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티나토와 같은 자신과의 투쟁의 끝엔, 빛을 보리라!
2021년 여름, 김선욱은 다시 한번 포디움에 올라섭니다. 7월에는 수도권(서울, 경기 광주)에서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슈베르트 교향곡 9번 D.944을 올리게 되었고, 8월에는 영남권(대구, 통영)에서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글린카 ‘루슬란과 루드밀라’ 서곡,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협연 백건우),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무대에 올립니다.
현재로선 타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솔라시안 유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김선욱의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다행히 KBS교향악단을 이끈 김선욱의 모습을 예술의전당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1악장의 인트로를 지휘하는 김선욱은 이전보다 훨씬 유연하게 곡을 풀어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 지휘에서 힘을 빼지 못해 곡의 완성도가 높지 않았던 걸 염두에 두었는지, 아니면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이기 때문에 곡에 대한 해석을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전보다는 힘을 많이 빼었더군요. 하지만 차분하다 못해 나른해진, 아니 힘이 없어 좀 늘어진 모습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보여졌습니다. 어떤 순간엔 강약 조절을 통해 곡에 포인트를 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뭐랄까요. 모차르트만의 생기가 한풀 꺾인 인상이 들었습니다.
인트로가 끝나자 지휘를 하던 손은 어느새 피아노 건반으로 향했습니다. 은은하면서도 조금은 탁한 피아노의 음색이 들려왔어요. 곡이 진행될 수 록 그 음색이 점차 또렷해지나 했지만, 이내 밝고 은은한 잿빛으로 객석을 물들였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 잘츠부르크 시기에 비하면 오케스트라의 편성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화려한 색채보다는 조화롭게 잘 짜인 앙상블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가 서로 대비되는 형태로 곡을 풀어나가지 않았단 점은 특히 좋았습니다. 1악장에선 다소 루즈한 경향은 있었지만, 유기적인 호흡을 유지하며 곡을 풀어나갔기 때문에 꽤 좋은 인상을 받았어요. 다만 피아노와 플루트가 호흡을 맞추는 상황에선 기대 이상의 케미스트리를 느낄 수는 없어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2악장에선 1악장보다 훨씬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느낌이 가득한 악장에서 피아노는 아주 서정적으로 연주를 시작했고, 이를 뒷받침해주던 오케스트라는 조금 정제된 듯한 느낌으로 반주를 해주었죠. 이때 곡의 전체적인 흐름을 김선욱이 지휘한다면, 김선욱이 피아노를 연주할 땐 KBS교향악단의 최병호 부악장이 오케스트라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로 간의 긴밀한 호흡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면 3악장의 경우 아쉬웠습니다. 앞선 악장에서 풀어낸 것과 동일한 기저를 보였기 때문인데요. 말년에 모차르트가 처해있던 상황을 보면 일정 부분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곡 전반적으로 모차르트 특유의 발랄하고 쾌활한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더군다나 같은 해석이 연거푸 반복되자 곡 전체적으로 지루한 인상을 풍겨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들었던 생각은 곡을 해석할 때 조금만 더 다각도로 접근해봤다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가령 2악장에서 들려온 플루트의 소리가 얼핏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를 연상시켰는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착안하여 오페라적인 느낌도 함께 살려내었다면 곡이 한층 풍성 해졌을 테니까요.
드디어 메인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는 교향곡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김선욱은 곡의 특성에 맞춰 에너지를 충분히 담아내었고, 이 속에서 무게감 있게 절도 있는 리듬감을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이런 리듬감 때문에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에서 보았던 유연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악장이 진행될수록 경직된 느낌도 없잖아 있었어요.
그는 협주곡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해석을 전 악장에 걸쳐 동일하게 풀어내는 일관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속에서 1악장의 일부 구간에는 색채감을 다채롭게 나타내기도 하였고, 4악장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재지(Jazzy)한 선율을 보여주는 등 나름대로 포인트를 주며, 곡을 지루하지 않게 하였어요. 신선한 순간들이었지만, 기승전결 없이 멜로디가 반복되는 구간이 많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거기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관점에서 볼 때, 때때로 매끄럽지 못한 선율이 귀에 들려왔고, 2악장의 일부 마디는 음형이 여기저기 흩어져나가 블랜딩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또한 3-4악장에선 현악, 목관악기가 금관악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이 노출되어 아쉬움이 남기도 했죠.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에선 2악장의 경우 말러의 체취가 강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실 곡 전반적으로 베토벤의 체취가 많이 풍겼습니다. 베토벤의 ‘투쟁적인 삶’은 절도 있는 리듬감으로 시종일관 표현이 되었고, ‘어둠에서 광명으로’라는 메시지는 빛과 그림자가 반복해서 드리우던 4악장에서 느낄 수 있었죠. 특히 빛이 있은 후에 흘러나오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선율을 보고 있노라니 슈베르트가 베토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빛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김선욱의 지휘에서 그림자를 더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3악장을 들을 때면 숲 속의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연상하곤 하는데, 김선욱의 지휘로 음악을 들었을 땐 가로등만 켜진,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에서 조깅하는 모습이 떠올려졌습니다. 어두운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 듯 말이죠. 4악장에서도 그림자의 선율이 조금 더 강조되어 음악을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음악을 듣는 저는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특별하게 희망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편 시종일관 절도 있는 리듬감으로 ‘투쟁’을 표현했던 김선욱은 자신만의 도전,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이번 프로그램북 해설을 쓴 유윤종 기자가 최근 기사에서 언급했던 ‘교향곡 역사의 위대한 전통을 돌아보는 계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요. 저는 1악장에서 바그너의 체취도 함께 느껴보았기 때문에 기사에서 언급한 ‘계보’와는 좀 다른 의미를 갖겠지만, ‘하이든이 쏳아올린 공은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바그너에게 도달하기까지 슈베르트도 거친 거 아닌가’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김선욱은 지난번 지휘와 비교할 때, 힘을 어느 정도 빼고 지휘를 하니 곡의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조금은 더 올라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8월에 계획된 지휘는 조금 낯설더라도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보는 자리가 될 것 같은데요. 여러분들 중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김선욱의 지휘를 대구콘서트하우스 혹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피아니스트 김선욱을 넘어 지휘자 김선욱을, 완성된 형태보다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줄 아는 포용력을 갖추셨다면 말이죠.
※ 이미지 출처
- KBS교향악단 제768회 정기연주회 포스터
(KBS교향악단: https://www.kbssymphony.org/ko/concerts/concerts_view.php?number=26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