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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강원 Jul 27. 2021

2021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3전 4기. 베토벤의 정신을 젊은 거장에게서 느껴보다.

예술가들도 코로나19 확산세로 계획된 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작년 같은 경우엔 감염병을 대처하는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확산세가 심해질 경우 공연 자체가 취소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많은 연주자들이 경험해봤겠지만, 상대적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진 콘서트 피아니스트 중에선 김선욱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3월에 예정되어 있던 연주가 한차례 취소되고, 9월에 일정을 잡아두었더니 코로나19 재확산 시기와 맞물려 또 취소되고, 12월에 일정을 잡아두었더니 다시금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무려 세 번이나 일정을 취소해야만 했죠.


독일에 거주하고 있으니 자가격리 기간만 세어보아도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그런 상황...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베토벤, 브람스에 있어선 아주 훌륭한 해석과 연주를 보여주는 아티스트인 데다, 특히 작년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들려주려던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관객으로서도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김선욱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3전 4기 해보겠다.’는 내용을 전했는데,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면서, 그 불굴의 의지가 느껴져, 그 언젠가 연주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꼭 가보리라 생각하게 됐죠.



피아니스트 김선욱, 연주를 하다!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 빈체로

지난해 12월에 대면 공연 일정이 취소되었지만, 집콕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온라인 공연을 선사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실 연주자 본인은 허공에 대고 연주하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 관객이 있더라도 우리들은 숨죽이고 연주를 감상하기 때문에 비대면이라도 환경이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들려오는 박수소리, 연주 중에 객석에 들려오는 관객들의 희미한 잡음과 같은 것들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커다란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가령 저도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소통 없이 일방통행을 겪어봤던 기억을 떠올리면, 공허하고 허무한 기분이 어떤 것일지 뻔히 예상되더라고요.



그러다 올해 1월, 김선욱은 관객을 모시고 연주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저도 객석에서 그를 마주했습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아! 조금이라도 일찍 이 사람의 연주를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었던 연주는 오히려 달랐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미뤄진 연주회로 인해 베토벤이 내면세계에서 얻은 인생을 명상하는 태도, 깊은 성찰과 같은 것들을 김선욱 본인도, 그를 지켜보던 우리도 다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는 B(birth)와 D(death) 사이에서 같은 듯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하고, 방향성을 다시금 되짚어보는 사색의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실제로 또 그런 연주였어요. 되게 무겁진 않지만, 묵직했고 꽤 성숙한 연주였으며, 사색적인 그런 연주였어요.
 

객석에 앉아 사색의 시간을 가진 저는 나름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삶을 살아온 듯했지만, 그 경사가 과연 베토벤이 겪었던 고뇌의 시간들처럼 깊지만은 않은, 일정 부분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완전히 수용하기엔 제 그릇이 아직은 작구나 싶기도 했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아직 삶의 전쟁을 치러야 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구나.’



그렇게 깊은 생각에 만드는 연주를 듣고 귀가해선, '삶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선 자기 관리가 잘 되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나름대로 세워두었던 새해 다짐들을 다시금 재정비해보기도 했답니다.


아… 그런데 1년 중 절반 이상을 보내버린 현시점에서 바라볼 땐, 한없이 부끄럽네요. 혹시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새해에 짜두었던 계획이 잘 이뤄졌나요?


피아니스트 김선욱


그러고 보면 올해 1월엔 클래식 공연계에서는 슈트라우스 일가의 왈츠와 폴카가 올려진 곳이 거의 없었더랬죠.


사실상 신년 음악회가 지워져 버린 혹독한 겨울이었는데... 그런 계절과 어울리던 연주였다고 기록해보고 싶습니다.


찜통더위가 만연한 요즘 같은 날씨에 뜬금없이 왜 겨울 이야기를 풀어내냐고요?

아니, 뭐 이럴 땐 완전히 상반되는 다른 계절이 그리워지잖아요. :)



※ 이미지 출처

-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포스터

(빈체로: http://www.vincero.co.kr/project/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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