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그때 거기 프로젝트

by 강이람

슈퍼마켓 20210711


초등학교 2학년 정도였을까? 엄마에게 생애 처음으로 심부름을 부탁받게 되었다. (심부름은 언니의 전유물이었는데 말이다!) 동네 슈퍼마켓에 가서 콩나물을 사는 것이 미션이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엄마가 건네준 비닐봉지를 받았다. 그 안에는 아마 1천원의 지폐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돈이 비닐봉지 사이로 빠져 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한 손으로 바닥을 조심스럽게 바치고는 종종걸음으로 슈퍼마켓으로 갔다.


-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 엄마 심부름 왔는데요!

- 오, 그래 뭘 줄까?

- 저 콩나물 한....한….


그때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콩나물이 한 개인가, 한 근인가, 한 되인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는 콩나물이 개별 포장되어 있지 않고 갈색 다라이에 키우면서 손으로 대충 뽑아서 주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그만 얼굴이 빨개졌고, 손가락으로 1을 표시함으로써 심부름 미션은 적당히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어른스럽게 심부름을 제대로 완료하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고 속상했다.


몇 주 뒤에 엄마로부터 받은 다음 슈퍼마켓 심부름 미션은 뚝배기 불고기에 넣을 재료를 사 오는 것이었다. 한 근, 한 근…. 잊지 않으려고 중얼거리며 슈퍼마켓 철문을 드르륵 열었다.


- 안녕하세요, 아줌마! 저 오늘은요! 그…저….


한 근은 알겠는데, 소고기…였나? 쇠…고기였나? 울고 싶어졌다. 주저주저하다 결국 ㅅ…고기 한 근 주세요 라고 말했다. 첫 글자는 들릴 듯 말 듯 하게 말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주머니는 곧바로 여러 고깃 덩어리 중 하나를 능숙하게 꺼내서 슥슥 칼로 썰어서 주셨다. 드르륵 슈퍼마켓 문을 열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소고기도 쇠고기도 다 미웠다.


어릴 땐 ‘실수가 없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다. 지금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지만 (이미 어른인가? 어른이어야 하나?) 소고기나, 쇠고기나 뭘 선택한들 큰일 나지 않으며, 콩나물을 한 봉지를 사나, 두 봉지를 사나 괜찮다는 것을 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작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수 정도엔 그러려니 할 줄 알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내가 설사 말고기나 양고기를 사갔더라도, 어른이었던 엄마는 그러려니~하고 그에 맞는 적당한 요리를 저녁 식사에 내주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그러려니 하는 나보다 더 어른이 있다는 것이 이따금 다행스럽다. 오늘 저녁은 콩나물 한 켤레 넣은 시원한 국에 쇄고기 한 점 구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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