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똑쓰니 Oct 13. 2021

매년 반장 선거에 나갔다. ②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얄밉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내내 갖고 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똘똘 뭉쳐 오기로 남았는지 의지로 남았는지. 다음 학기, 다음 학년이 되면 또 손을 들었다. 


   "저는 □□□를 반장 후보로 추천합니다."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몇 번이나 서 보았기에 아직도 생생한 교실 앞 정중앙. 자신 있게 나가선 멋쩍게 비켜서는 루틴에 질렸을 법도 한데 그럼에도 몇 번이고 다시 섰던 그 자리. 


    왜 나는 한 번도 주저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생각한다. 나에게 던져진 다섯 손가락 안팎의 표를 세고 또 세었던 기억이 무언가로 남았다면, 그건 오기보단 의지가 맞을 거라고. 노을 진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실망보단 아쉬움을 남겼으니까. 나를 뽑지 않은 친구들을 미워하는 마음 대신, 다음에는 꼭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새 학기를 기다리곤 했으니까.


    다행히도 늘 다섯 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 이름에 따라붙는 바를 정(正) 자의 행렬이 점점 길어졌다. 

    매년 반 친구들이 바뀌는데도 결과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소문 같은 게 났던 것 같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연설할 거냐고 묻는 친구들이 생겼다. 아마도 그 친구들, 혹은 말하진 않았지만 나를 지켜봐 온 친구들의 표가 더해진 거였으리라.


    그렇게 5학년이 되었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나를 포함해 딱 두 명의 후보가 나왔는데 동표가 나온 것. 그것도 두 번이나 정확히 절반씩 표를 나눠 가졌다. 학급 전체 인원이 짝수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와, 짱이다. 설마 반반이야? 번갈아가며 올라가기도, 한참을 뒤쳐지다 무섭게 따라잡기도 하는 득표수를 보여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너네 다 계속 똑같은 애 찍고 있어? 나는 이번에 표 바꿔볼 거야 하며 괜스레 심리전을 펼치는 친구들도 등장하고, 두 번이나 이어지는 투표에 대체 언제 끝나냐고 지루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새어 나왔다. 


    언제나 확연한 차이로 떨어지던 나로선 그저 얼떨떨한 상황. 몇 번씩이나 투표를 하게 될 거라곤 예상 못하셨던 건지, 선생님께서 당황한 표정으로 잠시 기다려보라며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셨다. 이미 다른 반은 새로운 반장의 소감 발표까지 끝났을 시간에 우리 반만 시끌시끌. 급하게 이면지를 접고 자르길 반복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내 새로운 투표용지를 나눠 주신다. 기어코 세 번째 투표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반장이 됐으면 하는 친구 이름을 쓰세요. 자꾸 장난치지 말고, 알겠지? 장난을 친다고 해서 만들어질 상황은 아니었지만, 모두들 선생님의 말씀에 새삼 진지한 얼굴을 띄었다.


    앞의 두 번보다 빨리 걷어지는 투표용지. 그보다도 일찍 접혀 있던 아이들의 종이를 보며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정말 결판이 날 거야. 그러니까 나는 나를 찍는 게 당연해. 

    아니지, 아무도 모른다 해도 다른 친구를 뽑아주는 게 멋있는 거 아닌가? 


    그 고민 끝에 결국 어떤 이름을 썼던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어쨌든 그날의 투표는 세 번째를 마지막으로, 두 표 차이 그러니까 딱 한 표가 옮겨간 까닭에 마무리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의 표가 이리저리 옮겨 다녔을 테니 정확히 누구의 표가 변수를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해 반장도 나는 아니었다.


    익숙한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뒤따라오는 맛이 달랐다. 안 되었다는 사실보다 될 뻔했다는 사실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끝내 실패해버린 게 아니라, 드디어 성공 직전까지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거절했다. 원한다면 선거 없이 바로 부반장을 시켜줄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제안을. 

    다른 친구들도 두 사람을 골고루 인정하는 것 같으니 반장과 부반장을 나눠서 맡으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당선된 친구가 괜찮다고 하면 1학기와 2학기로 나누어 역할을 바꿔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며 그 친구를 넌지시 쳐다보시는데, 그 시선에 어떤 대답도 선뜻 하지 못하는 난처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친구가 걸려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원치 않았다. 반장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반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선생님께서 주시는 자리를 갖고 싶었던 게 아닌걸. 친구들이 나를 부반장으로 뽑아준 건 아니잖아. 


    나는, 정정당당한 결과를 얻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내년에는 정말 가능할 것만 같았다.





TMI 한 스푼

일반적인 명칭으로 “반장”을 사용하긴 했지만 나의 모교에선 “회장”이라고 불렀다. 전교 회장/부회장, 학급 회장/부회장으로 나뉜 구조. 반 편성도 이름만 바뀌고 구성원은 그대로 이어지기도 했다. 우리 학교는 1학년, 2·3학년, 4·5학년, 6학년 순서로 중간 학년일 때 2년씩 반 친구들이 같았다.


커버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작가의 이전글 매년 반장 선거에 나갔다. 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