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단순한 판매의 비결. 고객의 니즈 파악
고등학생 때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단팥빵을 무지하게 좋아하셔서,
우리 엄마는 냉장고에 늘 단팥빵을 한 무더기 얼려 놓곤 했다.
어느 날은 사촌 오빠가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왔다.
한 손에는 값비싼 카스테라를 들고.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드시지 않은 카스테라를 먹으며 생각했다.
그냥, 단팥빵 만 원어치 사 왔으면 되는데.
내가 하는 일도 꼭 “‘단팥빵’ 사오는 일”처럼 느껴진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이메일 속 한 단어, 통화 속 한 문장, 목소리 톤과 빠르기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지금 고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니즈 파악이 완벽하면, 결과물은 완벽하지 않아도 프로젝트는 성공한다.
모두가 에르메스를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볍지만 튼튼한 소재를,
누군가는 저렴한 가격을,
누군가는 실용은 개나 줘, 예쁘면 장땡!을 외치기 마련이니까.
나는 단팥빵을 사서 성공하기도, 카스테라를 사서 실패하기도 한다.
완벽한 빵셔틀(?ㅋㅋ)이 되면 좋으련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따끈따끈한 사례 두 개를 소개한다.
<아뿔싸, 카스테라였네!>
지난여름, 꽤 규모가 큰 캠페인 기획 의뢰가 들어왔다.
며칠을 고민해 마음에 쏙 드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안서를 작성했다.
다음 날, 담당자에게 아이디어가 좋다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았다.
심지어 기존에 프로젝트를 함께 성공시켜 관계가 좋은 담당자였다.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행은 결렬되었고, 캠페인은 다른 회사에게 넘어갔다.
그 이유를 몇 달 뒤에 알았는데,
오픈이 급한 상황이라, 기획과 디자인 퀄리티가 높지 않았지만
이미 디자인을 마쳐서 가져온 업체와 바로 진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단팥빵, 여기 있어요!>
지난달, 1분짜리 숏폼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예산은 통상 진행하는 단가의 5분의 1 수준이었고,
담고자 하는 내용은 너무 많았다.
우선 견적에 맞는 퀄리티의 영상 리스트를 뽑고,
고객사의 입맛에 맞을 것 같은 레퍼런스를 ‘두 개’로 추렸다.
그리고 전달받은 내용을 추리고 추려,
컨텐츠 아웃라인을 ‘일곱 문장’으로 정리했다.
고객사에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되,
견적과 시간의 한계를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신을 받았다.
“딱 저희가 생각했던 버전 같아요. 좋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고객에게 묻지도 않고 엉뚱한 기획을 한다.
어쩌면 이건 마지막 순간에 “짠!” 하고
7성급 호텔 카스테라를 내놓으려고 하는 욕심이다.
고객에게 “어떤 빵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게 어려워서,
내가 아는 최선을 주면 무조건 좋아할 거라고 믿는 게으름이다.
나는 내일도 빵 사러 간다.
내일도 단팥빵을 사올 수 있기를, 꼭 그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