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무슈 구뜨 도 <김창열 회고전>

화백의 삶이 담겨있는 물방울을 만나다

by 오름

지난 9월 1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2025년 대한민국 미술축제'. 대한민국 전역에서 펼쳐지는 미술축제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전 지점이 축제 기간 동안 무료관람을 진행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날씨가 무더웠던 9월 5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내가 관람한 전시는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와 <김창열 회고전>, 그리고 그중 인상 깊었던 <김창열 회고전>의 늦은 후기를 남겨본다.


제사 (196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창열 화백. 화백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무슈 구뜨 도 (Monsieur Goutte d'Eau)', 바로 '물방울 씨'라는 뜻이다. 다양한 재질과 형태로 물방울 작품을 그려낸 김창열 화백의 그림을 이번 회고전은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총 4개의 장으로 진행되며 화백의 물방울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만날 수 있었다. 화백의 물방울 그림의 시작은 총알자국, 바로 동창들의 전쟁의 상흔에서 시작이었다. 첫 번째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로 총알 자국과 탱크 바퀴 자국 등으로 상흔을 표현한 그림인 <제사>.


6.25 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밤에 일어난 일 (197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965년, 뉴욕으로 건너가며 물방울은 점점 기하학적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된다. 이때의 작품은 '현상' 장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점액질이 흘러내리는 듯한 추상적인 표현들을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1960년 파리로 거처를 옮기며 화백의 물방울은 기하학적인 형태의 응집된 덩어리에서 점점 투명한 물방울로 변화하게 된다. 가장 눈에 들어오던 작품은 바로 1972년 작 <L'evenement de la nuit (밤에 일어난 일)>. 검은 바탕에 물방울 하나와 그림자로만 되어있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림으로 어떻게 저런 투명하고 영롱한 물방울을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봐도 신기한 작품.


물방울 (197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세 번째 장 '물방울'에서 만난 작품들은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진 물방울 작품들이었는데, 캔버스 위에 맺힌 물방울이 빛에 반짝이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시작된 화백의 물방울 연작은 매끈한 캔버스 위를 시작으로 신문, 거친 생지, 모래 등 다양한 바탕 위에도 그려지기 시작한다. 화백이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43세부터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물방울을 그려냈는데, 수많은 캔버스에 같은 모양의 물방울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물방울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김창열, '물방울' 연작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 화백의 그림에 담긴 극사실적인 물방울은 정화수이자 눈물, 생명, 그리고 무(無)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다양한 상태를 상징한다고 한다. 다양한 물방울 연작 중 어두운 방에서 만난 작품은 물방울에 오롯이 몰입하게 만들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그려진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나중엔 이것이 그림인지 사진인지 헷갈리기까지 할 정도였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물방울을 집착에 가까운 정신적 강박으로 그려왔다. 내 모든 꿈, 고통, 불안의 소멸. 어떻게든 이를 그려낼 수 있기를 바라며. (1990)


회귀 (201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지막 장은 바로 '회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캔버스를 넘어 글자가 가득한 신문지 위에 그려지던 물방울은 점차 천자문 위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천자문 글자들 위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들, 화백에게 천자문은 자신의 유년과 동양적인 정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고 한다. 치유에서 회귀로, 화백에게 있어 물방울은 자신의 삶이 투영된 그 자체였지 않을까.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김창열에게 삶은 지극히 끈질기면서도, 동시에 덧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을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감과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물방울은, 아무리 그려도 끝내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애도의 일기였는지도 모른다.”


<비가 온다> Il pleut (1973)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지막으로 돌아본 별책부록 '무슈 구뜨, 김창열'에서는 화백과 관련된 기록들과 작업실 풍경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아카이브 공간에서 만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Il pleut (비가 온다)>. 현대미술을 어려워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한국의 현대미술 역시 잘 알고 있지 못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을 만나며 조금은 현대미술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주도에 가게 된다면 김창열 미술관을 방문해 화백의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며 <김창열 회고전> 후기는 여기서 마무리!


두 페이지 사이에, 물방울은 쉼표다. 시가 영원을 적셔 마시는. - 알랭 보스케, <김창열을 위한 물방울 스무 점>


KIM Tschang-yeul (1929-2021)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전시 :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