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그때 거기 프로젝트

by 강이람

주차장 20210731


주차장은 늘 나에게, 어둡고 건조한 어조로 질문을 던진다. 자네, 기억력 좀 쓸만한가? 주차를 하고 일과를 마친 뒤 차를 빼러 돌아올 때, 그 대답의 순간에 거의 매번 진땀을 흘린다. 흠, 주차장이 싫어서 운전을 거의 안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4 A12라는 암호를 어떻게 기억한다는 말인가. 지하 3층 그린존 4번, 이것도 그렇다. 도대체 낱말과 낱말 사이에 아무 연관성이 없는데 이걸 어떻게 외우나. 물론 주차를 하고 주차 위치를 찍어 놓으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찰칵 찍는 걸 기억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면 대개 빨리 장을 보러 가거나, 출근을 하러 뛰어 올라가야 하므로 내 정신줄은 이미 차에서 내려 지상층 어딘가로 가 있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에서 사진을 찍은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런 고로, 출차를 하러 엘리베이터를 탈 때부터 식은땀이 난다. 음, 몇 층에 주차했지? 지하 4층인가, 지하 5층인가. 한번 아리송하면 모든 게 블랙아웃 된다. 마치 폭탄주의 향연이었던 고된 회식 다음 날, 몸은 힘들어도 기억은 깨끗한 것처럼, 주차할 때의 내 모습은 내 기억 속에 깨끗하게 편집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지하 4층 à 지하 5층 à 다시 지하 4층 (처음 지하 4층에 간 걸 그 사이 또 까먹음)à 지하 1층 (처음부터 돌자,라고 결심) à 지하 2층 à 지하 3층을 돌아다니며 정확히 28분을 헤맨 적이 있다. 곧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 시간이라 1분 1초가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내 차는 보이지 않았고, 30여 분이 될 즈음 온몸이 땀에 젖고,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오늘 차를 안 가져왔던 건 아닐까, 혹은 내 차를 누가 훔쳐 간 게 분명해. (모닝인데…) 이런 생각에 다다를 즈음, 처음 내렸던 지하 4층에서 내 차를 발견했을 때는, 무섭기까지 했다.


주차 위치에 대해서만은 그런 것은 아니다. 봤던 장을 또 본다던가 (주방 수납장에는 같은 시리얼만 4박스가 있다), 읽었던 책이나 영화를 완전히 까먹고 다시 사보는 일이 종종 있다. (3분의 2 즈음 될 때, 아는 내용임을 깨닫는다) 만났던 사람을 기억 못 하는 것도 문제다. 상대는 내 이름 석 자까지 기억하며 인사를 청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고사하고 어디서 만났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죄송합니다, 정말)


반면 한 번 가 본 여행지는 아주 잘 기억한다. (국도변의 과일 좌판이나, 조식에서 먹은 멜론 주스의 맛 등) 힘들다고 나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의 표정과 그때의 분위기만큼은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름과 출처는 기억 못 해도 말이다) 다음 주에 해야할 보고 어젠다는 잘 기억한다. 사회를 보거나 강의 등을 할 때에도 별도의 원고는 필요하지 않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건망증(健忘症)은 직역하면 ‘잊어버리는 것이 굳센 증세’라는 뜻이다. 기억력의 ‘결핍’이 아니라, 일종의 잊음’력’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너무 생각이 많아서, 건강을 위해서라도 일부 주제는 잊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일리가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아쉬운 점은 어떤 주제를 잊음력과 기억력 중 어디에 해당 시킬지는 내가 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불수의근 같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판단 기제에 따라 잊기로 결정된 것들이 부디, 기억해야할 사건으로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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