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Mar 25. 2023

11화_개와 함께 산다는 것.

분리불안에 대하여

독립적인 데다 살갑지 못한 성격인 나는 언제나 둘 보다 혼자를 선호했다. 어쩌다 마음 맞는 친구랑 여행을 가도 사나흘이 전부지 그 이상 함께 있어 본 적 없다. 연인도 마찬가지다. 그게 누구라 해도 남 하고는 하루 함께 있으면 이틀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뿐인가 남과 살을 맞대는 건 병적으로 싫어해서 학창 시절 또래 친구들이 자연스레 다가와 팔짱을 끼면 정색을 하고 팔을 빼고 저만치 떨어져 걷곤 했다. 물론 부축을 받거나 하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남에게 기댔지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남한테 기대 본 건 내 기억에 없다.  


그러다 마흔 언저리에 어쩌다 보육원에서 봉사활동을 좀 오래 했는데 그때 이 병이 나았다. 사철 따뜻하고 포근한 아이들을 업고 안으면 그렇게나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생명체가 주는 그 완벽한 온기에 마음 가득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 일어 놀란 적 있다. 전엔 몰랐다. 사람이 사람을 안는다는 게 이토록 가슴 벅찬 일이라는 걸.  뿐만 아니라 아장아장 걷는 돌쟁이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까르르 웃으며 달려와 안기면 그렇게나 행복할 수 없었다. 할 수 만 있다면 내 모든 걸 다 주고라도 가능한 오래 붙잡고 싶은 시간들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나면 허그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세월호나 다른 참사 피해 어머님들을 만나면 무조건 힘껏 안아 드렸다. 그냥 본능적으로 말 보다 나을 것 같았다. 또 마음을 전하기엔 이만한 게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몸은 머리보다 솔직하니까.


한데 말이다. 최근엔 개를 돌보며 아이들을 돌보며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다. 사는 일에 지쳐 마음이 힘들 때 둥굴레차 냄새처럼 구수한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는 개를 온몸으로 끌어안으면 그들이 주는 따뜻한 온기가 그렇게나 위로가 된다. 친구들과 헤어질 때 이제 집에 가 “개 테라피 받아야지”라며 농담할 정도로 개를 안고 있으면 즉각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지고 행복감이 높아진다. 몰랐는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 한다. 실제로 반려견을 안을 때 사람의 뇌에서 행복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출된다고 한다.. 그러니 농담이 아니라 실제 우리는 개한테 호르몬 요법으로 치유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개를 키우던 처음부터 이런 마음이 생긴 건 아니다. 처음 한 두 해는 개도 나도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바빴다. 엄마 집에서 개를 키울 땐 몰랐는데 내가 직접 개를 키우고 보니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또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토록 많이 협의해야 하는지 몰랐다. 한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하물며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살아도 싸우는데 종이 다른 두 개의 생명이 함께 산다는 건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상대가 설령 개라 할지라도 양보할 건 서로 양보하고 크고 없는 규칙은 새로 만들어야 했다.

개들은 말을 하지 않으므로 나하고 함께 살며 어떤 것들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일단 개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로 티브이를 틀지 않는다. 개들이 화면에서 나오는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또 꼭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밤에 조명을 켜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어쩌다 무심결에 밤에 티브이를 켜면 티브이를 다시 끌 때까지 개들이 나를 지독히도 째려본다.


그렇게 얼추 서너 해가 흘렀음에도 가끔 우리는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가령 나는 외출을 하는데 그걸 우리 개 복주는 ‘실종’이라고 여긴다던가 하는 일들이 여전히 생긴다. 그도 그럴게 개들과 함께 살기 시작할 무렵엔 코로나가 극성이라 외출을 거의 안 했고. 그러다 보니 개들은 자연스레 내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대단히 혼란스러워했다. 여전히 나와 분리되는 걸 두려워한다.  


그때부터 나는 어쩔 수 없이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어 해탈이하고 복주한테 꾸준히 가르쳤다. 일단 옷과 가방을 단시간 외출과  장시간 출타로 구분해 사용했다. 가령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땐 무조건 운동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모자를 현관 앞에서 흔들어 보이며 ’금방 올게’라고 했다. 또 외부에 볼일을 보러 나갈 땐 좀 더 복잡하게 옷을 입고 마스크를 하고 핸드백을 들고 차키를 개들 앞에서 흔들며 ’ 다녀올게 ‘ 한다. 이 일을 될 때까지 반복하니 개들도 어느 순간 둘의 차이를 알아차렸다. 물론 요즘도 종종 헷갈려하긴 하지만.


