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통해 떠올린 할머니의 사랑
개 두 마리를 키우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편애다. 겪어 보니 개도 사람과 다르지 않아 자신과 처지 비슷한 대상에게 시기와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우리 개들도 그렇다. 매번 똑같은 그릇에 똑같이 사료를 주는 데도 항상 남의 밥그릇 가서 확인해 본다. 뭐 다른 거 줬을까 하고.
나처럼 개를 여럿 키우는 집에서는 사료는 그렇다 쳐도 간식이나 장난감 같이 민감한 주제의 자원 분배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자칫 한쪽으로 자원이 기울면 여지없이 싸움이 난다. 다행히 우리 집은 진도믹스 복주가 의젓한 성격이라 동생 해탈이에게 뭐든 곧잘 양보해서 주변의 다른 다견가정에 비해 별 탈 없이 지내는 편이긴 하다.
사실 나는 편애의 효능을 온몸으로 느끼고 자란 사람이다. 일단 우리 집만 해도 위로 오빠만 둘이다. 말 다했지. 딸 귀한 집 고명딸이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무던하고 낯도 안 가려 양가 친척 어른의 사랑을 두루 받으며 자랐다. 말해 뭐 할까. 그중 최고는 외할머니였는데 할머니는 노상 남 앞에서 나에 대해 말하길 당신이 가장 아끼는 손주라고 했다. 아마 그건 내가 외가에서 가장 막내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랑의 방식으로 편애를 역성드는 게 아니다. 편애는 혼자 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특별한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한 사람이 그에 반한 배제와 차별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편애는 누군가에겐 약이지만 누군가에겐 독이다. 결코 권장할 수 없는 양육방식이다.
애가 아니라 개 둘을 키우는 처지지만 개를 키운다 해도 나는 둘을 공평하게 사랑하려 무던히 애쓴다. 아니 솔직히 거짓말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미 둘 다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 편애하지 않는 것뿐이다. 복주는 말 잘 듣고 착해서 예쁘고 해탈이는 애교 많고 붙임성 좋아 귀엽다. 그러니 누가 더 낫고 못하지 않다. 그러니까 내게 해탈이와 복주는 짬뽕과 짜장 같은 느낌이다. 짬뽕은 짬뽕대로 좋고 짜장은 짜장대로 좋으므로 식탁에 둘 다 있으면 더 좋은 상태라고나 할까.
하지만 남들 눈에는 내가 해탈이를 더 예뻐하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다. 남들 앞에서 내가 해탈이를 복주보다 덜 혼낸다. 사실 그러는 이유는 복주를 혼내면 해탈이 까지 잘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 편하려고 혼낼 땐 복주를 좀 더 혼내는 편이다. 그리고 희한하게 해탈이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얘가 내 얘기를 듣기나 하나 싶어 혼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이 얘기를 친구한테 하니 사람 아이도 그렇다고 한다. 첫 째는 처음 키우니 실수에 엄격하게 되는데 둘 째부터는 일단 육아라는 경험을 한 번 했으니 긴장을 덜 하면서 키운다고 한다. 해서 어느 집이나 밑으로 갈수록 아이들이 첫째에 비해 자유롭게 큰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개나 사람이나 본질적으로 육아 논리의 본질은 비슷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나를 보면 그 많은 일을 겪고도 사람이 밝다고 놀라는데, 이럴 때마다 어린 시절 받았던 사랑과 세상의 호의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아마 그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 없이 여태 살아오지 못했으리라. 죽고 싶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살고 버틴 건 다 그 애절한 피붙이의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으니.
지금이야 사이가 전 보다 못하지만 나는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컸다. 또 운 좋게 태생적으로 낙천적인 엄마 성격을 닮고 황우 장사 같은 아빠 체형을 닮아 어지간한 사내보다 간담이 크고 좋다. 또 무조건 내 편을 들고 나서는 외할머니 이들의 사랑이 있었으니 그 풍진 세상을 살았어도 나를 지키며 견뎌왔겠지.
어려서 내 기억에 엄마를 인식한 최초의 기억은 봉천동 외삼촌네 할머니 방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가 늦은 밤 나를 데려가겠다며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에 전화가 없었다. 하여튼 갑자기 밤중에 엄마가 할머니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타나 내가 자기를 찾고 울지 않았냐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타났다. 그러자 할머니가 얘는 종일 한 번도 너도 안 찾았다. 그러니 애 두고 가서 쉬어라 몸도 성치 않은데 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엄마 얼굴에 짙게 드리워지는 실망감을 봤다.
