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프로젝트
한계령 20211011
20대 중반의 나는 고달팠다. 그 즈음 첫사랑과 아주 아프게 이별을 했고, 가정 상황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인생의 첫 고난을 겪고 있는 시기였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을 견딜 수 없어 혼자 (주로) 강원도로 훌쩍 떠나곤 했던 시기이다.
(그때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자 혼자 겁도 없이 초보 딱지를 떼지도 않고서는 무작정 차를 몰아 여기저기를 떠돌고, 라디오에서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새까만 밤중에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차 위에 올라가 음악을 듣고, 발길 닿는 민박집에서 무작정 자던 시기였다. 그러지 않고서 견딜 수 없는 그런 때였던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게 기적이 아닐까 싶다.)
그날도 무작정 동해 바다를 보겠다고 떠났던 것 같다. 고속도로로 가면 지루함에 늘 졸음운전을 하게 되어 운전하는 재미(?)가 있는 국도를 선택했다. 44번 국도를 한참 달려 슬슬 고도가 높아질 즈음 온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는 호통을 치듯이 갑자기 폭우로 바뀌었고, 불친절하게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한계령을 지나게 되었다. 귀가 살짝 먹먹해 와이퍼가 넘어갈 때마다 침을 삼켰다. 이렇게 높은 고지대를, 이 어둠에, 이 빗길에 운전하는 것은 초보인 나에게 무리였다.
앞에 가는 차들 모두 비상등을 켜고 5킬로도 되지 않는 속도로 주행을 하고 있었다. 몇 분 뒤에 도로 위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뿌옇고 두꺼운 안개가 몰려든 것이다. 바로 앞 차의 깜빡이는 불빛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일순간 ‘혼자’라는 느낌, 아니 그것은 느낌이라기보다는 무게에 가깝다. 고독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인 실체로 마주한 것이었다. 아무도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오직 나 혼자 이 시간과 공간을 견뎌야 한다는, 지금이 지나갈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그 사실을 직면한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두렵기 때문에, 외롭기 때문에 울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내 인생의 밀린 모든 울음을 쏟아내겠다는 듯이 울었다. 아주 길게, 멈추지 않고, 소리 내어 아주 시끄럽고 더럽고 처절하게 울었다. 와이퍼가 아무리 움직여도 빗방울이 계속 퍼붓듯, 아무리 눈물을 닦아 내어도 다음 눈물이 흘러나왔다. 차가 아주 엉금엉금 갔는데도 다 울고 났을 때는 한계령을 거의 다 빠져나온 뒤였다.
핸들을 너무 꽉 쥐고 있던 탓인지 손가락 마디와 어깨는 뻐근했지만, 희한하게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외로움(loneliness)이 아닌 고독(solitude)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어떤 효능을 발휘하는지를 알게 해준 것이 그때였던 것 같다. 가끔 U턴도, 정상적인 주행도 할 수 없는 순간에 갇힐 때, 최악의 상황에 더 최악인 상황이 치고 들어올 때 그 압도하는 막막함을 지렛대 삼아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직면해버리면 숨통이 트였다. 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말이다.
포기(give-up)란 다 놓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신(up)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일단 울어젖힐 필요가 있다. 나는 여기까지입니다,라고 항복하는 그 마음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십수 년간 굳이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44번 국도의 한계령을 지나간 적이 없다. 그래서인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눈물을 꺼내보지 못하고 그저 엉터리 적금 통장에 쌓아두고 있는 것만 같다. 속 시원하게 울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