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광복 80주년 <향수, 고향을 그리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이자 영원한 그리움의 세계

by 오름

즐거웠던 <김창열 회고전> 관람을 마치고, 아트셔틀버스를 타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이번 8월 14일 (목)부터 11월 9일(일)까지 덕수궁관에서 진행되는 광복 80주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전시를 보기 위함이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마음속에 간직해 온 ‘고향’의 정서를 풍경화를 통해 되짚어 보는 이번 전시에서는 네 개의 주제 - '향토’, ‘애향’, ‘실향’, ‘망향’ - 아래 시, 그림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인성, 사과나무 (1942)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첫 번째 주제는 바로 향토(鄕土) – 빼앗긴 땅. 1 전시실에서 만난 '고향'은 식민지었으나 동시에 삶의 터전이었던 곳. 이때의 그림들은 주변 일상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묘사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여러 그림들 중 이인성 화백의 <사과나무>가 눈에 들어왔는데, <사과나무>는 '조선의 고갱' 이인성 화백의 초기 작품. 화백이 담아낸 고향의 풍경은 화백의 실제 고향인 대구라고 한다. 화폭에 담긴 우리 땅의 풍경과 색채가 너무 아름다웠던 그림이라 기억에 남아 서 전시관람 후 작품이 담긴 엽서를 구매하기도 했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 (1941)


전혁림, 통영풍경 (1992)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두 번째 주제, 바로 애향(愛鄕) – 되찾은 땅. 2 전시실에서 만난 고향은 바로 광복 후 우리 땅의 풍경들로, 이때의 작품들은 이전 작품들 보다는 뭔가 더 활기차고 푸르른 색채들이 느껴졌다. 그중 쨍한 색감으로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은 바로 전혁림 화백의 <통영풍경>. 통영의 푸른 바다가 담긴 코발트블루색의 그림을 보니 푸르름을 넘어 무언가 시원함도 느껴졌는데, 아마도 김환기 화백의 작품 속의 고요한 푸른색과는 다른 시리도록 푸른색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만 뜨면 이가 시리도록 쳐다본 남해바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들의 땅덩어리, 저더러 색채 화가라고 부르는 것은 내가 본 가장 극명한 느낌을 색으로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색입니다. - 전혁림 (1990)


변시지, 풍파 (1991)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세 번째 주제는 실향(失鄕) – 폐허의 땅. 3 전시실에서 만난 작품들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발했던 6.25 전쟁의 참상, 폐허의 전경 등을 그림으로 담아낸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다수의 작품들이 어쩌면 어두운 풍의 작품들이 대다수였고, 작품의 제목들도 주로 '귀로', '폐허', '피난' 등의 이름이 많았다. 여러 작품 중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 화백의 <풍파>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에게 푸른 바다로 익숙한 제주의 고유색을 황토색으로,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대지를 삼킬 듯 한 풍파로 담아낸 기억에 남았던 작품.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정지용, 고향 (1932)


윤중식, 섬 (1953)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마지막 주제는 망향(望鄕) – 그리움의 땅. 4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던 작품들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잊혀 가는 고향"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들. 이전 전시실의 작품들에 비해 이곳에서 만난 작품들은 따스하고 고즈넉한 풍경들이 많았다. 여러 작품 중 눈에 들어온 건 윤중식 화백의 <섬>으로, 특히 화백은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을 겪었기에 화백의 작품 속의 섬은 '갈 수 없는 고향'을 은유한다고 한다.


그저 꿈같은 섬이요, 꿈속 같은 내 고향이다. 겨울이면 소리 없이 함박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한 번씩 계절풍이 지나가는 그런 섬인데 장광이 비슷해서 끝에서 끝까지 하룻길이다. - 김환기 (1962)


박돈, 성지 (1957)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광복 80주년을 맞아 진행된 광복 80주년 기념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제1전시실부터 4 전시실을 돌아보며 화가들이 화폭에 담아낸 '고향' - 빼앗긴 땅, 되찾은 땅, 폐허의 땅, 그리고 그리움의 땅의 풍경이 담긴 근현대 풍경화들을 만나며 대한민국이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해 볼 수 있어 의미 있던 전시였다. 특별히 이번 전시는 "미술계 중심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지역작가의 작품이나 지역풍경화, 오랫동안 미술관 수장고, 개인소장가와 유족의 자택에 보관만 되어온 작품들을 직접 발굴"하여 진행한 전시답게 이전에 알지 못했던 여러 화가분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던 전시였다. 전시는 이번 11월 9일까지 진행되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꼭 방문해 우리 땅의 풍경이 담긴 작품들을 만나 보시길 바라는 마음을 남기며 전시 후기는 여기서 마무리.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정지용, <향수 (鄕愁)>


즐거웠던 미술관 나들이에서 만난 배롱나무 꽃 @ 대한민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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