막내인 나를 낳은 후 엄마는 전에 나처럼 느닷없는 열병에 시달렸다. 가는 병원마다 다른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 시절 아픈 게 신병인 줄 알고 오지도 않은 신 받으러 계룡산 까지 굿까지 했다 하니 다른 건 몰라도 아마 아프긴 어지간히 아팠던 모양이다. 그 덕에 기억 속 엄마는 항상 숨을 쌕쌕 거리며 누워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엄마의 병환 때문에 나는 외할머니를 따라 동가식 서가숙하며 여러 친척집을 떠 돌았다. 엄마 형제는 물론이고 할머니 형제 할아버지 형제들까지 할머니랑 나는 둘이 버스를 갈아타며 다녔다. 한데 그 많은 사람들이 노상 빈 손으로 다니는 우리를 그렇게나 반겼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살림이 초라하고 궁색했는데 아무도 객시국인 우리를 홀대하지 않았다. 간혹 번듯한 양옥집도 갔지만 대부분 창신동이나 흑석동처럼 달동네 판잣집 같은 델 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너나없이 우리를 환대했고 머물다 갈 때면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리고 다만 얼마라도 용돈을 손에 쥐어줬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바쁘고 빠듯한 형편에 와 봤자 밥이나 축내는 노인에 어린애 하나 오는 게 반가울 리 없었을 텐데 어떻게 다들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그땐 몰랐는데 이 마음이 두고두고 나는 궁금했다. 없이 살아도 밖으로 난 문을 단단히 잡아 걸지 않고 기꺼이 남과 나눌 수 있는 그 선량한 마음 말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하나는 당시 만나는 어른마다 내게 뭐 따로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계란과자가라고 답했다는 거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 과자를 사 주지 않고 다들 닭을 잡아주거나 수박이나 복숭아 같은 걸 사다 내밀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할머니한테 왜 아무도 계란과자를 사주지 않으면서 묻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그러더니 그날 밤 사방이 다 캄캄한데 자던 나를 조용히 깨워 할머니는 내 입에 부드러운 계란 과자를 몰래 넣어줬다. 나는 그때 입천장에서 조용히 부서지던 계란과자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소리를 내면 다른 사람 깬다고 주의를 주며 오밤중에 할머니는 내게 과자 한 봉을 다 먹였다.
그 후로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할머니는 십 년이 넘도록 그렇게 내게 계란과자를 사줬다. 그런데 노인네가 나 과자 사 줄 돈이 어딨어 그러니 매일 외삼촌한테 받는 담뱃값 약값 아껴서 내 과자를 사 모으신 거다. 나중에 할머니는 아픈 와중에도 약봉지에 동전을 한 움큼모아 내게 몰래 주셨다. 얼마나 오래 쥐고 계셨나 새들약국이라 적힌 봉지가 축축하게 젖어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말이다.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은 어려서 만나던 세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회사 생활하며 만난 사은 더 했다.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건 다반사였다. 서로에게 호의는커녕 배려도 없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폭로되기 일 수였고, 곁을 내준 사람은 날 이용하려고만 들었다. 도무지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때마다 다짐한 건 이들의 날 선 말과 행동에 훼손당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함이었다. 결코 이들이 원하는 대로 망가지거나 아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고 해서 이럴 때마다 나는 어려서의 기억을 억지로라도 종종 떠 올린다. 또 항상 쪽진 머리에 하얀 치마저고리를 받쳐 입던 할머니와 덜컹 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며 이제 막 촌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만나러 가던 그때를 억지로라도 떠올린다. 얼싸안고 반가워하던 그들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면 얼마간 또 단단한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 할머니 얘기가 나왔으니 할머니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해탈이 동네 친구 중에 영웅이라는 녀석이 있다. 녀석은 할머니가 키우는데 영웅이 할머니는 인품이 좋고 배울 게 많아 나이 차이도 스무 살 나는데 내가 그냥 언니언니 하며 잘 따르는 분이다. 근데 그분은 늘 내가 사고뭉치인 해탈이 얘기를 하면 항상 내게 이런 말을 한다. “ 얘가 뭘 안다고 그래. 뭐라고 하지 마” 또 내가 해탈이를 어쩌다 야단치면 “ 얘 다 알아. 알고 그러는 거야 저도 다 알아 내버려두어”
가만 생각해 보니 이는 기적의 논리다. 모르면 몰라서 용서되고 알면 아니까 나무라면 안 되고. 그래서일까 해탈이는 동네서 영웅이 할머니만 봤다 치면 허스키 특유의 하울링으로 아주 ‘아우웅 아우웅’ 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또 영웅이 할머니는 아 우리 해탈이 그랬구나 하고 또 한참을 들어준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어릴 적 생각도 많이 나고 말이다. 그러니 사랑은 얼마나 힘이 센가 싶다. 귀밑머리가 희끗해지는 이 나이까지 내가 그 옛날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하고 저 역성 들어주는 영웅이 할머니만 보면 좋아 날뛰는 해탈이를 봐도 그렇고. 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