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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Dec 24. 2022

7화_개가 비둘기 사체를 물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혹한과 혹서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동차 면허를 스물셋에 땄고 이듬해 차를 샀다. 핸들을 잡은 지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간다. 운전을 하기 시작한 후 나는 어지간하면 걷지 않는 사람이 됐다. 운동을 하러 가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에 가 차를 가지고 가서 다 엘리베이터 가장 가까운데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운동하러 갔다.   


그간 한 걸음이라도 덜 걷기 위해 무던히 애쓰며 살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놈의 개랑 살고부터는 도무지 걷지 않으래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우리 개들은 전부 지독한 실외 배변견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두 놈 다 머리 위에 지붕이 있으면 절대 오줌 한 방울도 집에서 안 싼단 말이다.


 처음 개를 키울 땐 설마 그래도 급하면 집에서 싸겠지 했다. 한데 웬걸 아니올시다. 오밤중에도 나를 깨워서라도 밖에 데리고 나가면 나갔지 절대 집에서 볼일 안 본다. 또  “산책” 자체가 개한테는 밥만큼 중요한 일이다. 개들은 온종일 산책 시간만 기다린다. 그러니 전에는 웬만해선 걷지 않던 내가 보통 하루에 적게는  팔천 보에서 많게는 만보 씩 꾸준히 걷게 됐다. 그렇다면 말이다. 나는 이제 걷는 걸 좋아하하는 사림이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여전히 걷고 싶지 않다. 가급적 안 걷고 싶다.

개와 함께 걷는다는 건 특히나 나처럼 두 마리 함께 같이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개 하고 인간은 걷는 속도가 다르다. 또 사람 많고 차 많은 서울에서 밖에 나가 개와 걷는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전후좌우 열심히 살피며 걸어야 한다. 특히 우리 같이 몸집이 큰 대형견은 더 하다. 안 그러면 순간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개 입장에서도 목줄을 한 체로 사람과 호흡을 맞춰 걷는 건 어려운 얘기다. 해서 산책 중 서로 눈 맞추며 소통해야 한다. 처음엔 우리도 이게 안 돼 애 먹었는데 요즘은 척하면 착이다.


그간 개들과 산책하며 실제로 힘든 일을 제법 겪었는데 그중에 최고는 몇 해 전 여름에 겪은 “비둘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겨울 개 해탈이 때문에 여름이면 우리는 그나마 하루 중 가장 선선한 시간인 새벽에 주로 길게 산책한다. 나머지 시간은 주로 짧게 짧게 배변 산책만 한다.


하지만 이런 새벽 산책의 단점이 있는데 너무 이른 시간에 나가면 청소차가 지나가기 전이라 산책길이 쓰레기 더미라는 산적해 있다는 거다. 물론 이 시간에 나 혼자 산책한다면 거리가 더럽다 무너져 내렸어도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나와 함께 걷는 친구들은 코가 예민한 놈들이다. 그러니 전혀 다른 얘기다. 왜냐 밤 사이 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 중 열에 아홉이 음식물이기 때문이다. 희한하지? 서울 도심의 수풀에서 뭔 놈의 음식 쓰레기가 그렇게 나오는지. 돼지 족발부터 닭뼈는 예사다. 먹다만 김밥과 음료수 같은 게 공원과 벤치사이 천지사방으로 널려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산책을 하는데 저 멀리 슬리퍼 한 짝이 보인다. 누가 이런데 슬리퍼를 놓고 갔나 하는데 갑자기 해탈이 녀석이 그 슬리퍼로 달려가  재빠르게 낚아챈다. 그런데 어? 음? 슬리퍼가 왜 저렇게 크지 하고 보니 그건 다름 아닌 비둘기의 사체였다.


해탈이는 이미 죽은 비둘기를 물고 흔들어댔다. 이 상황에 기겁한 나는 해탈이한테 당장 비둘기를 뱉으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녀석은 꿈쩍도 안 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이십 킬로가 넘는 해탈이 녀석의 뒷다리를 양손으로 잡아 거꾸로 들어 마구 흔들었다. 그러자 녀석은 얼마 못 가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죽은 비둘기를 뱉었다. 정말이지 아찔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길 가던 사람들이 모두 서서 괴력의 아줌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 날은 조금 늦게 산책을 나가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후 나는 녀석의 목주를 바짝 잡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뿐만 아니다. 녀석은 툭하면 말썽을 부린다. 한 번은 리드 줄이 느슨할 때 고양이를 보고 튀어 나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그땐 하필 장마가 한창이었다. 그날 녀석의 뒤 꽁무니를 쫓는데 비는 억수같이 내리지 개는 안 보이지 그렇다고 해탈이 찾는 걸 포기할 수는 없지 나는 계속 개를 찾으러 다녔다. 다행히 얼마 안 가 혼자 돌아다니는 개를 어떤 분이 인근 동물 병원에 데려다줘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 덕분에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일들을 깨닫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청소 노동자들의 업무 중 비둘기 사체를 치우는 일도 포함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 그 후로도 계속 새벽 산책길에 심심치 않게 새나 고양이의 사체를 봤는데 낮이 되면 이들이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한 겨울과 한 여름 반드시 밖에서 일해야 하는 분들의 노고도 헤아리게 됐다. 그 후로 가능하면 배달도 이 즈음은 피해서 시킨다.

비둘기 사건 이후로 나는 입마개를 샀다. 한데 해탈이 녀석이 입마개를 죽어라 거부했다. 녀석은 입마개를 스스로 뺄 때까지 오로지 입마개에 매달렸다. 입마개를 뺄 때까진 한 발짝도 떼지 않았다. 보통 고집쟁이가 아니다. 그러니 어떡해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내가 더 조심하자 하며 입마개는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입마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난 정말 한국사람들이 왜 입마개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살면서 여태 적지 않은 나라게 다녀 봤는데 입마개 하고 다니는 개는 외국에서 본 적 없다. 외국 친구한테 물어보니 입마개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고 있다면 그 개는 정말 위험한 개라고 했다. 입마개로 "이 개는 위험하다"거나 "사람을 문다"거나 "가까이 오지 마세요" 같은 정보를 주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물론 다른 나라는 사회는 사람을 공격하는 개에 대한 처벌이 우리보다 훨씬 강력하다. 애초에 입마개를 해야 할 만큼 남에게 위험한 개는 산책 자체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리도 관련 법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개와 걷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시사철 개와 나가 걷다 보니 생태감은 확실히 풍부해졌다. 전에는 몰랐다. 비와 바람이 계절을 어떻게 바꾸는지. 길 고양이 색깔은 어떤지. 봄에서 겨울까지 나무의 색은 어떻게 변하는지. 산과 바다의 냄새의 차이는 뭔지. 그러니 뭐 이 세상엔 정말 나쁘기만 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세상이치려니,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방구석에 있고 싶은 나를 속여 개와 나간다. 자 오늘 또 다른 걸 발견해 보자.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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