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대는 참 쿨하다. 그래서 ‘낭만’은 어느덧 옛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낭만 속에 들어간 감정의 과잉은 현시점에서 전혀 세련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클래식 음악의 사조를 추천한다면 당연히 고전주의를 추천해 볼만하다.
고전음악 전문 악단 ‘오케스트라 드 챔버 드 파리’가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평가받는 막심 에멜리아니체프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지난 6월 12일 잠실에 위치한 롯데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서곡’,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교향곡 3번>을 연주했다.
이름 그대로 체임버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에 악단의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래서 에멜리아니체프의 지휘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순간순간의 즉흥성이 빛나는 구간이 많았다.
이는 첫 곡으로 연주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서곡’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많은 구간에서 오페라의 숨결을 불어넣는 듯 순간의 움직임을 활용한 연주를 이어갔다. 특히 곡의 앞부분에 눈길이 많이 갔다.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분위기를 관악기와 저음악기가 떠받치고 있는데 바이올린과 같은 고음 악기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두 구간의 대비를 극대화한 장면이 포착됐다. 음향적으로는 매우 이질적이었는데, 설득력은 있어 곡을 듣는 재미가 있었다.
한편 선우예권이 풀어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대체로 피아노의 울림을 적게 가져간 편이라 곡이 굴곡 지지 않았다. 평면적인 연주 속에 좀 더 고전에 가깝게 해석하고 있는듯했다.
음색은 밝은 편이었지만 화사하진 않았다. 이 때문인지 3악장 초반부의 한 프레이즈에서는 피아노가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풀이 죽어버리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연주가 이어짐에 따라 비올라 솔로와 호흡을 맞출 때에는 반짝거리는 음색을 마주할 때도 있었다.
고전에 가까웠던 흐름은 1악장과 3악장의 카덴차를 맞이해서야 다음 시대의 포문을 여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말하자면 1악장의 카덴차에선 울림이라는 진폭을 키우는 모양새였고, 3악장의 카덴차 이후에는 입체감이 살아나거나 때론 타현악기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한편 2악장은 몹시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시작한 1악장의 개시부와 같은 결을 유지했다. 점점 꿈속으로 빠져드는 듯 소리가 옅어지는 흐름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이어지는 시적인 표현도 훌륭했다.
인터미션 이후 진행된 베토벤 교향곡 3번의 경우 대체로 즉흥성이 강한 해석이었다. 거시적 관점에서 방향성은 제대로 잡고 있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연주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1악장의 도입부에선 빠른 템포로 프레이즈의 구간을 길게 가져가는 바람에 호흡할 수 있는 구간이 되게 적었던 반면 곡이 진행됨에 따라 순간의 셈여림으로 클라리넷이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이내 템포나 호흡을 여유 있게 풀어나가기도 했다.
2악장 장송행진곡의 경우 곡 초반부에선 말러 교향곡 1번 3악장이 떠오를 만큼 익살스러움이 강조되는 형태였다면, 중반부에 위치한 장렬한 악상부터는 편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엄하고 단단한 곡의 특성을 적절히 잘 살려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외에도 시종일관 제1바이올린 파트를 꼬집듯이 지휘하며 곡에 생동감을 살려내는가 하면, 4악장 중 제2바이올린, 첼로, 제1바이올린의 각 수석 연주자들로 잠시 잠깐 트리오를 결성하였던 순간 등 즉흥적이고 독특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여기저기 샘솟고 있었다. 다만 이에 따라 앙상블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란 감정이 함께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에게 '영웅'이란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공연은 음악을 듣는 내내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독특한 시간이었다.
이들의 연주는 오는 6월13일 목요일 춘천문화예술회관과 6월 14일 금요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도 함께 할 수 있다.
⁃ 프로그램:
모차르트, 돈 조반니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베토벤, 교향곡 3번
⁃ 프로그램:
(1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중 2악장
(2부)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4악장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