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먹지 못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상대를 온전히 알고 나면 함부로 대 할 수 없다. 내 경우엔 문어가 그렇다. 전엔 안 그랬는데 <나의 문어선생님> 다큐멘터리를 본 후 나는 더 이상 문어를 먹지 못한다. 아니 못 먹는 정도가 아니다. 어쩌다 마트 식품관에서 몸통이 잘게 썰린 문어가 초장과 함께 포장된 걸 보는 것조차 괴롭다. 문어를 알게 되니 더는 문어가 먹을 걸로 보이지 않는다. '녀석, 어쩌다 잡혔을까. 조가비로 위장술을 쓰고 미역인 척 해조류 사이에 자연스레 숨어있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놈들인데 어쩌다 잡혀 이 끔찍한 부관참시를 당했을까?' 싶다.
개도 마찬가지다. 개야말로 제대로 알고 나면 도저히 먹을 수 없다. 해서 나는 여전히 개를 먹는 사람들은 아직 개를 몰라서 그런다 싶다. 사실 우리 민족은 원래 개를 즐겼다 하지 않는다. 농경민족에게 개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관련 문헌을 뒤져 보면 개를 보양식으로 먹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다. 이해된다. 그땐 오랜 기근과 일제의 수곡 약탈로 먹을 게 없어 흙을 채에 걸러 먹었다고 하니 개가 아니라 개 할아비라도 먹어야지.
한데 의아한 건 요즘도 개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지난 2월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의 문턱을 간신히 통과했지만 27년까지는 아쉽게도 계도 기간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전국의 개농장에서 식용개들이 태어나고 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왜 개만 안 먹냐 소나 돼지 닭 같은 건 함부로 먹어도 되는 거냐 따질 거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려 한다. 일단 개부터. 그다음에 닭과 소와 돼지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왜냐하면 개는 일단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다. 인간의 친구는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가 아니다. 우린 제대로 된 교류를 한 적 없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관련 문서를 찾아보면 개는 수렵 체집시절부터 인간과 함께 사냥을 다녔다고 한다. 또 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리한 동물이다. 개들의 인지 능력은 요즘 나오는 동물행동학 논문만 몇 개 뒤져 봐도 인간 아이 두 살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한다.
이 시기 사람 아이들로 말할 것 같으면 간단한 문장을 구사할 줄 알고 얼추 사리 분별을 한다. 개도 그렇다. 몇 해 전 대한민국 대표 애견인 가수 이효리가 나온 <캐나다 체크인>에서도 보여줬듯 개들의 인지능력은 우리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다.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 개들은 하나 같이 2년 전 자신을 돌봐주던 보호자의 손길을 바로 기억해 냈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엊저녁에 뭘 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가.
개를 키우기 전에 개 키우는 사람들이 개가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을 때 거짓말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개를 키워 보니 정말이다. 개는 단어를 외우고 그에 맞는 반응을 했다. 우리 집 개들도 간단한 단어 가령 “나가자, 간다, 안녕, 간식, 공, 언니, 산책” 같은 말을 알아듣는다. 이 얘기를 주변 반려인들에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내 얘기가 맞다고 동조한다. 하지만 개를 안 키우는 사람은 예전의 나처럼 내 말을 믿지 않는다..
이렇듯 해탈 복주를 키우며 개의 영민함을 알게 될 때마다 놀랍고 대견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개들과 다를 바 없는 친구들이 사람의 식탁에 오르다니 하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우리나라 욕 중엔 개로 시작하는 욕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먹기 위해 평소에 개를 비하하고 경멸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야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니까. 안 그러곤 어떻게 기르던 짐승을 잡아먹어.
앞서 말했다시피 전에 한반도에서 개는 소 이상으로 가는 재산이었다. 개는 평소엔 가축을 지켜주는 훌륭한 보안관에다 겨울에는 털가죽까지 내어주는 존재니 지금처럼 무자비하게 개를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 와서 사람들이 개를 잡아갔다. 특히 일제강점기엔 개의 고기와 털을 군수품에 쓴다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개를 잡아갔다. 그 후에도 개들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보양식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이 복날에 개를 잡았다.
상황이 이러니 이 나라에선 낯선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개들만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니 이런 살육의 역사 안에서 한반도 토종개들이 어찌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친밀하게 굴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며 봐야지 덮어 놓고 진돗개는 사납다 사회화가 덜 됐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거다. 또 최근 도시를 산책하는 우리 토종개들은 거의 대부분 예외 없이 순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보호자가 사람 많은 데로 산책을 아예 안 나온다.
게다가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가 사납다는 인식은 미디어에서도 불을 붙였다. 일례로 최근 폐지된 ‘개는 훌륭하다’ 나 ’ 이경규의 존중냉장고‘ 같은 프로가 대표적이다. 이 두 방송은 겉으로는 개를 위하는 것처럼 제작된 프로지만 면면을 파헤쳐 보면 진행자들이 여러 차례 진돗개를 위험하다고 하며 교묘하게 수입 품종개를 띄우고 토종 믹스견을 갈라 치기 했다.
사실 ”진돗개는 사납다 “라는 편견에 시달리는 건 대부분 어르신 들이다. 산책 중 만나는 젊은 사람들이나 어린이 친구들은 큰 개한테 호의적이다. 이는 아마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진돗개가 사납게 짖는 걸 보고 자란 세대와 아닌 사람들의 차이. 그러니 진돗개에 대한 평가는 각자 경험에 근거해 다른 게 맞다. 더 정확히는 개마다 성격이 다른 게 맞다.
해서 요즘 산책할 때 나는 어린아이들에게 개를 경험할 기회를 자주 만들어 준다. 산책하다 개를 좋아하는 아이를 만나면 아이들 앞에 우리 개들을 앉히고 진돗개와 허스키의 특징에 대해 말해 준다. 그러면 아이들이 손뼉 치며 좋아한다. 굳이 내가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아이들에게 이왕이면 개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주고 싶어서다. 물론 개를 만질 땐 이렇게 해야 한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 개들은 동네 어린이 친구들한테 장난감 선물, 크리스마스 카드, 때론 직접 그린 그림 편지도 받는다.
또 이렇게 개를 데리고 나가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종종 재밌는 대답도 들을 수 있다. 전에 한 번은 운동장에서 만난 한 어린이 친구에게 "추운 나라 출신인 허스키 친구들이 한국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우리 친구 생각은 어때요" 하고 물으니 그 친구가 잠깐 눈동자를 굴리더니 "러시아랑 우크라이나랑 전쟁을 하고 있으니까 그때를 틈타서 도망 나온 거 같아요"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동식물의 생태학적 공감과 개념이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아니 무지했다. 그런데 개를 키우다 보니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파주 인근을 지날 때 하늘을 까맣게 뒤덮으며 날아가는 겨울 철새의 이동을 보며 새를 좋아하는 복주와 한참을 서서 바라보며 멋있다고 생각한 것도 살면서 처음이고 까치의 털에 빛이 반사되면 자개장의 자개처럼 은은한 무지갯빛 광채가 이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뿐인가 전엔 파리 한 마리도 못 잡아 기겁을 했는데 이제 곤충마저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러니 자연스레 육식을 피하고 채식위주로 식단을 꾸리고 있다.
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부끄럽지만 아직 나는 육식을 한다. 다만 덜 먹으려 노력한다. 전에 없이 고기 앞에 서면 내 개가 소중한 만큼 다른 생명들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내 개들과 나의 죽음이 개별적으로 다뤄지고 존중받길 바라듯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도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고기는 끊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 글을 쓰자니 새삼 부끄럽다. 얼른 나가서 쥐구멍이나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