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의 명과 암을 만나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의 둘째 날, 우리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테이블 마운틴 (Table Mountain). 케이프타운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테이블 마운틴은, 다른 산들과는 달리 정상이 평평하고 가장자리가 수직으로 되어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첫날 V&A 워터프런트에서 봤던 테이블 마운틴의 모양이 정말 책상처럼 생겼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테이블 마운틴의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 해발 1,067M의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방문한 7월은 케이블카 보수하는 달이었다는 사실.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은 케이블카로는 약 5분밖에 걸리지 않지만, 걸어 올라간다면 대략 3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나, 친구와 한참 고민하다가 등산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했다. 누가 봐도 등산하러 온 유럽 관광객들의 뒤를 따라 도착한 등산로는 시작부터 완전 돌산에 어마어마한 경사를 보여주었다. 과연 올라갈 수 있을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의아한(?) 마음을 가지고 등산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신발부터 이미 등산에 최적화되어있지 않았던 우리들은 20분 정도 오르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테이블 마운틴 위에서 보는 대서양과 케이프타운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올라가 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지만 이제 여행 이틀차인데 체력을 너무 몰아 쓰지 말기로 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
여기까지 왔는데 테이블 마운틴에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들 뿐일 것이라며 심심한 농담으로 마음을 달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전 잠시 앉았다 가기로 했다. 테이블 마운틴의 정상에 올라 풍경을 눈에 담진 못했지만, 케이블카 탑승장이 언덕에 위치해 있었기에 케이프타운의 풍경을 어느 정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라이언 헤드의 모습과 하늘과 맞닿은 대서양의 풍경까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즐기며, 벤치에 앉아 간식으로 챙겨간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케이프타운의 풍경을 한참 눈에 담았다.
테이블 마운틴을 떠나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트루스 커피 로스팅 (Truth Coffee Roasting). 세계 10대 카페이자 영국 가디언지에서도 '세계 최고의 카페'로 선정되었다는 트루스 커피 로스팅. 오래된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곳으로, 스팀펑크 (Steampunk) 디자인으로 꾸며진 빈티지스러움이 눈길을 사로잡는 카페였다. 스팀펑크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19세기의 역사적인 배경에 공상 과학, 판타지 요소를 결합한 스타일이라고 한다. 트루스의 바리스타들도 뭔가 힙함이 느껴지는 것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이 세상 것이 아닌 힙함에 압도(?) 되어버린 우리들. 사실 다음 목적지였던 '디스트릭트 6'에 가기 전 커피를 수혈하기 위해 잠시 들렸던 곳인데, 덕분에 한참 앉아서 카페를 구경하며 트루스의 인기 메뉴라는 카푸치노를 즐겼다.
트루스 커피 로스팅에서 한껏 힙함을 느낀 후,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디스트릭트 6 박물관 (Distrixt Six Museum). 케이프타운의 '여섯 번째 자치구'인 디스트릭트 6은 1867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며 유색인종들이 모여든 지역이다. 1966년 '제6 구역'이 백인 거주지역으로 지정이 되며, 1968년 재개발을 위한 무자비한 철거가 시작이 되었다. 이 지역에 모여 살던 무려 6만 명이나 되는 유색인종들은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터전을 잃고 외곽지역으로 강제이주를 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이곳이 재개발되는 것을 끝까지 막아섰고, 그렇게 지켜낸 곳에 1994년 디스트릭트 6 박물관이 세워졌다.
디스트릭트 6 박물관에서는 남아공의 아파르헤이트가 한창이던 시절의 사진과 표지판들, 실제 사용된 물건들, 인터뷰 등을 볼 수 있었다. 아파르헤이트 (Apartheid)는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 백인정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이다. 인종차별의 극단적인 형태인 아파르헤이트는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나라 전반에 걸쳐 차별이 이루어졌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심각한 인권 침해와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였다. 그 잔재들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1948년 부터 46년간 지속된 악랄한 인종차별 정책이 사라진 지 50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 그 잔재들이 여전할 수밖에.
대학시절 아파르헤이트에 대해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도 사람이 어떻게 자기와 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이렇게 악랄한 정책을 만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방문하게 된 디스트릭트 6 박물관에서 실제 아파르헤이트 당시의 기록들을 보고 들으며, 인간의 선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르완다를 여행할 당시 방문했었던 키갈리 제노사이드 기념관에서 느꼈었던 답답함과 복잡함이 다시 올라오며 생각이 많아지던 시간이었다. 극심한 빈부격차, 부패한 정권, 그리고 치안의 부재까지, 아파르헤이트가 남아공에 남긴 잔재들에서 벗어나 회복되어 나아가기를 기도하며, 케이프타운에서의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It struck me that our history is contained in the homes we live in, that we are shaped by the ability of these simple structures to resist being defiled" - Achmat Dangor, Kafca's Cur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