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강원 Aug 01. 2021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이제야 이뤄진 한국 초연, 성공적이었다.

클래식 음악 장르에는 포괄적으로 볼 때 오페라, 발레, 콘서트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콘서트를 더 자주 찾게 됩니다.


애초에 관현악에 이끌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게 된 부분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콘서트를 더 자주 찾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오페라나 발레와 같은 극장용 작품을 완전히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오페라 같은 경우에는 좋아하는 작품이거나, 호평이 자자한 작품일 땐 자석에 이끌리듯 감상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 국립오페라단

지난 7월 1일부터 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국립오페라단이 기획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가 올려졌습니다.


올해 공연 소식을 처음 접할 땐, 푸치니의 여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작품이기도 하고, 소장하고 있는 DVD(블루레이였나?)도 한 번에 감상하기보단, 여러 번 나눠서 감상했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일정을 잡아두진 않았습니다. 특히 그 시기쯤 직장에서의 업무로 좀 바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첫 공연 직후 소셜 미디어에선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애호가 사이에서도 호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더군다나 한국 초연으로 이뤄지는 이번 공연을 놓치면, 또 언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n차 관람을 하는 분도 계셨죠.



‘이를 어쩌나... 안 되겠다. 일단 가자!!! 그런데 언제 가지?’


이틀째 되는 날 후기를 살펴보니 좋긴 했는데, A캐스팅에 비하면 조금은 아쉬움이 묻어난다는 이야기에 결과적으로 A캐스팅의 완성도가 조금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A캐스팅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르는 7월 3일, 저는 오후 5시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뤄지는 서울시향의 연주를 감상하기로 계획했는데, 오후 3시에 진행하는 서부의 아가씨를 보는 것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습니다. 하루 두탕을 뛰기에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고, 또 사전에 계획되어 있던 스케줄을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죠. 결국 7월 4일, B캐스팅이 무대에 오르는 서부의 아가씨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것은 미국 골드러시 시대에 캘리포니아로 몰려든 이민자들입니다.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1막의 줄거리만 이해해도 맥락을 잡기엔 무리가 없기 때문에 1막의 줄거리만 좀 자세히 기록하겠습니다.


금을 캐러 온 이민자들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술집, <폴카>를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공 ‘미니’.
그녀는 단순히 술집만 운영하지 않습니다. 꽤 자립심이 강한 여성으로 그려내었고, 광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기도 하고, 술집에서 카드놀이나 하며 시간을 때우는 광부들이 도박에 모든 돈을 날리지 않도록 자금을 관리하면서 말이죠.

이런 그녀는 광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습니다. 특히 보안관 ‘랜스’가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보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처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것이라며,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마침 이방인 ‘존슨’이란 사람이 술집을 찾아옵니다. 미니와는 일전에 우연히 만났던 사이인데, 술집에서 또 만나게 됩니다. 서로 호감을 가진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죠.

한편 요즘 광부들의 최대 이슈는 도적 ‘라마레즈’를 잡는 일입니다. 그래서 광부들은 술집에 보관된 금을 지키기 위해 조를 짜서 경비를 서기도 하죠.

이런 상황 속에서 ‘존슨’이 술집에 들어왔던 것이죠. 보안관 랜스는, 존슨이 이방인이라 신분도 의심되고, 미니와 썸도 타는듯하니 질투도 나, 광부들을 선동하며 견제를 해보지만, 미니가 그의 신분을 보증한다고 옹호하고 나섭니다.

마침 라마레즈의 부하 ‘카스트로’가 잡혀옵니다. 카스트로는 평소 라마레즈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며, 원한다면 그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하죠. 제안을 받아들인 랜스와 광부들, 그들은 눈이 오는 혹독한 날씨를 무릅쓰고 라마레즈를 잡으러 출동합니다.

그렇게 술집엔 미니와 존슨만 남게 됩니다. 혹시 눈치채셨나요? 맞습니다. 존슨의 본명은 라마레즈였습니다. 존슨은 금을 훔치려고 카스트로와 작전을 짜 의도적으로 술집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존슨은 금을 훔치지 않습니다. 미니에게 사랑에 빠져버렸기 때문이죠. 미니도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 존슨을 집에 초대하게 되고 그렇게 1막이 끝이 납니다

어머나, 이게 뭐람... 금을 훔치려 들어왔다가 사랑을 훔쳐버렸네?

이어진 2막에선 초대받은 존슨의 정체가 미니에게 탄로 나는 과정을 그려내었고, 3막에선 존슨을 심판하려는 랜스와 광부들 사이에서.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려는 미니를 그려내며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어땠냐고요?

