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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r 25. 2023

11화_훈련보다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개를 이해하는 것이죠.

밖에서 떠돌던 개들이 집에 와 안정을 찾기 시작하면서 분리불안에 시달렸다. 복주는 복주대로 해탈이는 해탈이대로 우리 집 개들은 전부 필사적으로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둘 다 집에 혼자 남겨지면 집이 떠나가라 하울링을 하며 울었고 심지어 복주는 탈출 시도까지 했다. 물론 전보다 많이 좋아졌고 혼자가 아니라 둘이 같이 있으니 덜하긴 한데 여전히 내가 오래 집을 비우면 둘 다 불안해한다. 하지만 개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들의 분리불안 증세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다. 개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은 보호자와 떨어지면 불안해한다. 그건 아마도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의 특성 때문이리라.


반려견 입양 시 흔히 겪는 이런 “분리불안” 증세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완화시킬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훈련” 이란 건 별 게 아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개가 자신의 보호자를 믿게 만드는 과정이다. 가령 언제 어디서든 기다리기만 하면 보호자가 반드시 나를 찾으러 온다. 혹은 천둥 치고 바람이 불어도 보호자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 같은 믿음을 보호자가 개한테 꾸준히 입력하면 개들은 점차 안정감을 찾아간다. 물론 이런 일들이 어느 하루에 뚝딱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개들도 사람 아이처럼 퍼피시절에는 보호자의 품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하지만 성견이 되면 차츰 증세가 자연스레 호전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개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개를 키우던 초반에 나 역시 개들의 분리불안을 고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다. 여러 훈련사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용하다는 동물병원을 수소문해 신경안정제까지 처방받아 왔다. 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재미있는 장난감도 간식 도  전부 내가 키우는 개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오로지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나와 내 혈육들)와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모든 걸 다 하지 않고 집을 비운 사이 그냥 개한테 신경을 꺼도 된다. 과격하지만 이 방법도 사실 유효하다. 개도 나름 울고 떼써보다 끝내 지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개를 기르면서 정서적으로 이렇게 괴롭힐 거 같으면 애초에 이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인정한다. 주변 반려인들 사이에서도 나는 유난스러운 보호자다.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네가 개를 키워서 망정이지 사람 키웠으면 어쨌을 뻔했냐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만약 내가 사람 아이를 키웠다면 헬리콥터맘이 아니라 인공위성 맘이 됐을 거다..


개를 키우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개를 집에 데려온 후 2년 동안 나는 개들의 사회화(강아지의 사회성을 기르는 일)에 굳이 굳이 사력을 다했다. 뭘 이렇게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개한테 배우는 시기가 따로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기에 개들의 어린 시절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시기의 개들의 학습능력이 뛰어난 것도 증명된 사실이지만 돌이켜보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배우고자 함에 있어 늦은 나이란 없듯 성견이 돼서도 개들은 사람과의 규칙을 잘만 배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개라는 생명 자체를 몰라서 마음이 노상 바빴다. 혹시라도 내가 뭔가 잘못 가르쳐 우리 개가 나쁜 개가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대체 그때 왜 그랬나 싶다. 그 모든 유난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다. 누가 보면 국가대표 코치처럼 매일 개들을 정성스레 먹이고 훈련시켰지만 개들은 내 뜻과는 전혀 다르게 성장했다. 사고는 사고대로 치고 다니고 말은 말대로 안 듣는다.

물론 이때의 노력이 아주 물거품이 되는 게 두려워 머리에 힘을 주고 스스로 그렇게 해서 그나마 이 지경이다 소리를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허송세월을 보낸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주변 사람들이 우리 개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하면 뭐 그것으로 위안이 되긴 한다. 집에 데리고 들어온 이후부터 내가 노력한 가장 유일한 일은 개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들 어려서 한 두 해는 반려견 놀이터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다. 목줄 없이 힘차게 뛰는 개를 보면 내가 다 신났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는데 서울 경기 지역엔 ’ 반려견 놀이터‘라는 공간이 있다. 서구 유럽의 Dog Park에 비하면 개 코딱지만 한 사이즈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라도 개들이 맘껏 뛰어노는 걸 보는 게 좋아 여태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월드컵공원 안에 있는 놀이터와, 경기도 안양에 있는 삼막 놀이터를 다닌다. 최근에는 개들이 커서 그런가 친구들과 몸씨름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산책 위주로 다니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개들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개들이 아주 약하고 어린 개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해탈이가 2개월 때 3킬로 5킬로 사이였을 때 대형견 놀이터에 풀어놓으면 그 누구도 해탈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해탈이가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큰 개들이 봐줬다. 또 어떤 개들은 해탈이랑 놀 때 자신의 힘을 안배해 살살 놀아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그저 신기했다. 물론 요즘은 놀이터 규정이 엄격해져 크기 제한으로 작은 개들은 대형견 존에 출입할 수 없지만 해탈이 어려서는 그런 규칙이 없어서 큰 개들과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단 한순간도 큰 개들이 해탈 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 얘기를 자주 가는 동물병원 선생님께 하니 원래 퍼피들 입 근처에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냄새가 나는 개는 다른 개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개가 자라면서 입 주변의 아기 냄새가 사라지면 그때는 사정을 안 봐준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낮춰 부르는 개들이 서로서로 약한 개체를 보호하는 규칙을 지키며 산다는 게.


뿐만 아니다. 개들과 함께 살며 그간 나도 많이 배웠다. 제일 많이 배운 건 아마도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졌다는 거다. 전에는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힘껏 날개도 펴 보지 못하고 죽는 축산시설의 닭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 또 인간의 욕심으로 발병한 구제역으로 불에 탄 돼지들의 비명을 지르며 살처분 됐다는 얘기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으로 지어진 동물원과 수족관에 여전히 갇혀 지내는 생명을 생각한다. 그 이전엔 전혀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분야다. 덕분에 요즘 나는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는 거짓말이다. 대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이전과 다르게 아주 조금일지라도 식탁에 올라오는 생명이나 우리와 함께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에 대해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제대로 된 훈련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종이 다른 우리가 인간과 개로 만났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얼마 전 해탈이의 세 번째 생일이 있었다. 눈 뜨고 있는 동안은 종일 날아다니며 사고를 치던 에너지가 넘치던 이 친구는 이제야 제법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쉰다. 그러니 어쩌면 개나 인간이나 가장 의지해야 할 존재는 바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간에 기대어 살면 대부분의 걱정과 고민이 사라지니까. 이 법칙에도 물론 예외는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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