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평창대관령음악제 ALIVE 산
여름, 유럽의 오케스트라는 시즌오프 기간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기획한 연주회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시즌 연주(우리나라의 정기 연주회)’는 들을 수가 없죠. 대신 각 지역마다 다양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립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스위스에선 루체른 페스티벌, 오스트리아에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꼽을 수가 있겠네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지역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 축제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봄에는 통영 국제음악제, 여름에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가장 대표적이죠.
평창대관령음악제는 2004년 대관령음악제를 시작으로 벌써 18년째 이어져 왔습니다. 자연의 풍광 속에서 리사이틀, 실내악, 교향악 할 것 없이 다양한 클래식 레퍼토리를 맛볼 수 있어요. 개개인별 라인업도 훌륭한 편이지만, 특히 교향악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출연진들이 눈에 띕니다. 2018년,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예술감독으로 오르면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BRSO 제2바이올린 수석), 박지윤(라디오프랑스필 악장), 첼리스트 김두민(뒤셀도르프심포니 첼로 수석),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클라리넷 수석), 오보이스트 함경(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오보에 수석)등 해외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우수한 한국 연주자들을 여럿 볼 수 있죠. 함께 참여하는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개인 기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누구 하나 ‘어벤저스 어셈블’이라고 외쳐도 이상할 것 없는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팬데믹에 절제하는 삶을 배워나가고 있어 예년처럼 축제의 모든 순간을 즐기기란 어려웠습니다. 올해는 폐막공연, 단 하나의 연주회만 다녀왔지요. 이 공연에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 지휘자는 마카오 출신의 리오 쿠오크만이 맡았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이 협연자로 나섰습니다. 곡 전반적으로 모차르트 특유의 생기가 느껴지는 가하면, 때론 쓸쓸하고 아련한 기분을 함께 선사하기도 했죠. 힘찬 아티큘레이션이 돋보였고, 그의 표현력은 클라리넷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온몸을 던져 곡을 표현하고 있는 그를 보니 ‘바셋 호른’으로 연주되었다면, 연주자 개인의 해석은 제한적이겠구나 싶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완성하기에 앞서 1악장을 스케치할 때 ‘바셋 호른’이라는 악기를 염두에 두고 작곡했다고 하는데요. 바셋 호른은 알토 클라리넷보다 한 옥타브 낮은 악기로, 주법 때문에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저음이 훨씬 풍부하기 때문에 곡 자체가 가져다주는 깊이감은 더 가져갈 수 있겠지만, 연주자가 해석하는 표현방법에는 제약이 많지 않았을까요?
곡을 감상하며 잠깐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삑삑거린다는 이유만으로 목관악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모차르트가 당시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슈타들러와 막역한 친구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점은 무엇일까? 심지어 모차르트의 현물을 횡령하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빚쟁이 신세에도 손절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물음에 자연스럽게 또 다른 생각이 이어집니다. ‘아… 조인혁을 보아라. 그가 연주하는 클라리넷을 보아라.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 않는가? 클라리넷이 음색을 바꾸면 곡의 인상이 바뀐다. 악기 하나에 굉장히 다양한 면을 품었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삶의 끝자락에서 클라리넷을 통해 우리네 삶을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즐거운 면이 가득한 듯 하지만, 동시에 외롭고 처량하기도 한 모습을 말이다. 그럼에도 곡은 쾌활한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 그런 것이 모차르트의 매력이지.’하고 말이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모음곡
모리스 라벨, 『라 발스』(왈츠)
앞서 들었던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중 오케스트라 반주가 군데군데 강렬한 모습을 보이곤 해서, 장미의 기사 모음곡과 라 발스는 어떻게 풀어낼지 되게 궁금했습니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협연자 없이 포디움에 선 리오 쿠오크만은 다이내믹을 한층 강화했는데, 이 때문에 오케스트라에 역동적인 연주가 도드라졌죠.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의 모음곡은 그 원형이 오페라인데요.
