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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름 Jul 04. 2024

첫 페이지 : 부산, 첫 여행의 흑역사

이제는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첫 여행의 추억

어느 나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무려 세 달 전부터 계획을 시작하는 여행에 있어 상당히 진심인 나. 다른 여행자 분들이 찍은 예쁜 사진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눈으로 봐야 속이 풀리는지라 여행을 결정하고 계획하는 데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는 편이다.


이제는 여행 n년차에 접어든 헌내기로 벌써 32개국 200개 이상의 도시를 여행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여행을 계획하는 데 있어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서 내가 계획한 여행들은 'OO투어'로 불리며 실패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여행 새내기 시절의 실패의 역사는 남아있다.


그중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여행 이야기는 부산 여행으로 같이 갔던 사람이 가장 친한 친구라 이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여행스토리. 벌써 10년도 더 지났고 어떻게 보면 실패한 여행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갔던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어 첫 이야기로 쓰고 싶었다.


깐 밤까지 알뜰하게 챙겨 온 할머니 입맛 내 친구 @ 부산


스무 살이 되는 기념으로 친구와 부산 여행을 가기로 결정! 우리 중 MBTI의 J를 담당하고 있던 나는 신나게 초 단위로 2박 3일의 여행 계획을 짰다. 여행의 로망을 살려 새벽 기차를 타고 떠나는 낭만 가득한 첫 여행, 기차에서 먹을 간식까지 알뜰하게 준비해 나는 일산, 친구는 수원에서 부산으로 출발. 설레는 마음에 한숨도 자지 않고 수다를 떨다 보니 새벽 4시 12분, 부산 도착!


부산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는 '부산 자갈치 시장'. 거기서 아침을 먹고 움직이는 것이 계획이었는데 새벽에 문을 연 곳이 없어 실패. 겨우 한 곳을 찾아내서 밥을 먹었는데 둘 다 비몽사몽이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두 번째로 '용두산 공원' 방문! 역시나 너무나 아침 시간이어서 길거리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어서 실패. 계획이 틀어지는 것도 속상한데 날씨는 또 얼마나 추웠던지, 바로 다음 장소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다음 행선지인 '태종대'에 가기 위해 탔던 버스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버렸다. 설상가상 둘 다 잠을 못 잔 터라 버스에서 곯아떨어져 반대편 종점 가기 전에 황급히 내려야만 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한 태종대에서는 사진 예쁘게 찍어주신다는 아저씨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맡겼는데, 알고 봤더니 폴라로이드 찍어주시는 분이어서 생각지 못했던 만 육천 원의 지출까지.


나름 잘 사 왔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항공샷 무슨 일... @ 부산


마지막으로 숙소에 들어가서 저녁으로 먹겠다고 밀면과 만두를 포장해서 왔는데 추운 겨울이라 밀면은 굳어 있었고 만두는 차가웠다. 글을 쓰다가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줬더니 하는 말.


"밀면 저거 떡이야? 케이크야?? 저걸 먹겠다고 꺼냈다니... 진짜 우리는 그때 불가능이란 없는 나이었구나."


여행의 일정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까지 힘을 내 광안리 야경을 보겠다고 포카리스웨트 1.5L 한 병과 종이컵까지 알차게 챙겨서 부산의 야경 구경까지 마무리하고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다음날 서로 몸이 아픈 채(...)로 기차를 타고 헤어졌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아침 국밥 식사는 아쉽게 다음을 기약하고.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은 폴라로이드 사진 @ 부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기차 여행은 아직까지도 낭만으로 남아있다. 추위에 떨며 친구와 함께 봤던 태종대는 기가 막히게 예뻤고, 속아서 찍었다고 생각했던 폴라로이드 사진은 아직까지도 내 다이어리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숙소에서 친구와 배게 싸움하면서 찍은 수 백장의 사진들과 부산 여행기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참 웃게 만들어주는 우리의 웃음 버튼이다.


계획을 짰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실패했던 여행이지만 그럼에도 부산여행은 지금까지도 친구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그 후로 함께 했던 여행은 이 여행 이후로 8년 후에나 가능했고, 그때는 서로 여행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였던지라 헤매지 않고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 다녀왔기에 부산 여행보다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한창 친구와 이야기하며 기억이 난 사실은 우리의 8년 후의 여행은 10년 전이나 다를 것 없이 똑같았다는 것. 먹고 싶은 저녁 메뉴가 다르다고 싸우다 회전 교차로를 두 번이나 돌았고, 결국 둘 다 웃음이 터진 바람에 화해한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참 한결같은 우리 사이.


"30대에 여행을 간다고 우리의 여행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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