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특별전 <알폰스 무하: 빛과 꿈>

'빛'을 보고, '꿈'을 그리다.

by 오름

최근 보고 싶었던 공연들을 예매하며 들락날락 한 티켓링크. 어떤 전시가 진행되나 구경하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온 전시가 있었으니, 바로 <알폰스 무하 : 빛과 꿈>. '아르누보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알폰스 무하를 알게 된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 보면, 체코 프라하에 여행을 갔을 때 방문했던 체코 프라하 성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났던 때 같다. 그 후 무하의 작품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한국-체코 수교 35주년 특별전으로 체코 국보 11점을 포함해 유화·석판화·조각·보석 등 총 143점의 알폰스 무하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하여 얼리버드로 예약했다.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다 11월, 파리에서 꽃 피운 '무하 스타일', 그리고 프라하에서 완성한 '슬라브 서사시'를 만나기 위해 날이 좋던 날 전시가 진행되는 더현대 서울 ALT.1로 출발!


<지스몽다> 포스터 (1894)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1. 사라 베르나르와 아르누보의 거장 - 전시의 첫 시작에서 만난 작품은 아르누보의 거장 알폰스 무하의 역사가 시작된 파리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운명적인 만남인 <지스몽다> 포스터.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기 전, 무하는 인쇄소에서 교정 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들어온 광고 포스터 부탁에 그리게 된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지스몽다> 포스터. 이 포스터를 기점으로 알폰스 무하는 단숨에 유명 상업 화가로 등극하게 되고, 이후 사라 베르나르와 6년을 협업했다고 한다. 이 섹션에서는 <햄릿>, <동백꽃의 여인> 등 성별에 관계없이 연극 속 인물들을 연기해 낸 사라 베르나르의 열정과 연극 속 역할마다 다르게 그려낸 무하의 아름다운 포스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조화를 사랑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 알폰스 무하


꽃: 카네이션 (1898)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2. 무하 스타일, 소통의 예술 - 두 번째 섹션에서는 신비로운 여성상, 화려한 색채, 유기적인 곡선, 꽃 패턴 등으로 가득한 '무하 스타일'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때가 무하가 상업화가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던 때로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여러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재밌던 부분은 담배 종이 포스터와 같은 각종 포스터는 물론 과자 박스까지 종이를 가리지 않고(?) 그려진 무하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러 작품들 중 나는 사계, 꽃 예술, 달과 별 등과 같은 무하의 아르누보 연작들이 너무 좋았는데, 그림 자체가 정말 '우아하고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하면서 꽃과 같은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던 작품들이었다.


나의 예술이 소수만을 위한 응접실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이어서 행복했다. 그것은 비싸지 않았기에 누구나 손에 쥘 수 있었고, 가난한 이의 집과 부유한 이의 자택에 모두에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 알폰스 무하


백합의 성모 (1905)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3. 파리 1900, 아르누보의 영광의 이면 - 다음 섹션은 바로 무하의 스타일이 아르누보에서 민족주의로 변화하게 된 정점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정치적 갈등과 모순을 겪은 무하가 '조국의 자유와 독립에 헌신해야 할' 그의 사명을 결정하게 된 순간이라고 한다. 이전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화풍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섹션 3부터는 더욱 유화 작품들에 몰입해서 보게 된 것 같다. 이때부터 무하의 그림 속에 담긴 여성들은 더 이상 '아름다움'으로만 그려지지 않았고, 작품 속 슬라비아 여성들은 '강인함 속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소중한 시간은 이런 일에 쓰이고 있었구나. 정작 나의 민족은 시궁창 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그 순간 나는 내 민족의 것을 죄스럽게 훔치고 있다는 영혼의 자각을 느꼈다. 자정이 되자 나는 작업실의 모든 것을 둘러보며 남은 생은 오직 내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고 엄숙히 맹세했다. - 알폰스 무하