18세기 중반, 비엔나 귀족 사회에서는 신랑 측에서 신부에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예물로 전달하는 일종의 청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물을 전달하는 사람이 장미의 기사인 것이죠. 오페라는 어린 ‘옥타비안 백작’이 공작부인과 밀회를 즐기다 공작부인의 사촌, ‘오크스 남작’이 약혼녀 ‘조피’와의 결혼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공작부인의 집에 방문하면서 1막이 진행됩니다. 이때 어린 백작은 하녀로 위장하는데요. 이런 그를 오크스 남작이 집적댑니다. 오크스 남작이 떠나자, 공작부인은 옥타비안 백작에게 장미의 기사를 부탁하는데, 이 어린 백작은 은으로 만든 장미를 전해주다, 오크스 남작의 약혼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약혼녀 ‘조피’의 마음도 옥타비안 백작에게 마음이 돌아섰는데, 당연히 ‘조피’의 집안에선 파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안 백작은 하녀로 위장해 오크스 남작을 골탕 먹이면서 파혼을 이끌어내고, 사랑을 쟁취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모음곡에선 1막을 별도로 담아내지 않았지만, 리오 쿠오크만은 전주곡을 통해 밀회를 표현하듯 굉장히 강렬하게 곡을 풀어냈습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로 표현된 ‘옥타비안’과 ‘조피’와의 대화가, 왜인지 모를 서글픈 분위기를 담아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곡의 중반부에선 마치 거대한 산을 우러러보는 느낌도 함께 들었는데, 사랑의 위대함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R. 슈트라우스에게 가지고 있던 ‘알프스 교향곡’ 이미지와 이번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제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리오 쿠오크만은 그렇게 곡을 풀어내었습니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왈츠의 선율이 꾸준히 노출되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관찰하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입니다. 리오 쿠오크만은 객석에서 왈츠를 추게 하기보다, 음악으로 왈츠를 그려내는데 집중했습니다. 다이내믹 폭이 차츰 깊어지는 모양새였고, 최후엔 왈츠를 통해 환희의 순간을 만들어내었죠. 물론 피날레에서 흘러나오는 왈츠는 오크스 남작이 퍼붓는 저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뒤에 나오는 라벨의 라 발스를 들어보니 ‘환희의 순간’으로 결말을 내는 것이 맞다고 확신했습니다.
라벨의 라 발스 또한 왈츠의 선율입니다. 하지만 장미의 기사 모음곡과 달리 왈츠를 강요당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죠.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1, 2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 더블베이스가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 속에 왈츠의 선율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이때 리오 쿠오크만은 서로 상충하는 느낌을 너무나 잘 살렸습니다. 마찬가지로 다이내믹하게 곡을 이끌어 내었고, 이후 냉혹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광기 어린 선율로 끝을 맺게 되죠.
이번 음악제에는 ‘산’이라는 주제를 담아내었습니다.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지는 음악제라는 점에서 ‘Mountain’을 나타내면서도,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 ‘Alive’를 나타내기도 하여 두 가지 주제를 함께 담아내었죠. 폐막공연의 경우 ‘내려갈 때 보았네’라는 부주제를 담아내었기 때문에 삶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에서는 클라리넷이 주는 폭넓은 음역대가 우리네 삶과 닮아 있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삶이란 외롭고 처량할 때도 있지만, 이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라며 쾌활하게 넘겨보았죠.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에선 삶의 로맨틱한 순간들을 조명하면서, 관점에 따라 환희와 절규가 교차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라벨의 라 발스는 이런 교차지점을 다시금 이어받아 우리네 삶은 사실상 비극으로 치닫는 광기 어린 선율로 끝이 나죠. 리오 쿠오크만은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곡을 풀어내었기 때문에 굴곡진 인생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했고, 앙코르로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 중 피날레를 장식한 왈츠의 선율을 선택하며 열린 결말 속에 환희에 가득 찬 해피엔딩으로 끝을 내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평창대관령음악제
(평창대관령음악제 MPyC FB: https://www.facebook.com/MPyC.kr/posts/1089898961517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