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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Aug 24. 2021

클래식 음악은 진화한다.

클래식 레볼루션 2021

2021 클래식 레볼루션. Ⓒ 롯데콘서트홀


이제 어느덧 한여름 더위가 한풀 꺾인 모양새이지만, 후덥지근한 온기는 여전하네요. 지난번 포스팅에는 클래식 여름 음악 축제에 대해서 다루었는데, 이번에도 이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언급해보려 합니다.


제 기억 속에는 8월이면, 연주회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마주하기엔 항상 비수기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평창 대관령 음악제가 있긴 하지만, 사실 다른 시기에 비하면 눈길을 끄는 연주회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습니다. 클래식 전용 극장인 롯데콘서트홀에서 ‘클래식 레볼루션’이라는 한여름의 페스티벌이 8월에 진행되면서부터입니다. 팬데믹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의 악단과 연주자들로 꾸려졌지만, 교향악부터 실내악까지 나름 알찬 구성으로 진행됐어요.


이번 페스티벌은 브람스와 피아졸라를 테마로 다루었습니다. 교향악으로 진행했던 브람스를 듣고자 참석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했던 것은 피아졸라가 테마로 서울시향이 연주했던 폐막 공연이었습니다.



피아졸라,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 스타일의 세 악장

피아졸라라고 한다면 아마 리베르 탱고쯤은 다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만큼 탱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피아졸라의 음악은 춤추기 위한 음악이 아닌, 연주를 위한 ‘누에보 탱고’ 시대를 열었던 작곡가입니다. 이 곡은 그런 특징을 아주 잘 나타낸 곡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저는 원체 독일, 오스트리아 계열의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피아졸라의 음악을 찾아 듣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는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어요. 막상 곡을 들어보니, 이름 그대로 탱고의 선율이 그대로 들려왔지만,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분위기는 엉뚱하게도 사운드트랙, 그러니까 영화음악처럼 곡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lassical music’에 대한 정의를 우리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지금이야 오케스트라로 작곡된 영화음악, 게임 음악과 같은 것들을 클래식 음악에 편입하지 않는데, 나중에는 이런 음악들도 모두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하고 말이죠.



모차르트, 오보에 협주곡 & 피아졸라, 망각

그러던 중 오보에가 중심이 되는 두 곡이 이어졌습니다. 한 곡은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을 오보이스트 함경이 연주했고, 또 다른 한 곡은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망각)이 연주됐어요.


저는 수많은 악기 군 중에 목관악기의 음색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보에라는 악기에 큰 매력을 느끼곤 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악단이나 연주자가 몇 안 되는 오보에 레퍼토리를 연주한다고 한다면, 반드시 찾아가 보려고 한답니다.


이번에 연주된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은 플롯으로도 많이 연주되는 곡인데, 제게는 오보에 버전에 되게 애착을 갖고 있어요.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으로 지정을 해두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에 박아둘 만큼 말이죠.


이런 곡을 실연을 통해 마주한다면 누가 좋을까 생각해 본 적 있는데, 하인츠 홀리거는 사실상 좀 힘들겠지 싶었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꼽아본 것이 프랑수아 를뢰, 알브레히트 마이어였어요. 근데 사실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한국인 연주자에게선 오보이스트 함경을 통해 이 곡을 들어보자 싶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이번 연주가 꿈만 같은 곡에, 꿈만 같은 상황을 마주하였고, 이로써 소원의 일부를 성취하게 된 셈이었습니다.


연주는 딱 기대한 만큼이었습니다. 함경의 오보에는 고요하고도 아름답게 곡을 풀어내었는데, 서울시향은 오보에라는 악기가 선사하는 음색을 보다 잘 느껴보라며, 독주악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반주가 이어졌어요. 좀 특이했던 것은 늘 들어오던 음반에 비하면, 함경이 연주했던 카덴차가 유독 낯설기도 했는데 오히려 오보에의 매력을 크게 이끌어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인터미션이 지나고 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망각)이 이어졌어요. 듣기론 이번 페스티벌에서 피아졸라 테마로 연주회가 이어졌던 순간들마다 굉장히 다양한 버전으로 오블리비언이 연주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서울시향의 연주에는 오보에가 주제 선율을 이끌고 현악기가 반주를 하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오보에 연주는 이미성 수석이 맡았는데, 앞서 진행했던 오보이스트 함경과는 또 다른 마법을 펼쳐내었어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최면에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마치 반주처럼 이어진 오케스트라는 현악기로만 이루어졌고,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를 했기 때문인지 현들의 음색은 선선한 가을의 느낌을 선사했습니다.


이런 현들의 음색이 곡의 끝자락에선 그 쓰임새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기억의 필름이 툭 끊어진 것처럼 연주가 이어졌어요. 그래서인지 ‘망각’이라는 타이틀에 설득력을 가했고, 이로써 커다란 여운을 선사했답니다.


저는 이 두 곡을 통해 오보에로 최면에 걸린 상태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꿈같은 순간을 기억 속에 꼭꼭 담아두며, 절대 지우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지만, 언젠가 잊힐 시간예술의 흐름 속이라는 건 변함이 없겠구나.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하고 말이죠.



하나스테라, 협주적 변주곡

이어서 하나스테라의 곡이 이어졌습니다. 변주된 곡마다 각 파트별 악기의 매력을 충분히 발산해내며, 서울시향 단원들의 개인 기량이 돋보였던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첼로, 비올라, 오보에, 바이올린, 더블 베이스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군요. 이런 악기들의 매력들을 저마다 보여주곤 말람보의 리듬으로 페스티벌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오스모 벤스케 & 서울시립교향악단와 협연한 오보이스트 함경


사실 마지막 곡을 들을 땐, 앞서 들었던 곡들을 곱씹어 보았기 때문에 조금 다른 생각에 잡혀 있었어요. 첫 곡을 들었을 때 생겨난 물음, ‘classical’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기 위해서 말이죠.


뭐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 보이다 답을 찾아낸 것은...

‘오늘이 어제가 되는 과거의 길목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도록 끝없이 재생산하는 음악가들 덕분에 관현악기를 비롯하여, 탱고, 로코코, 말람보와 같은 문화적 색채감을 잃지 않는구나...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은 이 악기들의 음색과 각 나라마다 계승된 이 음악들을 모두 아울러 우리는 클래식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죠.


저는 이렇게 ‘classical’에 대한 정의를 저마다 내려보는 것이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가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저 그런 비약에 가까운 확대 해석이지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음악을 감상하는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늘 후기로 이렇게 글을 써 보이니, 그 좋은 음악 나도 들어보자 싶으신 분이 또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올해부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클래식 전용 극장, 예술의전당에서도 여름음악축제(8.27-29)가 열린다고 합니다. 대관령 음악제나, 클래식 레볼루션과 같은 클래식 여름 음악축제를 아직 즐겨보지 못하셨다면, 여름의 끝자락에서 예술의전당을 찾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감히 제안을 해보입니다.



※ 이미지 출처

- 클래식 레볼루션

(롯데콘서트홀: http://www.lotteconcerthall.com/kor/Performance/ConcertDetails/258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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