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다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으로
드디어 밝아온 산티아고 순례길의 첫째 날. 우리가 정한 까미노 프랑스 길의 두 번째 마을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야 만날 수 있는 론세스바예스 (Roncesvalles).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피레네 산맥 (Pyrenees)의 악명은 누누이 들어왔기에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 사실 첫째 날이라 그런지 피레네 산맥을 무사히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설레는 마음이 더 커서 신났던 첫걸음. 노란 화살표랑 가리비 모양이 보이기만 하면 멈춰서 사진을 그렇게 찍었더랬다.
높이 1,400m에 26.5km,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긴 구간을 걸어야 하는 악명 높은 피레네는 재밌게도 나에게는 까미노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다웠던 곳을 고르라면 단연 손에 꼽을 수 있는 곳이다. 파란 하늘도 푸른 들판도,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너무 예뻤던 피레네 산맥! 그러한 풍경을 즐기며 먹는 샌드위치도 정말 꿀맛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피레네 산맥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언니와 나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출발하였음에도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는 거의 꼴찌로 도착했다는 슬픈 사실. 솔직히 피레네 산맥을 올라갈 때만 해도 “생각보다 괜찮은데?”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을 내려오는 길은,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세뇨도 무사히 받고 체크인 완료!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는 론세스바예스를 지나가는 순례자라면 다 아는 공립 알베르게로, 내가 걷던 2015년 당시에는 선착순으로 티켓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예약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순례자 메뉴 (Menu del Dia)’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저녁식사 비용도 지불했다. 순례자 메뉴를 맛볼 수 있다니 기대가 한가득! 피레네 산맥을 넘느라 고생한 몸을 깨끗이 씻고, 가방과 침대를 정리한 후 옆 침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론세스바예스 한 바퀴! 우리가 묵은 알베르게는 수녀원에서 운영하고 있어 수녀원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저녁식사 시간인 8시 30분이 되어 식당으로!
론세스바예스의 저녁식사는 각 테이블 당 4명씩 배정이 되었다. 우리는 프랑스 간호사 친구 두 명이 같이 앉았는데, 어색한 순간은 잠시뿐, 순례자라는 동질감(?) 아래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처음 만난 순례자 메뉴는 토마토스파게티와 고기! 이곳 순례자 메뉴에는 와인이 테이블 당 한 병씩 주어졌기에 와인도 조금 맛보고, 마지막에는 디저트까지 제공되어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식사에서 좋았던 기억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 할아버지들과의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눴던 것! 아주 기초적인 프랑스어로 더듬더듬 이야기했는데도 잘한다고 우쭈쭈 해주셔서 기분 좋았던 건 안 비밀.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자리로 돌아왔다. 내일의 까미노는 옆 침대를 쓰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걷기로 했는데, 대화를 오래 나누지 않았는데도 금방 친해지는 이것이 바로 알베르게의 묘미. 우리가 걸었던 까미노의 7월은 오후 12시만 지나도 해가 너무 세서 걷기 힘들어져 늘 새벽을 깨워 출발해야 했기에, 친구들과도 새벽에 나가기로 약속을 하고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목적을 두고 걸어야 지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 목적의 성취감! - 2015.07.28 in Roncesvalles, Sp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