슬라비아 (1920)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4. 조국을 위하여, 빛으로 되찾을 조국의 꿈 - 1910년, 무하는 파리 예술계를 떠나 1904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겼고 그곳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후 1910년, 고향인 체코로 다시 돌아와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은 그의 역작 <슬라브 서사시>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 무하의 작품들은 더 이상 아르누보 화풍이 아닌 민족주의적 유화들로 화풍이 변하게 된다. 또한 무하는 새로이 건국된 체코슬로바키아를 위해 우표, 화폐 등 여러 관제적 양식들에 작업도 함께 진행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술가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민족의 뿌리에 진실해야 한다. - 알폰스 무하


광야의 여인 (1923) @ 더현대 서울 ALT.1


이 섹션에서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작품은 바로 '광야의 여인'. 1923년, 러시아 국민이 겪은 참혹한 고통에 대한 예술적 성찰 아래 그려진 작품인 <광야의 여성>은 시베리아의 어두운 설원, 늑대 무리가 다가오는 가운데 홀로 선 여성 농민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4개의 습작 중 두 작품으로 작품 속 여성의 체념한 표정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너무나도 가까워 한참 작품 앞을 떠나지 못했다. 찾아보니 완성작은 더 크던데 다시 프라하에 가게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은 작품.


슬라브서사시 제7번 구성 습작 (1916)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5.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 단결을 위한 기념비 - 이 섹션에서는 '슬라브 민족의 고난과 영광, 그리고 인류 평화'에 대한 무하의 이상을 담은 <슬라브 서사시>를 만날 수 있었다. 무려 18년이 걸린 무하의 대작 <슬라브 서사시>는 20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가로 8m, 세로 6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 작품. 무하는 슬라브서사시 작품을 위해 엄청난 량의 자료 조사는 물론, 장소에 방문하는 등 슬라브의 역사를 작품에 완벽히 담아내고자 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슬라브 서사시의 구상 과정이 담겨있는 습작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실제 완성작이 너무 궁금해졌다. 언젠간 꼭 만날 수 있겠지.


인류의 여정은 굽이치며 오르내리지만, 마침내 더 밝은 지평으로 나아간다. - 알폰스 무하


슬라브서사시 18번 구성 습작 (1926) @ 더현대 서울 ALT.1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으로 사랑하는 조국 체코에 헌정한 무하의 작품, 슬라브 서사시. 여러 습작들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슬라브서사시 18번 <슬라브 보리수 아래에서 '청년'의 맹세: 슬라브 부흥>을 위한 구성 습작이다. 이 그림은 슬라브 여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무릎을 꿇고 손을 잡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슬라브 서사시는 1912년 작업을 시작하여 1926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고 하는데, 그 와중 이 18번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았다고 한다.


촛불을 응시하는 여인 (1933) @ 더현대 서울 ALT.1


Section 6. 희망의 빛, 인류애를 향한 비전 - 마지막 섹션의 작품들은 전쟁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지만, 무하 자신이 꿈꾸던 예술적 비전을 그림에 담아내던 시기였다. 슬라브 서사시를 통해 본인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담아냈다면, 무하의 마지막 시기에는 그의 관심이 인류로 향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성'과 '사랑'을 대립하는 양극으로, 그리고 이 둘은 오직 '지혜'를 통해서만 조화롭게 결합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무하. 인류를 향한 알폰스 무하의 간절한 염원과 비전을 담은 작품인 <이성의 시대>, <지혜의 시대>, <사랑의 시대> 3부작은 1939년, 조국의 몰락에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건강이 악화되어 나치가 체코를 침공한 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되며 미완성의 작품으로 남게 된다. 이 작품들도 무하가 살아있었다면 슬라브 서사시와 같이 대작으로 남았을 텐데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남겨두며, 전시의 관람을 마무리했다.


사실 나에게 있어 알폰스 무하는 '아르누보의 거장'의 느낌이 더 강했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애국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 무하의 또 다른 작품들을 만나며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늘 아르누보 양식의 작품들만 봐오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난 유화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유화작품이 담긴 엽서들을 구매했다. 이전에 프라하에 여행 갔을 때 알폰스 무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무나 아쉽지만 언젠가 꼭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전시회 후기를 여기서 마무리해본다.


지혜는 자신의 길이 인류의 선과 행복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임을 안다. 그 길 위에서 지혜는 스스로 빛을 발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을 이끈다. - 알폰스 무하


'빛'을 보고 '꿈'을 그리다 @ 더현대 서울 AL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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