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노 리사이틀
2022년의 초봄.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한국을 찾았다.
그는 서울의 롯데콘서트홀에서 세 번의 연주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구 콘서트하우스, 부산 문화회관, 대전 예술의전당에서도 연주하였다. 그렇다. 전국투어였다.
프로그램은 대구, 부산, 대전, 서울(3월 1일) 공연이 동일 했으며, 서울(3월 2일, 3월 6일)의 다른 공연은 시마노프스키의 곡을 포함하면서 바흐나 브람스를 제외하는 형태로 구성됐다.
나는 서울 3회의 공연과 대전 1회 공연에 참석했다. 사실 n차관람이라고 해봐야 프로그램에 따라 2회차 정도만 감상할 계획이었는데, 서울시향의 공연 취소 소식이 전해지고, 공휴일의 특수성에 2회차가 추가됐다.
이에따라 내가 감상한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 바흐, 파르티타 1번 BWV 825(1, 4, 6일)
- 바흐, 파르티타 2번, BWV 826(전일)
- 시마노프스키, 9개의 프렐류드 Op.1 No.1,2,7,8(2, 6일)
- 시마노프스키 20개의 마주르카, Op.50 No.13-16(2, 6일)
- 브람스, 3개의 간주곡, Op.117(1, 2, 4일)
-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전일)
크게 봤을 때, 2019년의 독주회보다 만족감이 짙었던 2022년의 투어였다. 컨디션 관리가 잘되지 않아 유독 아쉬웠던 순간을 많이 보았던 2019년과는 여러모로 달랐기 때문에 그의 해석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해석을 하는 경향은 없었던 것 같고, 곡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균형감을 갖추면서도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형태로 진행됐던 것 같다.
‘쇼팽의 색이 느껴진 바흐’
아마 이러한 타이틀은 나를 포함한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그의 바흐는 어렵고 딱딱한, 혹은 지루하다는 개인적인 선입견을 깨고,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곡을 풀어내었다. 대체로 밝은 음색이었으나 곡에 따라 색채 변화를 이끌어내었고, 드문드문 엿볼 수 있었던 템포의 변화가 돋보였다. 거의 대부분 명료한 소리를 이끌어내었던 점은 특히 인상적이다.
난 여기서 파르티타 2번을 정말 잘 들었는데, 쿠랑트의 경우 프레이즈 등 그 해석에 난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특유의 루바토가 론도에서부터 묘하게 빠져들기 시작해 카프리치오에선 꽤나 환상적인 시간을 선사했다.
'그의 시마노프스키는 이렇구나'
시마노프스키의 프렐류드에선 채도의 변화를 주며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잘 풍겨내었다. 7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8번이 인상 깊었고, 마주르카에선 특유의 불협화음에도 선이 명확하고 강렬했던 16번을 특히 잘 들었다. 그러면서도 ‘좀 더 젊었을 때 들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함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1일 공연의 경우 시마노프스키가 현재 우크라이나 지방의 태생인 점을 알려주는 듯한 멘트를 날리시곤 앙코르를 연주하였는데, 시마노프스키의 20개의 마주르카 중 19번과 9개의 프렐류드 Op.1 중 1번을 연주하였다. 뒤돌아보니 1일에 들었던 시마노프스키만큼 마음이 심란했던 적은 없다.
6일도 앙코르가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슬프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곤 희생자들을 기린다며 연주를 하였다. 시마노프스키의 곡을 들려주는 줄 알았으나, 2019년 아트센터 인천에서 연주하였던 바체비츠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연주하였다.
곡을 듣는 동안 2019년에 해당 곡을 들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마 이번에 확실하게 각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곡의 분위기가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듯했고, 그 속에서 절규와 공허, 슬픔 등이 함께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 65세의 브람스는 이렇구나'
브람스의 경우 만 65세의 어르신에게서 들어보는 피아니즘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는 가슴속을 깊게 파고드는 사무치는 감정을 이끌어내기 보다, 포근하게 감싸주는 서정적인 느낌으로 곡을 풀어내었고…
템포의 변화가 급변하는 형태로 곡을 풀어내진 않았기 때문에 관조적인 성격을 보았으나, 브람스라고 특별히 무게를 잡지는 않았기 때문에 마치 영유아기의 손자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듯한 젊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황제의 쇼팽에서 시간예술을 느꼈다.'
쇼팽은 시간예술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것 같다. 이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후다닥 지나가버린 것 같은데, 3악장의 잔잔한 여운에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날은 2일이었고, 4악장을 끝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된 건 6일 공연에서 이뤄졌다.
누군가 그랬다. 황제의 쇼팽. 그렇다.
반짝이고 기품이 있는 쇼팽, 당당한 쇼팽이었다. 그 세월의 흐름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린 화살이 보이기도, 깊게 파인 주름도 보았지만… 하여간 그의 피아니즘은 그런 것이구나 싶었다.
'우리는 보다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한편 객석에서의 상황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은 공연 중에는 본인도, 관객도 오롯이 음악에만 몰두하길 원하는 연주자이다. 따라서 녹화와 녹음은 물론, 휴대전화의 벨 소리에도 민감한 편이다. 이에 따라 기획사 측에서는 문자 메시지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커튼콜을 포함하여 모든 촬영은 금지되고, 벨 소리가 울리지 않도록 폰을 끄거나 비행기 탑승 모드로 전환해달라는 내용을 사전에 공지하였고, 공연 당일에도 특별히 방송으로 안내를 하였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앞선 대구와 부산 공연에서는 객석에서 불필요한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월 1일(롯데콘서트홀)에는 벨 소리가 세 번 울렸고, 3월 2일(롯데콘서트홀)에는 벨 소리가 한 번 울렸다. 3월 4일(대전 예술의전당)에는 객석에서 촬영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공연을 중단하려 하기도 했다는 후문이 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점은 3월 6일(롯데콘서트홀) 공연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의 앙코르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곡을 듣는 동안 정말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그때... 하필 휴대전화의 AI 음성이 울리는 것이다.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벌어졌다. 해당 관객은 앙코르 곡목을 찾고 싶었나 보다.
공연 중에 휴대전화 사용하지 않기,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리지 않기 등은 기본적인 공연 관람 수칙 중에 하나이다. 이번에는 각별히 여러 번 안내가 되었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져 아쉬움이 컸다.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 착용을 그렇게 잘 하던 민족이 맞나 싶기도 할 만큼...
한편 이런 상황 덕분에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싶었던 치메르만의 당부가 일부 납득이 가기도 했다. 이른바 관크가 생겨났을 때, 그의 연주가 분명히 흔들렸기 때문이다. 추측건대 우리네 민낯에 불거진 뾰루지를 보게 되어, 무대 밖에서는 불쾌감을 크게 드러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그래도 좋은 기억만 남기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좋은 기억만 가져가고 싶다.
1일 공연에서는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피아노 앞에 걸어가던 황제펭귄의 모습을 보았고, 6일 공연에서는 쇼팽 소나타 3번을 연주한 뒤,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여러 해프닝을 겪고도 기립박수로 열광적인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에게 양손으로 손키스를 날려주던 그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하리라.
자가격리를 감수해 줘서 고맙고, 대가의 피아니즘을 들려주어서 고맙다. BBQ의 황금올리브가 생각난다면, 다시 한국을 찾아주시길 바란다.
※ 이미지 출처:
크리스티안 짐머만 리사이틀 포스터
http://www.lotteconcerthall.com/kor/Performance/ConcertDetails/259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