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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Jul 29. 2021

김선욱, 지휘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다.

아쉬움은 가득했다. 하지만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김선욱 & KBS교향악단. Ⓒ 빈체로

김선욱은 꽤 오래전부터 지휘를 꿈꿔왔습니다. 그래서 2010년쯤부터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3년간 지휘 공부를 했지요. 졸업할 무렵, 피아노와 지휘를 모두 병행하는 것은 어렵고, 아직까지 지휘를 하기엔 스스로 준비가 되지 않다고 판단하여 그는 한동안 피아노에만 전념합니다.


그러다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게서 지휘 제안을 받아, 2020년 초에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 교향곡 4번,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지휘할 예정이었죠. 하지만 팬데믹으로 도전의 발걸음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닥칩니다.


결국 그 도전의 첫 발걸음을 영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진행해보려 방향을 조금은 틀어봅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잡아두었던 일정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무려 세 차례나 취소되는 통에 악재가 계속되었죠.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김선욱은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지휘자로서 포디움에 서게 됩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7번으로 이뤄졌는데, 당초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지휘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오케스트라 편성을 축소해야 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급하게 변경하게 되었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베토벤의 초기 작품답게 곡 전반적으로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따라서 곡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의 향기를 다양하게 풍겨 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김선욱은 KBS교향악단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현의 선율을 잘 캐치한 것 같았습니다. 이 현의 선율은 롯데콘서트홀만의 어쿠스틱 한 홀 사운드와 만나 조화가 잘 이뤄져 밝고 투명하게 객석에 전달됐어요. 이렇게 풀어낸 1악장은 제가 듣기엔 모차르트보다는 하이든에 더 가까운 향이 풍겨졌습니다.


이것과는 별개로 좀 아쉬웠던 부분은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동시에 진행하려다 보니, 피아노가 뭉개져버리는 경우가 몇 번 노출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객석에 앉아 ‘아... 이러면 안 되는데, 교향곡까지 이끌고 가려면 첫 단추가 정말 중요할 텐데...’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이다 ‘흔들리지 말고, 준비한 거 잘 이끌어 내어 주시라.’라고 응원을 했던 기억이 있네요.


어느덧 2악장이 울려왔습니다. 1악장의 뭉개짐은 점차 사라지고, 곡의 특성에 맞게 단아하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어요. 거기다 어떤 순간엔 바이올린과 함께 깜찍하고 위트 있는 케미를 보여주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 첼로와 더블베이스에게 포인트를 주면서 지휘자로서의 면모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3악장에 이르러서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어디 가고, 베토벤 특유의 장엄한 향기를 풍겨내었는데, 이때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향기를 너무 급하게 지우느라 도입부에선 다소 어지럽게 베토벤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어요. 이렇게 좀 아쉽게 3악장이 시작되는 듯했으나, 어느 순간 안정기를 잡아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곡이 진행됐습니다.


아무래도 본업이 피아니스트인지라 피아노 협주곡은 대체로 무난했다는 생각이지만, 이 속에서 지휘자로서는 베토벤 초기 작품인 곡의 특성을 잘 살려내어 나름대로 성공적인 연주가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앙코르에서 들려줬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느껴지긴 했지만요.



베토벤 교향곡 7번

인터미션이 지나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이 연주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젊은 패기가 가득한 해석이었다고 기록해 보이지만, 사실 이 젊은 패기 때문에 아쉬움이 가득했던 연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악장부터 잔뜩 힘을 주며 곡을 풀어냈습니다. 전반적으로 선이 굵고 다소 무거운 해석을 보여줬어요. 저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은 베토벤의 교향곡 중 가장 리드미컬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베토벤 본인이 자신을 비유한 바커스(디오니소스)와 같은 측면을 잘 부각해, 음악으로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김선욱은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 바디감 묵직한 와인을 꺼낸 듯 다소 무겁게 1악장을 풀어냈습니다. 좀 아쉽긴 해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휘자 본인이니 이런 부분은 사실 당시만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습니다.


2악장도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해석이었죠. 베토벤 교향곡 7번은 곡 전체적으로 리드미컬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자칫 가벼운 이미지만 보일 수 있지만, 2악장이 중심부에 서서 무게감을 갖추고 있어 밸런스가 맞춰진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7번의 초연은 부상당한 병사들을 위한 연주였다는 점, 이후 2악장이 커다란 인기를 얻었던 점을 미뤄볼 때 충분한 무게감을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죠.


김선욱이 1악장을 상대적으로 무겁게 풀어낸 만큼, 2악장은 깊이감이 더 깊어져 꽤 심오하게 곡을 풀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무렵, 2악장은 어딘가 모르게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와인의 종류를 아예 바꿔 버렸어요. 이쯤 되니 곡 해석에 대한 설득력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더 큰 아쉬움은 3악장과 4악장에서 이어집니다. 곡이 진행될수록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객석에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관객들을 취하게 만들기보다는, 지휘자 본인이 음악에 취해 지휘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예 취기를 빌려 젊은 패기를 마음껏 드러내었습니다.


처음에는 ‘베토벤은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니다.’ 그런 뉘앙스를 풍긴 듯, 그가 해석한 음악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2악장에 들어선 그런 메시지를 아예 지워 버렸고, 음악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힘이 실려버린 탓에 연주에 있어서도 상당 부분 아쉬움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지휘자와 함께 팀파니도 덩달아 과열되는 모습을 보였고, 4악장 중 두 번 정도는 취기에 정복당하여 아예 블랙아웃이 이뤄진 듯, 소리가 죽어버리는 구간도 생겨나는 등 곡에 불필요한 균열도 좀 생겨났지요.


지휘자 김선욱과 KBS교향악단


결과적으론 아쉽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며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그래, 그래도 고생 참 많으셨다.’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동시에 이 연주회를 예매했던 가장 궁극적인 이유를 생각해내었습니다.

'애초에 데뷔 무대에 완성도 높은 연주를 기대하진 말자,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되겠나, 그저 30대를 넘어서기 전에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정신을 보고 배우고 오자.'와 같은 것들 말이죠.


그래서 커튼콜이 진행되는 동안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뭘 하든 뭔가를 처음 해보게 될 땐 힘을 빼는 게 참 어렵다. 여러 번 부딪혀봐야 힘도 뺄 수 있는 것! 이번엔 완성된 지휘자를 보기 위한 첫 페이지를 읽은 것뿐이니,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자. 이런 부분도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 아니겠는가,’라고 말이죠.




철 지난 이런 이야기를 왜 지금에서야 풀어내냐고요? 눈치 채신 분 계실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7월 29일 오늘은 김선욱이 다시 한번 KBS교향악단을 이끌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과 슈베르트 교향곡 9번을 연주를 하는 날이에요. 사실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지만, 첫 무대에서 무엇을 배웠을지 또 얼마나 성장하였는지 바라볼 수 있는 꽤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김선욱 & KBS교향악단 포스터

(빈체로: http://www.vincero.co.kr/project/2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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