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 첫날 점심은 돈까스였다

명절마다 시골에 가는 것이 일이었는데

by 이생원

오늘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지만 나에게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요일이었다.

어제부터 귀성행렬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7시간 넘도록 고속도로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도 기사로만 접할 뿐이었다.


게다가 직장인도 아니라 딱히 휴일도 아니니까.


물론 사실 그보다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부터 시골에 가지 않는 게 명절 연휴를 보내는 방법이 달라진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사정 때문에 명절이면 혼자서 시골을 내려가야 했다.

물론 가기 싫었거나 누가 시켜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집안에 남은 남자가 나뿐이고,

할머니 혼자서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어린 내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그래서 추석이나 설날에 친구들하고 한 번 놀아보지 못했다.

그때는 그것이 아쉬워서, 명절에 어디 가지 않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또 명절에 모이는 친척들이 주는 용돈을 받는 것도 나름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대략 25년 정도의 나의 추석 연휴 루틴은 추석 전날 시골에 내려가 할머니를 돕고(딱히 크게 돕는 건 없었다), 추석 당일에 할머니와 차례를 지내고 이후 점심 지나 도착하는 친척들을 맞이한 뒤, 연휴가 끝나는 날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물론 나이를 먹고 일을 하게 되면서 이 루틴은 조금 더 짧아졌다.

어릴 때와 달리 연휴 내내 시골에 있는 것은 나름 스트레스와 피곤함으로 다가왔기에 그랬다.

비슷하지는 않아도 같은 맥락으로 시댁에 내려가는 며느리와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했을 때 명절 잘 쉬었냐는 말을 들으면 괜히 기분이 별로였다.

추석에 쉰다는 느낌은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어릴 때부터 친척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고 훵해진 집안을 보며 할머니께서 허전해하는 것을 보았었던 기억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할머니는 그래도 내 덕분에 아주 적적하지는 않다고 하셨지.

그렇지만 나도 크면서 새로운 사정이 생겼다.

시골에서 연휴 내내 있게 되면 우리 가족이 추석에 모일 수가 없는 것이다.


누나가 독립하기 전에는 명절에 엄마와 누나가 함께 있었지만

누나가 독립하면서 명절에 집에 오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을 핑계로 일찍 떠나는 손자를 할머니는 이해해주셨지만, 나는 자기합리화를 계속 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계시지 않기 때문에 추석에 나는 갈 곳을 잃었다.




할머니라는 구심점이 사라지자 친척들은 명절에 모이지 않게 되었다.

불과 2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그래도 친척들을 1년에 한 두번씩 보면서 안부도 묻고 했지만 지금은 따로 연락도 하지 않고 왕래가 없다보니 점점 더 어색해질 뿐이다.


뭐, 어차피 각자 자기의 가족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한다.


시골에 가던 시절에는 명절이라고 오랜만에 지인들에게 연락하고 그럴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물론 짬을 내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원래부터 핸드폰을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가끔씩만 명절 잘 보내라는 안부카톡을 몇 명에게 보내곤 했다.


하지만 친척들이 와있기 때문에 집중도 안되고 대화를 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추석 연휴 첫날 아침이 되자 연락이 드물던 지인에게 추석 잘보내라는 카톡을 받았다.

거의 1년에 한 두번씩 이런 식으로 안부만 전하는 것 같다.

이미 단톡방에서 인사를 한 사람들도 있고, 따로 친한 경우에는 전화도 생각하겠지만 문득 옛날 나와 같은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라, 물론 명절에 덕담도 나누고 그런 것은 좋지만 옛날에는 그런 걸 별로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시간이 있기 때문일까, 명절에 할 일이 없기 때문일까.


맞다. 추석이지만 사실 별로 할 일이 없다.

명절에 놀러가는 사람들은 인천공항에 바글바글하지만 명절에 어디 놀러간다는 개념도 아직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기회되면 그러고 싶지만 사실 직장인이 아니라 크게 상관은 없기도 하다.


왠지 이것이 추석이나 설날 명절에 찾아올 사람이 없는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아직 나이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할머니도 근처에 사는 할머니 집에 자손들이 찾아오는지 괜히 신경을 쓰곤 했었다.


솔직히 나도 수십년 간 명절 분위기를 느꼈었기 때문에 지금 이런 상황은 명절과 다른 날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그러하겠지.


다른 친구들은 지금 추석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생각해보았다.


결혼하여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명절이니 시댁이나 처가댁을 방문하여 부모님들을 뵈어야 하는 루틴이다. 이건 우리 누나도 마찬가지다. 시댁에 들렀다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다. 이후 자기 집으로 돌아가 남은 연휴를 보내겠지.


가끔 결혼을 했지만 각자 자기집만 가는 경우도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하지만 한쪽의 생각이 완강한 경우에는 딱히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


아직 솔로인 경우에는 집이 큰집이냐 아니냐에 따라 다르다.

큰집이라면 친척들이 몰려올 것이고 차례 준비나 이런 것을 주도하게 된다. 작은집이라면 식객 느낌으로 큰집에 가서 조금 도와주곤 할 것이다. 어쨌든 둘 다 친척들이 모이고 명절 음식도 하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 때문에 좋든 싫든 명절 분위기는 난다고 할 수 있다.


모이는 곳이 다른 지역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또 직계가족만 모이는 집이 있다. 이제는 나도 여기에 속한다.

딱히 명절이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차례도 지내지 않고 명절 음식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끼리 모여 한 끼 식사는 한다.


친구 중에 명절이면 부모님과 국내여행을 가는 친구가 있는데, 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어쨌든 다들 연휴를 보내느라 바쁠 것이다.

그래서 사실 가족 이외에 지인을 만나는 것도 쉽지는 않다.




대부분은 수요일에 모든 일을 끝마치고 퇴근했겠지만 나는 목요일에 퇴근을 했다.

저녁 전에 귀가하기 때문에 점심을 무얼 먹을지 조금 고민했지만 조조영화를 보고 근처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명절에는 문을 안 연곳이 많아서 밥 먹기도 조금 어렵다.


지하로 들어가니 손님 한 분이 밥을 먹고 있어서 왠지 오늘이 평범한 목요일인 느낌이었다.

자리에 앉아 내가 시킨 메뉴는 돈까스, 7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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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까스를 썰면서 생각해보니 옛날 같았으면 이제 슬슬 시골로 출발할 시간이다.

대략 오후 3시 정도면 도착해서 잠깐 할일 하다 저녁 먹으면 됐었는데.

분명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기 귀찮아졌던 것도 사실인데.


추석 연휴가 뭐라고.

임시공휴일에 개천절까지 껴서 6일 연휴가 되다보니 조금 생각할 거리가 된 모양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직장인일 때에는 추석 연휴를 쉬는게 바람이었는데

막상 이제 추석 연휴에 할 일이 없어졌는데 직장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면 이래저래 나한테 득이 없잖아...??

한민족의 명절은 나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모양이다.

아니, 그렇게 단정지을 건 아니다.

아직 인생은 기니까,

다음에는 해외여행을 가고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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