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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Jan 18. 2023

10화_지구는 인간만 쓰는 게 아니다.

알면 먹지 못한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상대를 온전히 알고 나면 함부로 대 할 수 없다. 내 경우엔 문어가 그렇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의 문어선생님>이란 다큐멘터리를 본 후 나는 더 이상 문어를 먹지 못한다. 아니 못 먹는 정도가 아니다. 어쩌다 몸통이 잘게 썰린 문어가 초장과 함께 포장된 걸 보는 것조차 괴롭다. 문어를 알게 되니 더는 문어가 먹을 걸로 보이지 않는다. '녀석, 어쩌다 잡혔을까. 조가비로 위장술을 쓰고 미역인 척 해조류 사이에 자연스레 숨어있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놈들인데 어쩌다 잡혀 이 끔찍한 부관참시를 당했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개도 마찬가지다. 개야말로 제대로 알고 나면 도저히 먹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개를 먹는 사람들은 아직 개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글쎄 우리가 어쩌다 개를 먹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근 현대사에 있었던 지독한 굶주림 때문 아니었을까. 그때는 먹을 게 없어 고운 흙을 채에 쳐서 먹었다고 하니 개가 아니라 개 할아비라도 먹었겠지.


하지만 문제는 기근이 해소된 후에도 일부 지역과 계층에서 개를 식용으로 기르고 먹었다는 데 있다. 외교적으로는 국제 이미지 실추 문제도 있고 하여 민관이 합동으로 노력한 결과 드디어 ‘24년 2월 6일 전 개 식용 종식 관련 특별법이 제정됐다.

*정부 지원방안과 하위법령 마련 등의 후속조치를 추진하기 위한 ‘개 식용 종식 추진단’을 1월 22일 발족시킨 한편, 지난달 22일 개식용종식 제도 운영에 관한 민원인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현장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 ‘독(dog) 상담 콜센터’(1577-0954)도 운영을 시작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www.korea.kr)


어느 동물이라고 사정이 다르랴마는, 개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리한 짐승이다. 대한민국 대표 애견인 가수 이효리가 나온 <캐나다 체크인>이 증명했듯 개들의 인지능력은 때로 놀라울 정도다. 해당 프로그램에 나온 개들은 하나 같이 2년 전 자신을 돌봐주던 보호자의 손길을 기억해 냈으니 말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보통 개들의 평균 지능은 인간 아이 2세 수준 정도라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보편적인 두 돌 아기를 기준으로 보면 이 시기 아이들은 간단한 문장을 구사할 줄 알고 양육자와 소통을 하며 더러는 뭐가 맞고 틀린 지 사리 분별도 한다.  

우리 복주만 봐도 그렇다. 대단히 영리하다. 또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보호자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지 안다. 전에는 막연하게 복주가 내 손짓과 표정을 읽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사람의 언어를 알아듣는다. 왜냐면 같은 말을 영어로 하면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앉아', '손', '엎드려', '기다려' 같은 말을 영어로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 거린다.


이 얘기를 주변 반려인들에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내 얘기가 맞다고 동조한다. 하지만 개를 안 키우는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으면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라 “ 한다. 한데 분명한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해외 입양을 앞둔 보호소 친구들에게는 자원봉사자 분들은 개한테 따로 영어 훈련을 시킨다.


신기하지 않은가. 개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다는 것이. 이렇듯 개의 영민함을 알게 될 때마다 대견하지만 한 편으로는 가슴 아프다. 왜냐면 여태 우리 복주와 비슷한 품종의 친구들이 이 척박한 조선 땅에서 태어나 수 없이 많이 죽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고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도심 외곽으로 나가면 흔히 말하는 방치견과 학대견들이 천지니까.


개를 홀대하는 문화는 전쟁 세대, 산업화 세대 어르신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리라. 하지만 개에 관한 고대 문헌을 뒤져 보면 우리가 본래는 개를 즐겨 먹는 민족이 아녔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꽤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는 개가 소 이상으로 가는 재산이었다. 평소엔 가축을 지켜주는 훌륭한 보안관에다 겨울에는 털가죽까지 내어주는 존재니 지금처럼 무자비하게 개를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개를 ‘보양’ 차원으로 복날에 잡아먹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개들은 목숨을 부지했고 그런 개들이 사람을 보면 짖는 건데 사람들은 이런 개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은 무시하고 무조건 진돗개는 사납다 사회화가 덜 됐다는 말을 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서글퍼진다. 도시에서 목줄을 하고 산책하는 개들은 다들 엄청나게 열심히 사회화시켜 거리에 데리고 나오는 것인데 이런 납작한 편견에 갇혀 거리에서 타인의 배타적이고 혐오 가득한 눈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문화를 예능 방송 같은 데서 부채질하면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할 수만 있다면 방송국까지 탱크를 몰고 가고 싶다. 그러니까 최근 폐지된 ‘개는 훌륭하다’ 나 ’ 이경규의 존중냉장고‘ 같은 방송에서 겉으로는 개를 위하는 것처럼 말하며 프로그램 안에 교묘하게 품종개와 믹스견을 갈라 치기 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진돗개의 사회성을 문제 삼으면 그 여파를 다음 날부터 고스란히 개 키우는 사람이 얻어맞기 때문이다.

사실 편견에 시달리는 건 어른들이다. 산책 중 만나는 어린이 친구들은 자신의 두 눈으로 개를 보기 때문에 오히려 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종종 무섭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멍멍이다’ 하며 호기심을 갖고 개를 본다. 그러면 나는 기꺼이 어린이 친구들과 우리 개들을 인사시킨다. 하지만 가급적 멀리서 보게 한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가 특별히 산책 때마다 동네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개들과 교감하게 하는 건 어린 친구들의 기억 속에 개가 다 무서운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다.  게다가 해탈이는 사람을 너무나 좋아한다. 특히 어린이들과 잘 논다. 덕분에 동네 친구들한테 해탈이는 그동안 손편지와 그림엽서 장난감 선물도 받았다. 그래서 가끔 포천에 오래 있다 집에 오면 아이들이 말한다. ”해탈이 가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 이런 얘기를 들으면 주책이지 괜히 내 코 끝이 매콤해진다.


또 이렇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종종 재밌는 대답도 들을 수 있다. 한 번은 운동장에서 만난 한 어린이 친구에게 "추운 나라 출신인 허스키 친구들이 한국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우리 친구 생각은 어때요" 하고 물으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생각하는 듯 잠깐 눈동자를 굴리더니 "러시아랑 우크라이나랑 전쟁을 하고 있으니까 그때를 틈타서 도망 나온 거 같아요" 했다.

다음 세대와 이런 마음을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털 친구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까. 이 친구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지금의 우리 보다 이 땅의 모든 생태 식물과 부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


개를 키우며 나도 생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일단 계절에 민감하고 지렁이나 달팽이의 생사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비건이 됐다. 고 말하고 싶은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지만 닭을 시킬 때마다 닭을 사람이 죽이지 않고 기르면 이 십 년은 산다던 얘기를 떠 올린다. 그러면 두 번 먹을 치킨도 한 번만 먹거나 아예 안 먹을 수도 있다. 소와 돼지도 마찬가지다. 가능하면 덜 먹으려고 노력하고 굳이 찾아 먹으려 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이 정도의 노력은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언제나 잊지 말자.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친구들의 터전을 빼앗고 문명을 이루었을 뿐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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