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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Jul 25. 2021

클래식 음악도 다양하고, 신선하다.

음악의 다양성 속에 요상하고, 신선했던 예술적 경험담

2021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좌)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 (우) 베토벤 교향곡 1번. Ⓒ 서울시립교향악단


클래식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나 연주자의 서로 다른 해석을 듣는 게 꽤 매력적인 장르입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는 너무 자주 연주되는 곡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공연 프로그램 때문에 발걸음이 망설여지는 경우도 생겨요.


지금은 팬데믹으로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나 연주자가 내한 공연 한번 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팬데믹 이전에는 레퍼토리 발굴에 있어선 정말이지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기획하시는 분들, 이 곡들만 제외해 주세요. 제발!

(교향곡) 드보르작 9번, 베토벤 홀수번호, 브람스 1, 4번, 말러 1, 2, 4번, 차이콥스키 4번 이후
(피아노 협주곡)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브람스, 시벨리우스, 차이콥스키, 브루흐


물론 이해는 합니다. 유료관객만으로 결정적인 수익구조를 내는 곳은 아니라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곡을 선택해야 사람들이 몰릴 테니까요. 하지만 음악에도 예술적 흐름이란 게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레퍼토리의 발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서울시향의 공연기획 전문가 ‘볼프강 핑크’가 예술적 흐름에 발을 맞추어 주고는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획이 지난 4월 정기연주회에 있었던 공연이었죠.




지난 4월, 다수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교향악축제에 이목이 쏠려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축제의 현장을 함께 즐기고 있었는데, 사실 이 틈 사이에서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들은 4월의 첫 번째 정기 연주회에서 미묘한 균형감을 유지한 채 ‘시벨리우스 교향곡 제1번’을 풀어내었습니다. 오스모 벤스케는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서서히 나타내더니, 음악을 통해 안개 낀 산 정상에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침엽수를 시각화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날, 시벨리우스보다는 ‘페테르 외트뵈시의 말하는 드럼’이 좀 더 기억에 남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무대 앞에 팀파니, 심벌즈, 마림바 등의 여러 타악기가 넓게 배치되더니, 퍼커셔니스트 박혜지가 그 모든 악기를 연주하면서 신선한 경험을 안겼기 때문인데요.


그녀는 육성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악기에 말을 걸었고, 스네어 드럼에 스틱을 세워 떨어뜨리더니, 불규칙한 진동이 발생하도록 연주를 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페티스트와 연주를 이어받기도 하고, 두 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들고 나온 냄비와 프라이팬을 쳐 보이는 등 오케스트라와 유기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연주를 이어나갔습니다. 독특하고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마치 가수 하림이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대중 음악계에서 음악의 다양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듯, 이들은 클래식 음악에서 현악기와 관악기에 집중되어 있던 매력을 타악기에서도 느껴보라며 관객에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였습니다.


서울시향과 협연 무대를 가진 퍼커셔니스트 박혜지


이쯤 되면 타악기 연주 혹은 퍼켜셔니스트 박혜지의 연주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로 그녀는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 참여하기 때문에 오는 8월 29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관련 공연을 한번 살펴보시면 어떨까요?




아무튼 간에 서울시향은 4월의 두 번째 정기 연주회에서도 음악의 다양성에 대한 시도가 이어졌어요. 알프레트 시닛케의 ‘하이든식의 모츠-아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처음엔 어둠 속에서 연주가 시작됐는데, 현대 음악 특유의 난해한 멜로디가 울리더니 트레몰로로 인해 혼란스러운 순간을 마주할 무렵 갑자기 조명이 밝아집니다.


이어서 고전주의가 풍겨오는 친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습니다. 때론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연주하기도 했으며, 곡의 말미에서는 점차 어두워지는 조명 사이로 연주자들이 무대를 빠져나가며 곡을 서서히 마무리 지었습니다.


완전한 암전이 이뤄지고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나왔어요. 난해함과 익숙함 사이를 오가는 이 곡을 들으며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은 요상한 예술적 경험에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하면서도...


사실 전 동시에 오만한 생각을 함께 가지기도 했답니다. 암전 속에 연주가 중단된 고요함까지도 곡에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박수소리에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 누군가 ‘페이드 아웃되던 연주의 형태가 퇴근 후에도 휴대전화로 업무를 보는 우리네 삶을 나타낸 것’이라고 의견을 주었는데, “아차!” 싶더라고요.


그제야 고전과 현대의 융합 속에 이뤄진 이 곡이 과거에는 밤이 깊었을 때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현대사회에는 좀처럼 고요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유도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관객 입장에서 생성된 개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라 억측일 수 있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암전 속에 박수를 친 관객과 함께 만들어간 이 곡에서 숨겨진 메시지를 유추해보는 재미도 함께 했어요.


서울시향이 연주한 하이든식의 모츠-아트




개인적으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현대 음악을 즐겨 듣지 않습니다. 멜로디가 귀에 쏙쏙 박혀 오지 않아 오랫동안 듣고 있기가 좀처럼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음악이야 말로 보다 높은 몰입도를 선사하는 현장에서야 그 매력이 크게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참 부럽습니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각 시즌별 레퍼토리를 살펴보면 근현대 작품을 연주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국내의 클래식 공연의 흐름을 보면 크게 볼 때 대중적인 곡만 쫓아가는 흐름이 한 줄기, 대중을 모으기 위한 이벤트(가령 다른 장르와 콜라보) 한 줄기로 뻗어 나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적 흐름, 그러니까 르네상스-바로크-고전-낭만-근현대로 넘어가는 이런 일련의 예술적 흐름과 본질은 간과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사골’이라고 불리는 프로그램 구성에 지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다가가기 쉬우면서도 신선한 예술적 경험을 느끼게 해 줄 세련된 레퍼토리가 더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아래는 본문에 언급한 알프레트 시닛케의 ‘하이든식의 모츠-아트’입니다. 난해함과 익숙한 선율이 동시에 나오는 그런 작품이죠. 제가 느꼈던 경험을 이렇게나마 공유해보며 글을 줄입니다.


https://youtu.be/oTR1U83s5z0

Hamburger Camerata, Ralf Gothoni



※ 이미지 출처

- 2021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1번 포스터

(서울시립교향악단: https://www.seoulphil.or.kr/perf/view?perfNo=4149&calendarDate=2021/04/15&langCd=ko&menuFlag=MFLG0001)

- 2021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베토벤 교향곡 1번 포스터

(서울시립교향악단: https://www.seoulphil.or.kr/perf/view?perfNo=4153&calendarDate=2021/04/21&langCd=ko&menuFlag=MFLG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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