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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Aug 04. 2021

베토벤이 없었다면... -2021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언("환희의 송가 Ode to Joy")

2021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환희의 송가 Ode to Joy". Ⓒ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이하 SSF)는 실내악의 매력을 좀 더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봄의 축제입니다. 다른 축제와는 다르게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레퍼토리와 하나의 공연 안에서도 다양한 연주자를 마주할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축제죠.


코로나19 상황으로 봄에 열렸어야 할 축제가 작년 같은 경우엔 가을에 진행됐었고, 2021년 올해는 다시 봄으로 돌아와 베토벤을 주제로 음악을 풀어냈습니다. 작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할 말이 정말 많았을 텐데...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풀어내어 주는 것은, 고난과 좌절을 극복해낸 베토벤이란 상징성이 2021년에도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언’

그렇게 메인 주제를 "환희의 송가 Ode to Joy"라고 잡아두었고, 각 공연마다 타이틀을 붙여 라인업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대략 11개의 타이틀 중에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언'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는데, 막상 뚜껑을 까 보니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에 비하면 프로그램 구성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기분이 들었어요.

두세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2중주 바장조 Op. 26
베토벤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라장조 Op. 25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사장조 Op. 30 제3번
훔  멜      피아노 5중주 제3번 내림마단조 Op. 87


‘What if’

프로그램 구성을 왜 이렇게 잡았을까? 알고 봤더니 해당 공연은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세상을 떠나버렸다면 음악사가 어떻게 진행됐을지 물음을 던지고, 그 당시 작곡 및 발표된 곡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주제였습니다.



두세크,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2중주 바장조 Op. 26

베토벤은 고전에서 낭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합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음악사에 있어서 낭만주의에 가지가 뻗어 나가지 못했을까요? 쇼팽과 멘델스존 등 후대 낭만주의 작곡가들에서 두세크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만큼 꼭 그렇지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연의 첫 포문은 두세크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2중주를 신박듀오의 연주로 열었습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에서 느낄 수 있을법한 밝은 기운이 가득했는데, 신박듀오는 어느 한쪽의 치우침 없는 밸런스를 유지하며 제법 두텁게 곡을 풀어냈어요. 그렇게 그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의 곡을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인도했습니다. 더불어 베토벤이 적잖이 영향을 받은 작곡가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죠.

신박듀오



베토벤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 라장조 Op. 25

이어서 베토벤의 두 곡이 연주됐습니다. 먼저 플루트,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세레나데를 조성현(Fl.), 이경선(Vn.), 김상진(Va.)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는데, 3악장까지는 두 대의 현과 하나의 목관 사이에서 투박한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어쩐지 앙상블이 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리어 이로 인해 그의 유서에  "오, 나를 험악하고, 고집쟁이이며, 사람을 싫어한다고 믿는 당신들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모른다."라고 적힌, 당시 세간에 알려진 베토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윽고 4악장이 연주될 땐 곡의 인상이 바뀌어 이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와 생기가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특히 세 악기의 앙상블과 특징이 이전 악장에 비하면 매우 잘 드러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어요.

왼쪽부터 이경선(Vn.), 김상진(Va.), 조성현(Fl.)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사장조 Op. 30 제3번

인터미션이 지나고 한수진(Vn.), 김준희(Pf.)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8번을 연주했습니다. 부상을 딛고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돌출되는 음정이 유독 귀에 들어올 때가 더러 있어요. 그래서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면 일정 부분 감수하고 연주를 듣게 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2악장만큼은 완성도가 무척 높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음정엔 문제가 없었고, 특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득력 높은 해석이 돋보였습니다. 그녀는 연주에 앞서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듯한 2악장은 베토벤이 한줄기 희망을 보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다.'는 곡의 해설을 해주었거든요. 이런 부분을 무척 잘 살려내었습니다. 어쩌면 부상과 핸디캡을 이겨낸 그녀의 삶이 일정 부분 녹아내려진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요. 한편 피아니스트 김준희는 3악장에서 바이올린과 거의 대등한 존재감을 드러내 곡의 특징을 함께 잘 살려내었습니다. 이렇게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어요.

왼쪽부터 한수진(Vn.), 김준희(Pf.)

베토벤의 작품을 듣고 나니, 그가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세상을 떠났다면 앞선 두 곡을 통해서 보여지듯 좌절감에 굴복한 작곡가이자, 살롱을 위해 곡을 작곡하는 등 당시에 흔하다면 흔했던 작곡가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훔멜     피아노 5중주 제3번 내림마단조 Op. 87

묘한 기분을 느끼던 중 훔멜의 피아노 5중주를 김영호(Pf.), 김다미(Vn.), 최은식(Va.), 이정란(Vc.), 추대희(Db.)가 연주했습니다. 꽤 훌륭했어요. 특히 당대에는 피아노 5중주에서 흔한 구성으로 포함되었다던, 더블 베이스의 역할이 돋보였습니다. 곡이 한층 풍성해졌거든요. 무엇보다 실내악적인 유기적인 호흡이 앞서 들었던 다른 곡들보다 가장 좋았고, 가장 깊은 무게감을 느끼기도 했지요.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곡을 감상하며,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세상을 떠나면 어땠을까?'라는 던져진 질문에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베토벤이 없었다면, 훔멜은 갖고 있던 틀을 깨고, 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작활동을 이어 갈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베토벤과 나름 경쟁관계 속에서 성장을 했던 그였기에, 당시 저물어가던 작곡가였기 때문에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한참 머릿속에서 할 무렵 모든 공연이 끝이 났습니다.

왼쪽부터 김다미(Vn.), 이정란(Vc.) 추대희(Db.), 최은식(Va.), 김영호(Pf.)




배토벤이 세상을 떠나도 그를 대체할 음악가가 존재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며 이를 예술로 녹아내리는 베토벤의 상징성을 대체할 수 있는 음악가를 마주하기까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사한 마음을 품으며 베토벤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함께 가져본 시간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우리는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처럼 시련 속에도 인내하고, 극복하며 세상을 포용하는 마음을 품어낸다면... 언젠가 우리에게도 환희에 가득 찬 순간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이미지 출처

- 2021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환희의 송가 Ode to Joy" 포스터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http://www.seoulspring.org/program/ssf-sched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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