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출에는 정당성이 필요하다

적어도 귀차니즘을 이길 만한

by 이생원

폴바셋 아이스크림 쿠폰이 있었다.

3월에 받은 거라 1개월 간의 여유기간이 있었지만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유효기간.

이생원은 고민했다.

이걸 쓰러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Screenshot 2023-05-03 at 17.06.32.JPG 결과적으로는 선물의 운명이었던 쿠폰




분명히 세 번 정도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며칠에는 나가서 폴바셋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기로. 그렇지만 미루고 또 미루다 보니 벌써 유효기간을 이틀인가 앞두게 되었다.


'대체 왜 그렇게 나가길 귀찮아하는거냐고'


날도 좋은 봄날에다, 그렇게 멀지 않은 위치고 산책삼아 갔다오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 폴바셋 아이스크림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짜니까. 그런데 어째 오늘도 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오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 나란 녀석

한숨이 절로 나온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생각해보니 이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예로부터 이생원이란 작자는 어지간한 일도 이유가 없으면 하지를 않았다. 특히 집안에서 나가는 일은 더욱 더.


사실 집밖으로 나갈 정당성 중 가장 간단한 이유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 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면 그건 더이상 생각할 이유도 없이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그렇다면 나가서 무언가라도 한다면 이유가 될 것인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드럽게 따지네 진짜'


내 안의 또다른 자아가 불만을 표시하더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쯤되면 결국 이런 결론에 이르고 마는데 언제나 똑같다.


'꼭 가야 하는가?'


정당성이 아예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앞뒤가 바뀐 것이 뭔가 이유가 있어서 폴바셋을 가서 쿠폰을 쓰는 것이 아니라 쿠폰이 생겨서 쓰는 것인데, 그렇다면 쿠폰이 없었다며 나가지를 않았을 것이니 쿠폰이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럼 아주 깔끔하게 해결이 되


기는 개뿔.


사실 쿠폰은 그렇게 아깝지는 않은데 애초에 세웠던 계획을 지키지 않는 나의 모습이 불만이다. 애초에 나가기로 한 날에 나갈 것이지 왜 이렇게 안 나가는 건데?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맞다. 그건 맞다. 나는 내성적이기도 하고 외향적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혼자 다니는 것을 어려워 하는 성격이라, 누군가가 같이 있지 않으면 이렇게 정당성이 필요하다.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나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 이유없이 날씨가 좋다고 산책을 하거나 회사를 째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이 가지 않는 사람이다.


만약 이러한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정말 아무생각없이 나간다면 거의 90%의 확률로 후회한다. 나간 것을 후회하며 귀가할 가능성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런 성격이 된 것은 원래부터 타고난 내성적인 천성때문일 것이다. 뭐 그건 천성이니까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딱히 스트레스는 아니다.


참고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폴바셋이 몇 군데 없다. 한 세 군데 정도? 운이 좋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엄청 가까운 것도 아니고 그 아이스크림을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결국 이런저런 이유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쿠폰을 보다보니 선물하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캡처본은 쓸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에 연락처 등으로 선물을 해야 쓸 수 있었다.


TMI지만 사실 과거 스타벅스 쿠폰 중 유효기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안 갈 것 같은 쿠폰을 주로 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그 친구 집 근처에서 폴바셋을 검색하니 가까운 곳에 세 군데나 있다. 여기는 전 지역 중 세 곳인데 거기는 일부 지역인데도 세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가끔 생각한다. 물론 뭐 필요로 한다면 모르겠지만 뭔가 유효기간이 임박한 쿠폰을 준다는 것을 조금 꺼림칙해 할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못 쓰니까 어떻게 보면 버리는 셈이라고 생각할 수도? 물론 너무 그렇게 고깝게 생각하면 그 사람도 조금 성격에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위에서 스타벅스 쿠폰 주는 친구야 뭐 오래된 친구이고 그런걸 신경쓸 일도 없으니 상관없지만 말이다.


서울에 사는 애한테 폴바셋 쿠폰이 유효기간이 내일까지인데 혹시 필요한지를 물어보니 매우 흔쾌하게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나보고 안 쓰냐고 물어보길래 정당성이 없어서 나갈 수가 없다고 하니 카톡으로 뭔가 의문스러운 느낌을 보내왔다. 뭐 나라도 그러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게 사실이니까.


딱히 고마울 것도 없고 오히려 내가 고마운데 쿠폰을 받은 친구는 내게 고맙다며 잘 먹겠다고 했다. 나야말로 쿠폰을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아서 내가 더 고마웠지만 딱히 말로 하지는 않았다. 굳이 알아봤자 뭐하겠나. 원래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니 나의 쿠폰이 그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나의 공이 더 쌓이게 하면 되는 것이지...?(농담)

Screenshot 2023-05-03 at 17.07.13.JPG 잘 썼다고 한다! 후기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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