사실 반려견을 키우는 대부분의 보호자가 겪는 고민은 반려 초반 내가 겪었던 ‘분리불안’이리라. 덕분에 분리불안 관련 정보는 인터넷에 수없이 많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 모든 팁은 전부 세월 앞에 무용하다. 사람도 그렇지만 개도 어느 정도 개체가 성장하면 혼자 있을 줄 안다. 어려서 보다 확실히 덜 불안해한다. 물론 “분리불안” 증세는 훈련사의 개입과 양육자의 노력으로 초기에 쉽게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개가 함께 사는 사람을 무리로 인식하기까지‘ 시간 외에 그 모든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위에서 말한 저 방법도 개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내게 소속감이 생기고 나서 가능한 이야기니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뭐든 처음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개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그렇다. 복주가 아기였을 땐 별 일 아닌 걸로 득달같이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용하다는 수의사나 훈련사가 있으면 장소와 비용을 마다하지 않고 쫓아가 질문하고 상담받았다. 아마 그때 나는 이들이 예수님처럼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기적을 선 보일 줄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은 세상에 없었다. 그들은 신이 아니고 내 개도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조언대로 ‘인내심’을 갖고 계속 훈련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단기간에 ‘분리불안에’ 확실한 효과를 보는 비법을 나도 알고 있긴 하다. 그건 불안해서 울고 보채는 개를 무시하고 모른 척하는 거다. 말하자면 개한테 이런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거다. 너와 나는 같은 무리가 아니다. 난 너와 함께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면 개도 눈치가 있어 사람을 덜 찾는다. 하지만 나는 이 방법은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이는 정서적 학대다. 그러므로 나는 나만의 소통 방법을 찾은 거다.


물론 개도 사람처럼 각기 달라서 이 방법이 통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안 통하는 친구도 있을 거다. 그러면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인터넷 용어 중에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르신들이 하는 말 ‘백문이불여일견“과 같은 의미로 인터넷에서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 백날 천날 글로 보고 영상으로 봐도 직접 부딪혀 배우는 게 최고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 개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유효한 꿀팁을 얻은 곳은 책도 논문도 아니다. 그건 바로 동네 개 놀이터 커뮤니티였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는데 서울 경기 지역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 반려견 놀이터‘가 있다. 서구 유럽의 Dog Park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사이즈지만 나름 그 작은 공간에서라도 개들이 맘껏 뛰어노는 걸 보는 게 좋아 복주 입양 초기부터 지금까지 별일 없으면 자주 간다.


그간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월드컵공원 안에 있는 놀이터와, 경기도 안양에 있는 삼막 놀이터를 다녔다. 개는 개대로 나는 나 대로 별의별 사람과 개를 만났고 나보다 앞서 개를 기른 분들께 귀한 가르침을 무료로 사사받을 수 있었고, 서울에서 큰 개를 키우는 애환을 서로 토로하며 위로의 마음을 얻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같이 나가 놀이터에서 내 개와 다른 개들을 관찰하며 이 과정에서 매우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됐는데 그건 바로 개들 또한 서로 “배려”한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어 시윤이라는 멋진 도베르만 친구는 친구에게 장난감을 양보할 줄 안다. 그러니까 개한테도 친구라는 개념이 있는 거다. 자기 공을 친구가 가져가도 절대 화를 내거나 도로 뺏어오지 않는다.


그뿐인가 백호라는 허스키 친구는 함께 놀던 친구들이 수돗가로 몰려가 물을 마실 때 다른 친구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일 마지막에 먹는다. 처음엔 이들의 행동이 우연인 줄 알았다. 한데 이런 장면은 계속 됐다. 그뿐 아니다. 백호나 시윤이처럼 크고 멋진 개들은 절대 어리고 약한 개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해탈이 가 2개월 때 3킬로 5킬로 사이였을 때 대형견 놀이터에 풀어놓고 길렀을 때 그때는 그 어떤 개도 해탈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 큰 개들은 어린 개랑 놀 때 말 그대로 살살 놀아줬다. 물론 요즘은 놀이터 규정이 전보다 엄격해져 크기 제한 때문에 작은 개들은 대형견 존에 출입할 수 없지만 해탈이 어려서는 그런 규칙이 없어 큰 개들과 함께 어울려 놀며 컸다.


이 얘기를 자주 가는 동물병원 선생님께 하니 원래 어린 개들 입 주위엔 아기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냄새가 나는 개는 다른 개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개가 자라면서 아기 냄새가 사라지면 그때부턴 사정을 안 봐준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천지분간 못하는 짐승이라고 부르는 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약한 개체를 보호하는 규칙을 지키며 산다는 게.


생각해 보면 그간 개들과 함께 살며 나 역시 길에서 많이 배웠다. 그전엔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깨닫기도 하고. 가령 전에는 개를 키우기 전엔 연예인들이 반려견 유치원 보내는 거 보면서 돈이 차고 넘치게 많아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개를 키워 보니 유치원이 뭔가 대학도 보낼 판이다. 또 개와 함께 먹고 자고 삶을 공유하니 자연스레 개한테 애착이 생겼다. 그러니 자연스레 개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었다. 연예인들이 돈을 허투루 쓰지 못해 안달 나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다음은 인간이 생각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봐도 개와 사람은 별 차이가 없었다. 어쩌다 도구를 손에 쥐어 세상을 재패한 거다. 맨주먹으로 공평하게 체급이 비슷한 인간과 개가 한판 붙으면 무조건 개가 압승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인간은 정말 손에 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 전 해탈이의 세 번째 생일이 있었다. 우리 집에 온 후 이날 이때까지 눈만 뜨면 종일 사고만 치던 녀석이 이제야 제법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쉰다. 영원히 철들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의 머리에도 생각이라는 게 생긴 모양이다. 더는 백호를 쫓아다니지도 않고 제법 의젓해졌다. 그러니 잊지 말아야지. 언제 어느 순간에도 시간이 약이라는 자명한 생의 진리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