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와 20대 그리고 10대의 인간관계란
나는 우연한 기회로 대학생때 모임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가지 모임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으니 나의 모임 역사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물론 그동안 해왔던 모임의 성격이 다 같지는 않기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어려울지는 몰라도 모임을 경험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계속 축적되어오고 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 모임의 초창기 시절,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었지만 일단은 대학생 시절에는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말이다. 분명 처음 만났지만 금세 형, 누나 혹은 동생이라는 호칭 하에 나름 사적인 관계를 맺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족을 붙이자면 당시 모임은 주 1회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그 다음 주에 그렇게 형, 누나라고 불러드렸던 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와는 상관없더라도 30대의 초입에 활동했었던 모 독서모임에서 나는 님이라는 호칭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 모임장인 형은 30대 후반이었고 나이 차이가 상당히 나는 나에게 oo님이라는 호칭을 붙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호칭에 내가 느낀 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단순한 거리감이었다. 당시에 온라인 상에서 님아 라는 호칭이 반말이다 아니다 라는 것도 논란이 있었는데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이끼리 님이라니 당시의 내 사고방식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당연히 형이라 불렀고, 그 형은 나를 여전히 님이라고 불렀다. 님과 함께도 아니고.
이때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당연히 앞으로 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님이라고 불리는 것이나 부르는 것이나 모두 오글거리는 그 느낌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또 그건 아니었다.
인생은 역시 이래야 재미있지.
그렇게 다짐했던 나는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곤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어렸을 적에는 보통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모임에서 만나더라도 형이나 누나라는 호칭으로 부르면 끝날 일인데 이제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렇다보니 과거에는 ㅇㅇ씨라고 부르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첫 만남에서부터 그렇게 부르면 아랫사람에게 부르는 것 같다보니 나도 모르게 과거에 쳐다보지 않기로 약속한 님이라는 호칭을 꺼내들게 되었다.
오글거리다고 극혐하던 사람 어디 갔나요.
이제는 독서모임의 그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딴길로 샜는데 다시 본론인 나이먹음과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자. 그런데 나이 먹고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 이유가 지금 말했던 얘기에도 존재한다. 바로 호칭 문제가 그렇다. 호칭을 단순히 부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나를 어떻게 부르느냐, 또 불리느냐는 인간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 사람 누구야?"
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보통 우리는 뭉뚱그려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는 형이야 혹은 아는 오빠야 정도만 나오더라도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사적인 친밀함이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초반부에 언급했다시피 어린 사람일수록 이런 사적인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니 나이에 따라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어릴 때는 누군가를 자신의 사적 공간에 들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려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을 사적으로 호칭하는 것이 곧 그 사람과 나의 관계를 정의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나이를 먹고 그 쉽던 일이 어려워진다. 만난 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을 형, 혹은 동생 등으로 정한다는게 어려워졌으니까.
그러다보니 모임에서 님이라는 호칭이 그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대등하고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호칭이었기에 과거의 그 형이 나를 ㅇㅇ님이라고 부른 것이겠지. 반대로 말하면 사실 다음에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사이라는 뜻이기도 했다.(물론 어릴 때 형 누나라고 불렀어도 크게 다르진 않다는 생각도 든다만...)
나 또한 나이를 먹게 되면서 어느 정도 그 사람을 알기 전까지는, 즉 그를 내 사적인 공간에 들이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굳이 그를 사적인 호칭으로 부르지 않게 되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보지 않을 수도 있고 말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새로운 인간관계가 굳이 필요해지 않을 때가 온다. 이른바 결혼과 가정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면 기존의 관계가 위태로워지기도 하며, 그 외의 새로운 관계를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런데 알고 있듯이 요즘은 30대 절반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과거보다는 확실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장이 과거보다는 많이 열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과 같은 곳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임의 특성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친목모임에서조차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확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왜일까. 일단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을 보는 눈이 고정되다보니 자신이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이 한정되어진다. 다른 말로 얘기하자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도 할 수 있겠다. 더 까놓고 말하면 그럴 에너지가 없어진다.
결국 다른 이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한가한 자신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사실 모임을 많이 하다보면 정말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영락없는 카오스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의 다수 중에는 직장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온 사람, 즉 타지인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인간관계를 맺기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겠지만 고향에서 자라난 사람은 기존의 인간관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아무리 그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예전보다는 자주 만날 수 없기는 하더라도. 그렇다보니 서로 관계에 대한 욕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옛날에도 생각했지만 이미 안정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관계에 도전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서로가 정말 마음이 맞지 않는 이상은 모임에서 친밀하게 될 사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나이먹음과 사람 사귐에 대한 글을 간결하게 쓰고 싶었지만 역량부재로 이렇게 길어지고 있다. 현재 느끼는 바를 적어보자면 최근 모임 중에는 만나자마자 말을 편하게 하는 컨셉을 지닌 곳이 있는데, 그렇다보니 약간 옛날 기분을 느껴서 적게 된 글이다. 그랬지. 옛날에는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부르고 지냈지. 물론 그게 친한 척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모임 룰이 그렇다보니 부르고 싶지 않지만 사적인 호칭을 붙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사람을 사귀는 길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궁금하고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기초가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우리가 어렸을 적 친구와 함께 했던 그 모습이다. 그 시절에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확실히 다르긴 하다.
마음을 입밖으로 꺼내어 얘기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드러내자니 부담이 되는 부분이 생긴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서 말이다. 이렇듯이 우리는 어른이라서 쉽게 보여주지 못하고, 어른이라서 애들처럼 솔직한 얘기를 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앞으로의 인연을 위해서 노력을 거듭할 수 있다면, 어른의 모습이지만 아이의 마음이 되어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