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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원 Mar 09. 2024

강직성 척추염을 앓던 친구의 존재는 운명이었을까

유일하게 이상함을 느꼈던, 병원을 가보라던 친구


무릎이 아프기는 했지만 어쨌든 다른 곳은 멀쩡하게 전역하고 나서 복학한 나에게는 같은 과의 친구들이 몇 몇 생겼다. 그리고 그중 멋쟁이이면서 가끔 급진적인 사회비판이 특기인 친구가 있었는데 생긴 것은 소도 잡아먹을 것처럼 생겼지만 고등학교때는 몸이 너무 안 좋아 출석을 많이 못했다고 했다. 당시에는 워낙 건강해보이기도 해서 별로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다.


이 친구가 앓고 있던 병은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난치병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들어도 본인과 가족의 일이 아니라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시당초 희귀난치병이라는 소리에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물론 친구가 너무 멀쩡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걷는 도중에도 무릎이 불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별 말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졸업 후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게 되자 친구는 다른 원인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큰 병원을 가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는 왜 큰 병원을 가야 하는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듣고 흘렸다. 친구도 매우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서 본인 모습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눈에 염증이 생기고 무릎이 아플 때마다 다리를 절룩이는 나에게 친구는 몇 번 더 병원을 권유했다. 물론 나는 안과에서 약을 먹고는 했지만 큰 병원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20대 백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았다. 게다가 대학 졸업 후 취업이 더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가끔씩 몸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공무원이 되던 해에는 3개월 동안 다른 친구와 헬스장도 다닐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운동을 열심히 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데 아쉽게도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공직생활에 전념하느라 아직 취업준비 중이던 그 친구와는 연락이 요원하게 되었다.



결국 몸이 정상이 아니게 되자 친구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공무원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롭다고 들었던 직렬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상황을 마주한 것은 내가 운이 없었던 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중에는 이 때의 경험 덕분에 또 편해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초임 발령지에서 있었던 약 2년 안되는 시간동안 내 몸은 많이 망가졌다. 무릎이 좋지 않다는 것은 상사도 알고 있었지만 별도로 병명이 없었기 때문에 말하는 나도 민망했다.


군대에서 무릎물참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여기에 입병, 그러니까 소위 구내염이라고 말하는 게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입안 염증은 달고 살긴 했다.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을 뿐이고 일을 시작하과 스트레스와 체력적인 문제가 더해지니 혓바늘과 입안 헌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비타민B가 구내염에 좋다고 사오셨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점점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던 와중에 사랑니 문제로 턱이 안 벌어지게 되었다. 어지간한 일로는 조퇴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치과에 가서 사랑니를 빼고 쉬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낫지 않는 상황이라면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그때 다시 친구의 병명을 들었다. 강직성 척추염.


친구는 나 또한 그런 병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아침에 일어날 때 허리 괜찮냐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런데 딱히 뻣뻣하거나 이상함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에 서로 고개만 갸우뚱할뿐이었다. 하지만 다른 증세는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때 강직성 척추염에 대해서도 많이 찾아보게 되었는데 허리에 염증이 생기는 병인 것 같았다. 또한 희귀난치병이라 딱히 어떤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고 아프지 않도록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친구는 지금은 몸이 괜찮지만 고등학생 때는 많이 아픈 것이었다. 이 병 때문에. 그리고 어머니는 친구 이름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셔서 개명을 하려고도 했었다.


실제로는 개명하지 않았지만 대신 집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만약 내가 대학 때 이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대학병원을 가서 바로 나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실마리는 잡은 셈이었으니 말이다. 나도 희귀난치병 환자가 된 지금은 다른 사람이 자가면역질환인 것 같다면 얘기를 해주는 입장이 되었다.


확실히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야가 다르다. 모르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왜 아픈지 계속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현대 의학이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의사마다 능력이 다르니 운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렇게 운이 좋거나 인복이 많은 편은 아닌데 확실히 이 친구 덕분에 내가 희귀난치병 환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어차피 환자였는데 병명미상인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가끔씩 대학교에서 나와 비슷한 자가면역질환 환자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희귀난치병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쉽게 보기는 힘든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인연이 아니지 않을 수 없다.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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