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폐막공연
지난 4월 22일부터 5월 4일까지 진행된 봄의 축제,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첼리시모’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음부터 고음까지 폭넓은 음색을 가진 ‘첼로’를 특별히 강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아직도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와, 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총 13번에 걸쳐서 전달된 위로의 메시지는 저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던져졌다. 이 중 456이라는 소주제를 가진 폐막공연은 코로나19 이전의 삶에 한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우리들에게 ‘추억’을 회상하며 ‘위로’를 건넸다.
작곡가는 이 곡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처음 탱고가 생겨난 시기인 1914년경 뉴욕 플라자 호텔의 팜 코트를 배경으로 하는 막간극을 상상해 보라. ‘추억’은 아이러니나 조롱이 아닌 즐거운 상냥함이 담긴 애정으로 기억하는 것을 뜻한다.
※ 출처: 제 17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프로그램북
총 6개의 춤곡(왈츠, 쇼티세, 파드되, 투스텝, 헤지테이션 탱고, 갈롭)으로 이뤄진 이곡에서 서양국가의 춤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않은 대한민국 정서에 작곡가가 언급했던 팜 코트에서의 사교문화가 쉽게 떠올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신박듀오의 신미정 피아니스트는 곡에 대한 설명을 할 때,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길을 가다가 디스코 음악이 나오면, 1970-80년대의 머리 뽕을 이만큼 넣은 언니들이 청바지를 입고 롤러스케이트장을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추억은 여러 통로를 통해서 떠올려지게 된다.’
신박듀오는 한 대의 피아노 앞에 앉아 스물 개의 손가락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왈츠의 선율이 흘러나오자 적당히 이완된 긴장감은 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선사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반신욕을 즐기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가 하면, 디즈니 만화동산 세계로 빠져 들었던 어린 시절의 일요일 아침이 떠올려지기도 했다.
‘쇼티세’를 지나 파드되가 흘러나올 땐, 비 오는 배경을 뒤로한 채, 카페에 앉아 사랑하는 연인과 눈빛을 나누며 공감어린 대화를 주고받았던 추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신박듀오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들어 볼 수 있었던 여섯 개의 춤곡들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던 시기를 저마다 다른 풍광으로 추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베토벤의 초기 작품으로 피아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으로 이뤄진 흔치 않은 편성이다. 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 K.452와 편성과 악장이 동일하고, 해당 작품을 모델링하여 작곡된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곡을 제 17회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관악 연주자 오보이스트 올리비에 두아즈, 클라리네티스트 로망 귀요, 호르니스트 에르베 줄랭을 포함하여 피아니스트 임효선, 바수니스트 곽정선이 함께 연주를 이어갔다.
목관악기의 음색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를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귀를 사로잡는 순간이었다. 4대의 목관악기가 뿜어내는 따스함과 피아노의 향긋한 음색이 더해지자 봄의 계절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앙상블이었다.
목관악기의 포근한 음색이 도드라진 이유는 연주를 조금 더 미시적으로 관찰 했을 때 나타났다. 이들은 화려함을 앞세우거나, 개별 악기가 아주 특별하게 존재감을 나타내도록 이어진 연주는 아니었다. 즉 연주자들의 개성을 아주 확연하게 드러내는 형태로 음악을 풀어내기 보다는 곡의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 적당히 타협하는 쪽으로 음악을 풀어내었다.
곡을 듣는 내내 모차르트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베토벤이 바라보던 모차르트의 존경심은 어떠했을까? 선배 작곡가들의 곡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그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연주자로서 명성을 펼쳐나가던 베토벤이, 음악가(작곡가)로서 성장의 발판을 만들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음악적인 언어를 풀어내는데 있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녹여낼 이상적인 모델을 발견하였으니, 창작의 욕구가 솟구쳤을 것이다.
개인의 성장이란 관점에서 코로나19는 우리네 삶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해답을 얻기 위해 이상적인 여러 모델을 탐색하고, 이를 우리네 실정에 맞게 수정하여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와 관악기를 위한 5중주는 작곡가의 초기시절을 미러링하여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했다. 그렇게 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고했다며 따스한 위로를 던지고 있었다.
차이콥스키는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초연이 끝난 뒤, 일종의 번아웃 증후군으로 인해 피렌체로 넘어간다. 그 다음 오페라(스페이드의 여왕) 작업 구상도 할 겸, 휴식을 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때의 추억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 현악 6중주 ‘플로렌스의 추억’이다.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박재홍, 두 명의 비올리스트 이한나, 이화윤, 그리고 두 명의 첼리스트 조영창, 심준호 이렇게 여섯 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섰다.
차이콥스키는 이탈리아의 풍광이 꽤 강렬했던 것 같다. 1악장부터 굉장히 열정적이고 화려한 색채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 속에서 불현 듯 보이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울한 감성은 어쩐지 우리네 삶과 맞닿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어 점차 우리네 삶의 활기가 띄고 있는 모양새지만,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코로나19로 인해 ‘코로나 블루가’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주에는 이런 생각을 뒷받침이라기라도 하듯 롱코비드에 시달리는 확진자처럼 헛기침이 들려오는 연주가 이어지기도 했다.
2악장에 이르러서는 우울감의 따른 우리네 삶에 적극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피치카토 사이에서 펼쳐지는 강동석 바이올리니스트와 조영창 첼리스트가 주고받는 대화에선 실내악축제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을 대표하여 위로의 메시지를 대담형식으로 이끌어 낸 듯하였다.
3악장을 지나 4악장에 이르러서는 러시아 춤곡을 떠올리는 선율이 이어졌다. 여섯 명의 아티스트가 곡을 열정적으로 풀어내면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배려를 하는 순간이 주기적으로 이어져 실내악의 매력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규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앙코르가 이어질 땐 라인홀트 글리에르의 8중주 3악장을 연주하였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의 곡을 연주한다는 건, 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축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춤곡’이 메인이 되면서도 ‘추억’에 빠져 ‘위로’의 메시지를 펼쳐내었던 폐막 공연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다양한 레퍼토리가 함께하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그 따스함 속에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정말로 봄을 주입시켰던 시간이었다.
내년에도 더욱 푸르른 주제와 레퍼토리를 가지고 찾아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