대체로 무대와 연출이 훌륭했습니다. 소장하고 있던 영상물에 비하면 디테일한 요소를 잘 잡아낸 것 같았거든요. 2막에선 미디어(애나벨이라든지)에서 종종 노출되어 익숙한 그 시대의 미국 가정집이 잘 표현되었고, 3막에선 극 중 배경이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라 설경이 웬 말인가 싶을 수 있었던 부분을, 시에라 산맥 중턱을 분명히 나타내는 무대도 좋았습니다.


다만 오페라 가수들의 연기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졌던 부분이 일부 보여서 좀 아쉽긴 했습니다.

2막에선 존슨의 정체를 알아채고 보안관 ‘랜스’와 술집의 바텐더 ‘닉’을 포함한 광부들이 미니의 집에 찾아옵니다. 미니는 존슨이 집에 오지 않았다며 대충 둘러대고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이 과정에서 ‘닉’은 미니에게 “원한다면 남겠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주변에 있던 일부 관객들이 이 포인트에서 피식 웃으시더군요. 아마 옆에 계셨던 관객분들은 ‘닉’의 이 한마디가 그저 추파를 던지는 한 남성에 지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추어진 것 같습니다.


‘닉’이 미니의 집에서 존슨을 발견하고, 애써 덤덤하게 넘기는 모습을 연기한 뒤, 상기 대사가 이뤄졌다면, 미니와 닉과의 유대관계가 쉽게 설명이 되면서, 한 마디 대사가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을 텐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진 않아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존슨을 쫓는 무리들이 미니의 집을 나선 후에도, 보안관 ‘랜스’ 같은 경우엔 계속해서 집 주변을 순찰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추후 랜스가 존슨을 총으로 쏘는 순간이 있는데, 이런 디테일을 잘 살려내었기 때문에 존슨이 총에 맞는 장면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옥에 티를 또 하나 짚어본다면, 거짓말을 한 존슨이 결국 미니의 집에서 나가게 됩니다. 그가 집을 나선 직후, 앞서 언급했듯 랜스가 존슨을 총으로 쏘죠. 문 앞에서 부상을 입은 존슨은 염치 불고하고 미니의 집에 다시 들어섭니다. 이런 존슨을 미니는 또 거두어 주고, 2층에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윽고 보안관 랜스가 미니의 집을 수색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때 2층을 살펴보지 않는 것입니다.


무대를 일반 계단으로 꾸며 두었기 때문에 2층을 살펴보지 않는다는 게 지켜보는 입장에선 좀 어이가 없을 정도였죠. 2층을 살펴보되 존슨이 잘 숨어있거나, 아니면 차라리 위층으로 이동하는 수단을 계단이 아니라 필요할 때 꺼내어 쓰는 사다리로 무대를 꾸며두었다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이쯤 되면, 연기 말고 오페라 가수들의 역량은 어땠을까 궁금하신 분도 계실 텐데요. 개인적으론 오페라 가수들의 성량과 전달력에 있어서는 존슨 역을 맡은 테너 국윤종씨가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세 주역 가운데 가장 귀에 잘 들어왔던 가수였는데, 탄탄하긴 했지만, 힘이 잔뜩 들어가 무게감 있게 풀어내기보단 조금은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3막에선 좀 힘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는데... 사실 3막의 경우 존슨 같은 경우 광부들한테 잡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던 상황이기 때문에 의도하신 건가 싶기도 합니다.


한편 오케스트라 반주를 맡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후일담이 너무 좋아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하지만 콘서트 때보다는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고, 특히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가 극을 풀어낼 때 어떤 장치를 해주는지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연주로, 가수의 연기와 감정이 은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거나, 눈바람 불어오는 설경에 윈드 머신이 연주되는 등 극 중 배경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냈습니다.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커튼콜


이렇게 저렇게 적어 보았으나, 한국에서 초연으로 이뤄진 작품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까진 서부의 아가씨는 영상이 업로드되진 않았지만, 국립오페라단은 '크노마이오페라'라는 명칭으로 VOD 서비스(유료)도 진행(http://www.knomyopera.org)하고 있으며, 다음 국립오페라단의 일정은 8월, 베르디의 ‘나부코’를 무대에 올린다고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가볼까 하는데,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아무쪼록 무사히 공연이 진행되면 좋겠네요.


그냥 마무리하면 섭섭하니깐, 3막에서 심판의 순간 직전에 부르는 존슨의 노래 한번 들어보시라고 링크드립니다.

Ch'ella mi creda libero e lontano(내가 자유롭게 되었다고 그녀가 믿게 해 주오.)


https://youtu.be/5I9NRyramOY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르는 Ch'ella mi creda libero e lontano



※ 이미지 출처

- 서부의 아가씨 포스터

(국립오페라단: https://www.nationalopera.org/cpage/show/showInfo/155?pageNo=1&vodCategoryId=2&showId=155&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장윤성 상임지휘자 취임연주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