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인해 행복했으니, 꿈을 꾸었으니
반 고흐 관련 브런치를 쓴 김에, 연결해서 써보는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관람 후기.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2024년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10주년 기념 공연이자 6번째 공연으로 돌아왔었는데, 나는 9월 20일에 만나러 갔었다. 거의 1년 전 이야기이지만, 요즘 나의 취미생활은 과거 회상하기라. 기대했던 것보다도 너무나도 좋았던 뮤지컬이기에 꼭 남기고 싶었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후기.
하루 종일 주룩주룩 비가 오던 날, 열심히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보기 위해 찾아간 서경스퀘어 스콘 1관. 공연장에 도착해서 표를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너무나도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포토존이 눈에 들어왔다. 고흐가 사용했을 것만 같은 캔버스와 이젤, 아를 방에 있었을 테이블과 의자, 꽃이 핀 아몬드나무까지. 뮤지컬을 보러 갈 때면 보통 포토존만 찍곤 하는데, 이곳은 내가 포토존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던 몇 안 되는 곳.
내가 만났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캐스트는 홍승안, 박좌헌 배우. 10주년 기념 공연답게 초연부터 함께한 배우들이 함께 했는데, 내가 만난 두 배우는 이번이 초연. 그래서 오히려 지금까지 무대를 만들어왔던 배우들과는 어떤 다른 빈센트와 테오를 보여줄까 기대가 되었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캐스팅보드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이라 공연장 들어가기 전부터 설레버린 고흐 덕후.
[시놉시스] 그림을 사랑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를 위한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아주 특별한 선물. 동생 테오 반 고흐는 형을 위한 유작전을 열고자 한다. 빈센트와 주고받았던 편지와 그림들을 정리하면서 그와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림을 그리기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 때문에 웃고 울었던 지난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명을 그림에 걸기로 마음먹은 날에 이르기까지. 편지와 함께 같은 기억을 공유하며 시간을 여행하는 빈센트와 테오. 다른 시공간 속에 있지만 평생에 걸쳐 서로를 의지하고 믿었던 두 형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10분이라는 시간 동안 울며 웃으며 관람했던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뮤지컬은 고흐가 떠난 후의 시점부터 시작하며, 동생 테오가 형 고흐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통해 기억을 더듬어 가는 스토리라인으로 진행된다. 보통 실존했던 인물에 대한 뮤지컬은 삶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기에 지루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고흐라는 사람이 삶의 순간마다 느꼈을 감정들을 뮤지컬을 보면서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반 고흐의 감정은 매 순간마다 처절하게 무너져가기에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까지도 나누는 형 고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품어주는 동생 테오. 이런 형제가 어디 있을까. 그렇게 고흐의 처절했던 삶의 이야기가 지나가고 마지막 고흐의 유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이 무대에 가득 차며, "좋아, 완벽해"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무대 밑의 총성으로 뮤지컬이 끝난다. 그 순간의 총성에 심장이 철렁하고 고흐가 느꼈을 마지막 감정까지 확 다가오는듯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 그래도 이후 커튼콜에서 '삼촌' 빈센트가 '조카' 빈센트에게 주는 선물 <꽃피는 아몬드 나무> 그림 속 흩날리는 아몬드꽃 아래 행복한 형제의 모습 덕분에 뭉클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홍승안, 박좌헌 배우는 이번 뮤지컬로 처음 만나는 배우들이었는데, 너무 고흐와 테오 그 자체여서 바로 팬이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1872년 8월부터 세상을 떠난 1890년 7월까지 고흐는 테오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무려 668 통이라고 한다. 여러 편지 중 1890년 7월 24일,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를 소개해본다.
To. Theo
오늘은 고통과 영원히 작별하는 날이다. 평생 나를 돌봐주었던 테오의 품에서 마지막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구나. 마지막으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너와 나는 우리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구나. 너는 나를 통해서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그림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나의 그림과 나의 일, 나는 그것에 내 생명을 걸었고 그 때문에 내 이성은 거의 무너져 버렸다.
From. Vincent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글을 마치며 남겨보는 제일 좋았던 넘버 'From 빈센트 반 고흐'. 참고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넘버는 모두 가수 선우정아의 작품! 반 고흐의 마지막 밤, 그날 밤의 그는 어땠는지 묻는 테오의 물음과 자신이 머물던 작은 다락방안과 오베르의 밤을 바라보다 떠나가는 고흐의 모습이 한동안 기억에 남았었던 넘버. 언젠가 다시 또 '칠연'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며,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후기 끝!
바람과 온도, 달과 별의 하모니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오베르의 밤
나의 숨소리, 나의 맥박
나의 모든 신경이 감미롭게 춤을 추는 오베르의 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공기가 좋아
밖에서 들어오는 고소한 냄새
(여인숙 주인이 부인 몰래 뭘 또 먹나 봐)
밀들이 바람에 사부작거리는 소리
(평화가 깨질 때가 됐는데)
다락방을 가득 메운 정적이 좋아
꼬질꼬질한 이불에 먹다 남은 빵부스러기
(나에겐 최상급 스위트 룸이지)
여인숙 가장 높이, 가장 구석에 웅크린 방
(맞잖아 스위트 룸)
유난히도 분위기 좋은 오늘 밤
유난히도 머리가 맑은 오늘 밤
나쁘지 않아, 오히려 완벽해
그리울 거야, 이 밤
꼭 이 시간이 되면 보고 싶은 사람!
테오, 내 동생 테오 반 고흐 너에게 편지를 쓰지
From.
그동안 주고받았던 편지들 (700통)
그와 함께 보냈던 수많은 작품들
(열심히도 살았지, 우체국 우수고객)
그리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사건들
테오 넌 아마 (지긋지긋할지도)
From. 빈-센-트!
난 아무렇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From. 빈센트 반 고흐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From. 빈센트 반 고흐
평생에 걸친 우리 대화 그 안에
내가 있어 우리가 있어
빈센트 반 고흐, 오- 테오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