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서 찬물에도 잘 녹는 아이스 커피믹스를 먹기 시작했다.
생전 쓰지 않던 냉동실의 얼음틀을 찬장에서 꺼내기도 했으니 본격적으로 먹겠다는 뜻이다.
사실 아이스커피 믹스는 작년에 대량으로 구매했는데 거의 먹지 않아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여름에 모두 먹어버리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커피에 약하다
아니 정확히는 카페인이라고 해야 하나.
성인이 되어서도 아메리카노 계열을 먹으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는 것이 마치 술 먹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몸소 체험을 하고 나니 커피가 몸에 안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한동안 멀리 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커피 붐이 일어남에 따라 다시 커피를 피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그래서일까,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쪽쪽 빨면서 얼죽아니 뭐니 신조어를 만들어가며 커피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 힘든 사람이다. 아침에는 커피 한 잔을 마셔줘야 몸이 깨어난다는데 이미 죽어있는 것도 아니고 뭐가 다시 깨어난단 말인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이렇게 커피가 생필품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카페보다는 술집이 더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우후죽순 카페가 매일 생겨나고 있으며, 핫플레이스라고 올라오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손님들때문에 잘되는 커피집은 절찬리 성황중이다.
뭐, 잘 꾸며놓은 카페를 찾아가는 재미는 나도 인정하지만 결국은 커피의 맛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주객전도인 셈이다.
어쨌든 다시 최근의 커피 얘기로 돌아오자면, 그렇게 커피에 약한 주제에 오늘 택배로 더치커피를 받았다. 1+1 딜이라는 네이버의 아주 좋은 쇼핑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매한 결과인데 솔직히 충동구매였다. 아메리카노는 잘 즐기지 않는 성향이면서 가끔 손님이 올 때 먹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가격이 저렴해서 일단 질러본 것인데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고 다 먹을 수 있을지.
그러고보니 지금 평소에 먹는 커피가 3가지 종류가 되었다.
하나는 믹스커피인 연아커피 그리고 아이스 커피믹스에 방금 말한 더치커피까지.
사실 오늘 도착한 더치커피의 맛을 보기 위해 저녁식사 후 한 잔을 개봉해보았는데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조금 들길래 물을 많이 넣었다.
덕분에 맛은 싱겁기 그지 없었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느낌?
지난 번에 언젠가 밤 10시 정도에 카페를 가서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그걸 다 마셨더니 그날 밤을
아예 못 잔 적이 있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 이 몸뚱아리는 쓸모가 없구나.
쓸모가 없는 정도가 심하다보니 믹스커피도 몸에 잘 맞지 않아 트림이 나오고 속이 거북한 경우가 있어서 재작년에 코로나가 터질 때에는 약 한 달 조금 안되는 기간 동안 믹스커피를 매일 먹고 결국 속병이 나서 병원을 간 적도 있다. 그때 이후로 1년을 넘게 믹스커피를 손에 대지 않았는데 인간은 원래 과거를 잊고 다시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작년부터 연아커피라고 불리는 맥심 화이트골드를 구비해놓았다.
뭐,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는 행위여서일까. 결과는 좋았다.
사실 그렇게 크게 다르다고 생각은 되지 않지만 속이 안 좋았던 커피는 모카골드인데 흔히 노란색으로 되어있는 것이고 연아커피는 조금 더 연한 살색으로 되어있다. 물론 맛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속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칠 줄이야?
그런데 사실 나는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2014년에 일할 때 매일 점심에 화이트골드를 먹었는데 그때 멀쩡했었기 때문이다.
후, 그래도 커피를 못 먹는 몸으로써 적어도 식후 믹스커피의 달달함으로 얻는 행복에는 공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근데 왜 커피 아닌 음료가 더 비싼가요?
아까 밤새 잠을 못 이루었던 날을 얘기하니 그냥 티가 아닌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시키게 된 경위가 생각난다. 물론 엄청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날은 비카페인 음료를 시키는 게 억울했다. 몸이 안 받아서 차 종류를 먹어야 하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맛있게 먹고 싶은데 왜 차가 더 비싸냐고 내 안의 흑염룡이 불만을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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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저렴하고 맛있는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시럽 맛으로 먹는데 맛있단 말이지.
카페가 당연히 커퍼집이니까 메인인 커피는 저렴하고 메인이 아닌 음료는 비싼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보통 차를 취급하더라도 티백에 넣어주는 간단한 작업에 비용도 얼마 들어가지 않을 텐데 왜 가격은 당연히 비싸게 책정하는 것일까. 물론 이건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보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이 불만을 표시하는 걸로 모일 수도 있겠다만.
또 달리 생각하면 커피가 비싸면 오히려 카페인데 커피가 안 팔리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겠군.
뭐, 각자 다 입장이 있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가끔 그래서 이렇게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렁이의 오기를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게다가 한 잔이 양도 많아서 12시에 나갈 때까지 그걸 다 쪽쪽 빨았으니 자려고 누운 내가 정신이 똑바른 것은 평소에 올바르게 살아서인 것은 아닐 것 아닌가?
따지고보면 고작 천 원 차이로 그렇게 억울해할 것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다가 선호 커피가 없다보니 메뉴를 고르는 것도 오래 걸려서 2배로 고민을 하게 되는 것도 억울하다.
제엔장, 덜떨어진 몸뚱아리 가진 사람이 세상에 순응하는 수밖에, 별 수 있나.
알코올 분해효소가 없다고요
억울한 김에 한 가지 더, 술에 대한 이야기도 해볼까.
술에 약하면서 카페인에 강한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 같으니 결국 둘 다 약한 것은 내가 천운의 사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넌 딱히 마시는 것에 연연해하지 말라는 그런 조물주의 뜻이랄까. 문제는 먹는 것도 사실 그렇게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마시는게 편한데 말이지.
요즘은 젊을 때처럼 커피 먹고 심장이 뛰는 일은 없다시피 하지만 그 양상이 술을 먹을 때랑 비슷했던 것은 사실이다. 심장이 빨리 뛰게 되면서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몸이 뭔가 이상한 그 느낌. 주량을 넘겨서 술을 먹게 되면 당연하게 다다르는 결과와 같단 말이지.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은 어머니와 닮아있다.
소주 한 잔도 못 마시는 DNA의 소유자이자 커피도 보리차처럼 연하게 마시는 어머니 덕분에 나 또한 그런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지만 다른 혈육은 조금 상태가 나아보이던데...??
카페인에 약하고 알코올에 약한게 죄는 아니지만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술도 안하고 담배도 피지 않으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렇다고 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술을 안 마시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신경을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괴로워진다는 그런 페널티가 있다는 것뿐이지.
가장 아쉬운 것은 그런 것들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일 것이다.
커피의 맛, 그리고 카페인의 효능은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다.
뭔가 각성효과로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라도 나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고 그냥 잘못하다간 밤을 꼬박 지새우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나저러나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더라도 알코올의 선택과 카페인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복받은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체질이 바뀔 리는 없으니 음주로 인해 소비되는 비용이 적은 것과 카페인에 중독되지 않는다는 점을 위로삼아 그냥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