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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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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Feb 07. 2023

수영과 쓰기

둘 다 잘해 보고 싶다.

수영과 글쓰기는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수영장에 일단 가서 물속에 들어가야 실력이 늘 듯 글도 써야 써진다. 머릿속에 수만 톤의 생각이 도사리고 있어도 끄집어내지 않으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내가 수영을 하고 싶다. 죽기 전에 수영장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던 건, 2층 헬스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수영장을 볼 때였다. 물속에서 즐겁게 즐기는 사람들은 보고 '나도 언젠가는 수영을 해 봐야지' 하는 마음을 품었다. 일단 수영복부터 샀다.  그러나 수영복은 몇 달간 옷장에 처박혀 있었다. 수영복을 구입하고도 한동안 수영장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장 안에 있는 수영복은 언젠가는 수영장에 가겠다는 그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면 난 아직도 수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일 거다. 수영장에 갔기에 난 수영하는 사람이 되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무용하고 글이 써야 써지듯 말이다.


처음 수영을 시작하고 레인 끝에서 끝은커녕 조금만 가도 숨이 차서 멈춰야 했다. 옆 레인에서 멈춤 없이 계속 돌고 도는 할머니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저 할머니는 숨도 차지 않은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곤 했다. 더 놀라웠던 건 물속에서 인어공주처럼 물살을 가르며 쉼 없이 헤엄치던 그 할머니가 물 밖에 나와서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하며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너무 놀라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존경심과 경외심이 동시에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한 바퀴 정도는 아주 간신히 갔다 올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세 바퀴, 다섯 바퀴도 가능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폐활량이 좋아진 듯했다. 몇 바퀴를 돌아도 숨이 차지 않았다. 이게 바로 숨통이 트인다는 것일까.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짧은 글밖에 쓰지 못하고 글에도 근육이 있어서 꾸준히 쓰지 않으면 감을 잃게 되고 글근육이 약해지고 만다.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 글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지름길은 없다. 수영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힘을 빼라'는 것이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몸이 경직되고 그러면 몸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몸이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제자리에서 첨벙첨벙 댈 뿐이다. 글을 쓸 때도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것을 너무 잘 쓰려고 하면 한 문장도 쓰기가 어렵다. 힘을 빼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쓰다 보면 그냥 써지는 것이 글인 것 같다.


 물속은 나만의 세계다. 아무도 알 수 없고 방해도 않는다. 날 괴롭히는 온갖 잡념과 걱정 근심을 밀쳐내고 온전히 나로 존재하게 한다. 글을 쓰는 동안 난 그 안에서 온전한 나 자신을 만난다. 속상하고 힘들었던 일들을 털어버리고 나를 다독인다. 내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나를 안아준다. 나는 수영하는 시간과 쓰는 시간이 참 좋다.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큰돈 들이지 않고 날 끌어안고 날 사랑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을 찾은 듯 해 너무 행복하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 활달한 성격이지만 혼자의 고독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이 시간들도 너무 귀하다.


새벽형 인간인 나는 새벽을 이용해 글을 썼다. 내 삶에 수영이 들어오면서 내 삶은 달라졌다. 새벽에 쓰기 대신 수영을 택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쓰고 싶은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서도 쏟아지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다시 날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왼팔 돌리고 오른쪽 팔을 돌리면서 숨을 쉬려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릴 때 고개를 너무 많이 쳐든다며 내 머리통을 쑤욱 밀어 넣던 강사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난 출근해서 사람들에게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기장에 적으며 내 수영 방법을 다시 돌아봤다. 머리통을 맞으니 고개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확실히 감이 왔다. 그 강사는 수업 말미에 혹시 과격한 자신의 수업 방식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사과했다. 난 몸이 기억하게 확실히 짚어 준 그 강사에게 오히려 고맙다. 또한 그 사건은 수영 인생에 한 페이지가 되었고 글감이 되었다. 글감이 늘수록 쓰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수영과 쓰기의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영도 글쓰기도 잘 해보 싶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늘 숨 가쁘게 살고 있는 내게 수영과 쓰기가 내 삶의 동력이자 에너지원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감사하고 수영을 할 수 있는 삶이라 또 감사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지만 뭐라도 쓰면서 마음을 가지런하게 정돈해 본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원천인 물의 역설에 끌리고, 물속에서 움직이는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누구나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수영에 얽힌 사연이 하나쯤은 있다. 이런 보편적 (물을 무서워하든, 물을 사랑하든, 물에 거 떠나든,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물을 만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경험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생존 근육을 풀고 물속에서 버티면서 조용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수영장을 찾아다니고 오아시스를 옮겨 다니며, 우리를 좀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갈 미끼를 찾아 헤맨다. 세상을 탐험하는 일이다.

-18p 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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