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리테이

그때 거기 프로젝트

by 강이람

쿠오리테이 20210808


‘알아, 다시 만나기는 힘들거라는 걸. 너무 짧았지만, 정말 좋았어. 다시없을 시간이었어.’


…라고 고백할 남자는 없지만, 그런 료칸은 있다. 바로 쿠오리테이이다.


1 뜨거운 시간


기본적으로 료칸은 사랑스럽고, 매력 넘친다. 끼익 끼익하고 걸을 때마다 나는 오래된 나무 바닥의 소리라거나, 색깔이 바랬지만 깨끗하고 빳빳한 유카타라, 입욕 예약을 위해 손글씨로 써야 하는 예약 칠판의 귀여움, 가이세키 요리의 환상적인 양과 맛 등등이 그렇다. 하지만 쿠오리테이는 료칸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인 뜨거운 온천으로 다른 료칸과 수준을 달리한다.


원래도 극심한(?) 반신욕 마니아인 나는, 한여름에도 정기적으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고 반신욕을 한다. 누군가를 때려주고 싶게 미울 때, 나 자신이 뭐 하나 잘하는 것 없는 것 같을 때, 워킹맘 정말 못 해먹겠다 싶을 때,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다. 내게는 일종의 생존 비결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싸구려 플라스틱 욕조 안에서 정수장을 거쳐 수도꼭지로 급히 쏟아져 나오는 온수가 무슨 영험함이 있겠는가. 인스턴트 음식을 구겨 넣어 허기만 달래듯, 그저 급한 대로 요기만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쿠오리테이의 온천에 몸을 담갔을 때, 나는 알았다. 이건 뜨거운 물이 아니다. 이건 마치, 뜨거운 에너지다,라고! 쿠오리테이는 아소산 중턱에 있는데 그 산은 아직도 화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 다녀간 얼마 뒤에도 화산이 터지네 마네 하며 뉴스가 잔뜩 쏟아져 나왔었다. 그러니까 쿠오리테이의 온천은 가마솥처럼 지구 깊숙한 곳의 마그마가 뭉근하게 끓여낸 것이다.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일상에 찌든 피로와 분노감, 무기력이 다 녹아 내리는 것 같다.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질수록, 제대로 나쁜 기운을 배출한 것만 같아 뿌듯하고 홀가분하다.


지구 깊숙한 곳을 뜨겁게 창조한 하나님도 재미있지만, 그걸 알아내고 물이 있는 곳에 땅을 파서 거기에 몸을 담글 생각을 했던 인간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온천을 만들고 누리는 인간을 보면, “야, 진짜 기발하다, 너네. 잘했다, 잘했어!”라고 칭찬하실 것만 같다.


2 시간의 뜨거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데워진 온천물의 영험함 때문인지, 쿠오리테이에서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6장을 읽고 엉엉 울었더랬다. 6장의 소제목은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이다. 나는 그 책을 아이와 남편이 잠든 자정부터 새벽 3시인가까지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단숨에 읽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간 바쁘다는 핑계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지 오래였고, 짬이 날 때면 늘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 책 한 권 분량의 한번의 호흡에 읽은 것은 몇 년 만이었다.


여행 전에 글을 좀 써보라는 친언니(이자 냉정한 출판사 편집자)의 권유에 따라 몇 개의 글을 써서 보여주었다가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언니는 글에 대한 어떤 피드백도 주지 않고 단 하나의 질문만 던졌다. “너 요즘 책 안 읽지?”


그때 너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언니 손에 들려진 원고를 황급히 뺏어 왔고, 쪽팔렸던 나는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랬다가 몇 주 뒤 쿠오리테이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몇 년 만에 책을 완독해낸 것이다. 마치 몇 년 만에 자전거를 탔는데 그 균형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하듯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마침 무라카미 씨는 나에게 저 깊은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짧고 단순한 온수가 아닌 뜨으으으거어어어어어운 물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말이다. (장편 소설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글로 싹 틔우고 구체적인 형태로 일으켜 나가는 시간을 시작한 것이 그때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을 양생하며 써내려간 글이 <아무튼, 반려병>이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온천 같은 글이었다.



“시간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소중한 요소입니다. 특히 장편소설에서는 '사전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안에서 나와야 할 소설의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키워가는 '침묵의 기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기분을 내 안에 서서히 만들어 갑니다. 그런 사전 작업에 들이는 시간, 그것을 구체적인 형태로 일으켜 나가는 기간, 일어선 것을 냉암소에서 진득하게 '양생'하는 기간, 그것을 밖으로 꺼내 자연의 빛을 쏘이고 단단히 굳어져가는 것을 세세히 검증하고 쿵쾅쿵쾅 망.치.질을 하는 시간...... 그런 과정 하나하나에 충분한 시간을 들였느냐 아니냐는 오로지 작가 본인만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업 하나하나에 들인 시간의 퀄리티는 틀림없이 작품의 '납득성'이 되어서 드러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에는 역력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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