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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Feb 20. 2023

9화_사랑이란 이름의 폭력

1미터 목줄에 묶여사는 방치견들 이야기

코로나 시대가 내게 알려준 가장 큰 사실 하나는 나란 사람은 도저히 갇혀서는 못 산다는 (어찌 보면 자명한)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집순이라 전에는 외딴섬에서도 인터넷만 된다면 혼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거라 믿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자가격리를 몇 차례 겪어보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좁디좁은 방안에 몇 날 며칠을 갇혀보니, 감옥에 갇히는 게 괜한 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달까.

그 잠깐의 경험도 고립이라면 고립이랍시고, 이 시기를 지낸 후 나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갇혀 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연민의 감정이 일었다. 이후 나는 부쩍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병원에 입원해 오래 외출을 못하는 환자들, 보행이 자유롭지 못한 교통약자들, 또 동물원이든 수족관이든 한평생 철창에 갇혀 사는 동물들의 처지가 남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겪는 것과 겪지 않은 것의 차이가 크다는 걸 전에도 알고는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요즘 나는 묶여 지내는 모든 생명체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서울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 미터 목줄' 신세의 밭지킴이 개들에게 자꾸자꾸 마음이 갈 수밖에, 이건 아마도 아마도 내가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리라. (개를 키운 후 세상의 모든 개에게 부쩍 눈길이 간다)


건강이 좋지 않아 전보다 자주 병원 신세를 지는 탓에 이 년 전에 나는 포천의 산골에 방 하나를 얻어 요양차 들어갔다. 그곳은 본래 어쩌다 한 번씩 개들과 놀러 가던 애견펜션이었는데 사정을 전해 들은 마음 좋은 주인장이 펜션 한편에 우리가 거처할 달방을 따로 내어줬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서울서 별일 없으면 개들을 싣고 무조건 포천으로 향했다. 포천에 와 짐을 풀면 귀를 찌르는 듯한 기계음으로 가득한 도시의 소음도 매콤한 도심의 먼지냄새도 금방 잊혔다.


산 좋고 물 좋은 데서 밭에 나가 소일 거리 하며 하루를 보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여도 마음이 좋았다. 마당 한편에 아무렇게나 개들이 늘어져 볕을 쬐고 나는 또 나대로 잡초도 뽑고 해를 넘겨 산다는 꽃들을 사다 파종을 했다. 그러면 도시에서 가져온 얼마간의 근심도 전부 사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또 개다. 그건 다름 아닌 도처에 묶여사는 개들 그러니까 “일 미터 목줄에 묶여 사는 개들”을 '천지삐까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희한하게 포천은 지리 적으로 서울과 멀지 않은데 그 가까운 거리가 무색하리만치 문화적으로 서울과 많은 게 다르다. 이 중 최고는 단연 날씨인데 지난해 11월에 내린 눈이 올해 2월까지 녹지 않는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겨울엔 눈의 시작이 어딘지 끝이 어딘지 모르는 그 유명한 설국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눈이 이토록 눈이 안 녹는다는 건 그만큼 춥다는 얘기의 반증이리라. 덕분에 기상청에서 한파 특보를 날리면 온종일 밖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는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나도 개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종일 전기장판 위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운데, 그럴 때면 자꾸 이웃집에 묶여 지내는 개들 생각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곤 한다. 담장 너머 윗 집은 의정부에 산다는 주인 내외의 별장인데. 일주일에 한 번이나 될까 와서 들여다보는 곳이다. 그런 집 안에 다섯 평 원룸 화장실처럼 작은 크기의 개집을 지어 놓고 스피츠 두 마리를 가둬 두고는 그 안에 한 번씩 사료를 한가득 쌓아놓고 가고 쌓아놓고 가곤 한다.


뼈 마디에 바람이 들정도로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머릿 가죽이 벗겨질 만큼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조잡한 아크릴 판과 철장으로 이루어진 개집의 개들에겐 더위와 추위를 따로 피할 공간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 하루를 꼬박 기다려도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면 가슴 한편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러다 또 어느 틈엔가 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못할 짓이다.

이럴 때마다 사실 나는 속으로 개들한테 어떤 상황이 나은가 헤아려 본다. 사람이 먹다 남긴 짜고 매운 잔반을 먹으며 맹렬한 추위와 살인적인 무더위를 버티는 생이 과연 더는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보다 나은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개의 주인을 만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라고? 그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다들 '시골에서 이렇게 개를 묶어 기르는 건 나름 다 생각이 있어 그러는 거다' 한다. '저분들 전부 개를 좋아해서 이렇게 기르는 거지, 애초에 개를 싫어했으면 진작 개장수에게 팔았다'라고 말이다. 사실 촌에 사는 어르신들은 사람이 남긴 밥을 먹이며 개를 묶어 기르는 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한다. 게다가 나는 아직 포천에서 이방인이다. 그런 이방인 처지인 내가 그분들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충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황이 이러니 얘기가 복잡해지는 거다. 어쩔 땐 차라리 이분들이 그냥 개를 싫어하면 좋겠다 싶다가도 또 생각을 고쳐 먹어, 아니지, 그럼 또 개장수에게 개를 팔 테니까 그건 안 될 일이지 싶다. 그러니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나는 언제나 비겁하지만 눈을 감고 만다.


뿐만 아니다. 날이 풀리면 근처 공동묘지에 그렇게 사람들이 와 개들을 버리고 간다. 푸들이나 몰티즈처럼 한눈에 봐도 집에서 기르던 작은 개들을 말이다.

전에 용인에 있는 한 보육원 자원봉사에 열을 올리던 시절에 겪은 일이다. 주말마다 오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수녀님들 몰래 자꾸 아가들 입에 사탕이나 과자 부스러기를 넣어주었다. 볼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좋게 말씀드려도 그때뿐 그는 자꾸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애들 입에 단 걸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해도 안 걸릴 수 없다.  그분만  왔다 가면 애들이 전부 구석에서 뭔가 오물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분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딱한 마음이 앞서 뭐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어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결코 아이들을 위한 행동이 아니다. 본인 좋자고 하는 일이다. 왜냐면 이분이 이렇게 아이들한테 단 걸 먹이고 가면 애들은 여지없이 그날 저녁을 잘 안 먹는다. 그뿐인가? 단맛에 눈 뜬 녀석들은 단 거 내놓으라고 울고 보챈다. 그럼 우는 애는 애대로, 또 우는 애를 얼르고 달래야 하는 수녀님들은 수녀님대로 보통 힘들어지는 게 아니다. (결국 이 문제는 사무실에서 따로 나서서 해결했다).


아마 나는 이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게 참으로 어려운 얘기구나. 내가 좋다고 남도 좋은 게 아니구나. 당장 좋다고 나중까지 좋은 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아직 제대로 사랑하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 또한 지나간 많은 날들 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남에게 휘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 나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전보다 한 번은 더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행복한 일인지.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인지.


어쨌든 매서운 한파의 기세가 한 풀 꺾인 요즘도 오가며 일 미터 목줄에 묶여 한뎃잠을 자는 개들을 오가며 보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다음에 세월이 흘러 포천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면 그랬던 적도 있었냐고, 사람이 개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던 적 있었냐고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하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고, 가능하면 그 시절은 4월의 봄처럼 더디 오지 말고 새벽처럼 절망으로 어두운 뒤 오지 말고 어서 빨리 달려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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