 치렀다고 말한다.

가난도 가난이었지만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한 건 아빠의 가부장적 모습들이었다. 밖에서는 그렇게 사람 좋은 모습이면서 엄마 앞에서는 늘 강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일도 없었지만 엄마가 병원이라도 입원해 집을 비우면 아빠는 밥을 식당 가서 사 먹었지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엄마는 시골에서 농사짓고 소 키우며 전혀 가정적이지 않은 남편과 살면서 아이 다섯 명을 키워 낸 것이다.

내 위로 오빠가 한 명 있는데도 아빠는 아들 하나 더 낳아야 한다고 오빠 밑으로도 두 명을 더 낳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아들 밑으로 딸이 연달아 둘이 나왔고 그때 서야 두 분은 아들 한 명 더 얻는 것을 그만두었다.

젊은 시절 아빠는 수시로 흙 파고 소똥 치우고 소 밥 주는 시골살이의 고됨을 술로 달랬다. 젊을 때 혹사당한 몸은 아빠의 노쇠함을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가 들어가자 반격을 시작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셔 일주일간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의사는 깨어나시지 않으실 수도 있으나 깨어나셔도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언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절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그 후에는 늘그막에 찾아온 대장암이 아빠를 괴롭혔다. 여러 차례의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여는 아빠의 심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만 살고 싶다.”는 말씀을 내뱉으시며 힘들어했다. 다행히 수술을 잘 마쳤다. 대장을 몸 밖으로 꺼내서 내 배설물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들을 내 손으로 처리하고 정리하는 일들은 정말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수시로 불쑥불쑥 찾아와 괴롭혔을 것 같다.

아빠는 그 참혹한 시간들을 버티고 견뎠다.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을 사는 우리 아빠는 지금은 금주와 소식을 실천하며 건강하게 지내신다.

힘든 고비를 잘 버티고 살아내신 아빠, 그리고 그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우리 엄마가 늘 너무너무 감사하다. 어느새 마흔이 다 된 막둥이는 네 명의 아이들을 키우며 억척같이 살아내고 있다. 마흔이 되었어도 철이 없는 딸은 삶이 고되고 힘들면 엄마에게 전화 걸어 눈물 바람이다. 그러려고 전화를 건 건 아닌데 전화기 넘어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부터 난다.

“엄마, 막둥이.”

“응 막둥이냐? 전화했냐?”

여기까지 말이 오가면 이미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나서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 그냥 전화했다고 별일 없냐고 말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엄마’라고만 불러도 눈물이 난다는 건 엄마 품이 몹시 그리운 것이다. 상황은 열악하고 일이 많았으나 다 덮어두고 친정을 향했다. 좁은 차 안에서 여섯 식구가 지지고 볶으며 네 시간을 달려 그리운 친정집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고 집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엄마 아빠가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있었다. 난 눈을 의심하며 그 장면을 다시 쳐다봤다.



“엄마 아빠 막둥이 왔어. 근데 이게 뭔 일이 대? 아빠가 고구마 순을 다듬는다고? 나 사십 평생 처음 보네.”

엄마 아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으시며 달려 들어오는 손주들을 반기실 뿐 별 말이 없으시다.

“오메 엄마, 우리 아빠한테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변했대. 참말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네.”

다음 날, 멀리서 막둥이 왔다고 오빠와 언니들이 하나 둘 집에 들어섰다. 이 집 저 집 조카들까지 다 모이자 시끌벅적 난리통이다. 정신은 하나도 없는데 모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어제 상남자 아빠의 고구마 줄기 다듬는 사건에 대해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다. 사십 평생 처음 보는 모습이라고. 그러자 큰 언니가 자기도 평생 처음 본다며 가족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행복이 넘쳤던 짧고 굵은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부엌에서 가족 밥상을 차리는 날 보고 남편이 말했다.

“어제까진 막내 얼굴을 하고 있더니 오늘은 다시 엄마로 돌아왔네요.”

피식 웃으며 썰던 호박을 마저 썰어 밀가루 반죽 속에 밀어 넣었다. 엄마가 따 준 호박으로 호박 부침개를 해 먹을 참이다. 호박 부침개에 엄마, 아빠의 정성과 온기가 가득 담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순김치를 올려서 먹어야 겠다. 돌아오는 길, 이것저것 먹을 것을 많이 챙겨주셨고 냉장고에 엄마 음식으로로 그득하다. 한동안 엄마 음식으로 밥 짓는 일의 고된 노동이 잠시 덜어질 듯하다.

친정을 나와 우리 집에 들어선 순간 난 다시 네 아이 엄마다. 엄마와 언니들의 수고로움으로 빚어진 만난 것들을 받아먹기만 하고 마음 편히 쉬고 놀고 했던 시간은 어느새 꿈같은 시간처럼 느껴진다.

삶이 고되고 힘들수록 친정 품이 그리운 이유일 게다. 친정에서 아낌없이 퍼주는 사랑과 호의를 받고 오면 고갈된 에너지가 채워지고 다시 고단한 삶을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이 시간은 얽히고설킨 인생의 숲 속을 헤쳐나갈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점점 야위고 조금씩 늙어가는 부모는 아직도 그들 앞에 선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막둥이 마음을 섧게 한다. 이 늙은 부모가 언제까지 우리들의 그늘막이 되고 우리 형제들의 구심점이 되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부모의 노쇠함을 확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크게 편찮으신 곳 없이 우리 곁을 지켜주심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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