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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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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이 Feb 08. 2023

수영의 맛

수영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

음----하면서 왼 팔 돌리고

다시 한번 음-----하면서 오른팔 돌리고 파

음-----이 길어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왼팔 오른팔 둘 다 돌리면서 음-----을 유지해야 한다.


강사는 분명 한국말로 하고 있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맨 뒤에 서서 앞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물 밖에서 하는 동작도 살피고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물 안에서 이뤄지는 몸동작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앞에는 내 자세 교정을 위해 강사가 기다리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배운 대로 하려고 시도해 본다. 여지없이 강사는 날 일으켜 세우고 잡아 끈다.


"아니, 고개 돌릴 때 고개를 너무 많이 쳐들잖아요. 오른팔이 돌아서 다시 올 때까지 왼 팔은 기다려야 한다니까요."


야단을 맞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강사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는 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두 바퀴 정도 돌면서 더 허탕을 치고 나서야 감이 온다.

다음 날, 강습이 없는 날, 수영장에 가서 전날 강습 때 배운 것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이제 정말 무슨 말인지 몸이 터득한 것 같다.


양팔을 다 돌리면서 '음---파'를 하기 위해 오른팔 돌리면서 머리를 처박자마자 지체 없이 왼팔을 돌려야 했다. 거기에서 1초라도 허비하게 되면 오른팔 돌리면서 '파-'하러 고개를 내밀기 전에 숨이 모자라 수영 중단 사태를 맞게 된다.


다 늙어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것이 너무 섧고 아쉬워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었다. 그때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을 보고 강사는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 악기를 배우면 자기 고집이 있어서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경향이 있는데 00님은 알려준 대로 그대로 하네요. 정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시키는 대로 잘하는 것은 수영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기본 발차기가 가장 중요하다기에 난 자유수영을 가도 꼭 두 바퀴 정도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 연습부터 했다. 그리고 강사가 일러준 것을 그대로 내 몸에 체화시키기 위해 그 배운 동작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 다음 수업 전까지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이제 알 것 같다고 자만하는 순간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곤 했으니까. 그러면 난 다시 기본기부터 제대로 하기 위해 익히고 또 익히려 애를 쓰는 사람이다.  


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울 때, 금방 알아듣지 못하고 터득이 느리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자유형 후 배영으로 넘어갈 때도 그랬고 다시 배영 배우고 평영 넘어갈 때도 그랬다. 한 영법을 배우고 나면 맨 끝에서 선두 자리로 진출했다 새로운 영법을 다시 배우기 시작하면 난 여지없이 '뒤로 뒤로' 가다 결국 맨 끝에 서곤 했다. 맨 끝으로 밀려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장 뒤에서 하면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 마음 편히 헤엄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진출하는 맛도 짜릿하고 좋았다.


수영을 통해 난 내가 마음먹은 것은 해내는 사람인 것도 알았다. 꾸준함과 성실함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덕인데 이 또한 수영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수영 강습을 시작하고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 6시 같은 시간에 수영장에 가고 있다. 레슨 있는 날은 레슨을 받으러 갔고, 레슨이 없는 날은 레슨 때 배운 것을 연습하러 갔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하면 늦잠을 좀 자도 좋다고 나 자신을 풀어주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수영의 맛을 기억하는 몸의 세포들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나를 깨우고 수영장으로 향하게 한다.


 나 자신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도 배운다. 3개월 만에 난 무릎까지 내려오는 수영복을 벗어던지고 팬티 모양 수영복을 사서 입었다. 처음에 그렇게 가리고 싶어 하던 살들은 여전히 내 몸뚱이에 붙어 있었으나 없던 자신감이 솟아났다. 아니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설사 수영장에서 샤워실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 문제라도 각자 자기들 수영하느라 남의 몸 쳐다볼 겨를 따윈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가리는 천 조각이 줄어들자 발차기하기도 훨씬 편했고 무엇보다 샤워 후 수영복을 입을 때 저항 없이 수영복을 다리에 쏙 넣을 수 있어서 수영복 갈아입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고 너무 편했다.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며 사는 성격인데 수영을 하면서 난 점점 과감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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