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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Dec 05. 2022

6화_반려견 호텔에서 생긴 기막힌 일

입원 기간 궁여지책으로 맡긴 대형견들... 아직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개를 길러 보니'개를 기른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개를 먹이고 재우는 일이 힘들다는 말이 아니다. 무려 개한테도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나와 개의 생각을 맞춰 나가야 하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전에 본가에서 개를 키울 땐 그 개의 책임이 전적으로 내가 아니어서 나는 ‘시간 남을 때’ 개를 예뻐해 주면 됐다. 하지만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개를 기르고 보니 이전과는 완벽하게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개가 먹는 것에서 싸는 것까지 철저히 내가 관심 갖고 지켜 봐야 했다. 그 자체로도 피곤한데 때로는 개와 감정 씨름까지 해야 한다. 말도 못 하는 작은 털 짐승을 두고 죽어라 소리칠 때의 그 자괴감이란. 게다가 딸린 개가 있으니 이전처럼 이까짓 거 안 되면 콱 죽어버리지 하는 생각도 못하게 됐다. 죽고 싶을 때마다 제일 먼저 아른 거리는 게 우리 집 개들이었으니.  


덕분에 개를 집에 들이고 나서 예전처럼 편히 누굴 만나지 못했다. 어쩌다 술을 한잔 하더라도 돌아가 산책시켜야 할 개들을 떠올리면 예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할 수 없었다. 그뿐인가 곧 죽어도 밖에 나가 배변을 하는 녀석들 때문에 개가 집에 있으면 이동시간 다 합쳐 최대 5시간 안에 볼일을 보고 돌아와야 했다. 마치 어린애가 딸린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일 있을 때마다 오빠네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거리가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재작년 겨울 나는 자궁 근종 수술을 받았다. 한데 그 수술이 잘못 돼 수술 후유증을 꽤 오래 앓았다.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구급차를 타기 일쑤였다. 상황이 이러니 아플 때마다 번번이 개들이 골치였다. 어느 날은 내 몸뚱이 하나 간수하지 못하면서 뭔 놈의 개인가 하는 생각에 병실에 누워 비죽비죽 울었다. 개들이 더 나이 들기 전에 다른 데로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와중에 개를 고집한다는 건 감정적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병세가 좋아져 더는 이전처럼 응급실 신세를 지지 않는다. 어쨌든 이렇게 사흘 들어로 앓아눕던 시기엔 개들도 나만큼이나 고생했다. 언제 한 번은 당일 입소가 가능한 서울 외곽의 애견 호텔을 찾았다. 그런데 그만 그 일이 개에게도 나에게도 평생 씻지 못할 상처로 남았다.


평소에 나는 의심이 많아 일 처리를 꼼꼼하게 하는 편인데 그땐 몸이 아파 그랬는지 뭐 했는지 시설을 대충 둘러보고 마당 넓은 것만 확인한 후 개들을 맡겼다. 왜 그랬을까? 지금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일단 넓은 평수와 케이지마다 가득 차 있는 많은 개의 수에 비해 관리하는 사람의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그땐 그게 눈에 안 들어왔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애견 호텔 대표는 자신이 일생동안 유기견 구조와 보호에 힘써 왔다고 했다. 카톡으로 열심히 우리 개들의 일상 사진을 보내줬다. 영상 속에서 개들은 다른 개들과 함께 뛰고 어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때마다 나는 링거 바늘에 하도 찔러 퉁퉁 붓고 엉망이 된 팔을 어렵사리 움직여 대표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땐 몰랐다. 개들을 하루종일 가뒀다가 잠깐 풀어 주면 어떤 개든 다 신나서 뛴다는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그와 매일 대화하며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 말미에 자신이 맡은 단체의 회원이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 구조하고 싶은 개는 많은데 운영 기금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당연히 그래야죠, 좋은 일 하시는데요'라고 하자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가 경제적으로 어떤 곤경에 처해 있는지 일장 연설을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약해진 나는 다만 얼마라도 현금을 찾아 개들 찾으러 갈 때 드리고 와야겠다. 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유기동물에게 새 인생을"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원 후 제일 먼저 나는 개들을 찾으러 나섰다. 마음이 급해서 실제 약속 시간보다 애견 호텔에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사전에 대표에게 전화할까 하다가 한 시간 늦는 것보다 한 시간 빠른 게 낫지 싶어 별 다른 고민 없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물로 향했다. 그런데 어라? 뭔가 느낌이 싸했다. 나는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카톡으로 봤을 때 개들은 전부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는데 그 넓은 운동장엔 한 겨울 매서운 바람만 쌩쌩 불어재꼈다.


또 운동장을 빙 둘러 설치된 닭장 같은 실외 견사에는 개들이 하나 둘 들어앉아 나를 보고 미친 듯이 소리 높여 짖어대고 있었다. 개를 맡길 때 그는 내게 분명 실외 견사에는 사회성이 좋지 않은 친구들 한 둘을 위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우리 개들을 포함한 모든 개들이 실외 견사에 있었다.


느낌이 안 좋지 않아서 건물 주변을 더 살피니 이번엔 어디선가 단체로 개 짖는 소리가 난다. 소리 나는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맙소사. 건물 뒤편에 개 축사를 하나 지어 놓고 비닐하우스에 덮는 검은색 가마니 같은 것을 뒤집어 놓여 있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세히 보려고 그곳으로 향하니 직원이 달려와 부리나케 나를 막아섰다. 그 때문에 더는 그쪽으로 가 보지 못하고 건물로 돌아가 우리 개들을 찾아 부리나케 그곳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순간 검은색 고급 외제차 한 대가 운동장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차 안을 유심히 보니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대표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터질듯한 분노를 느꼈지만 간신히 참으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애견호텔 대표는 일절 내게 알은체 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카톡을 보낸 사람이 말이다.


집에 와 개들을 살피니 둘 다 못 제대로 먹어서 삐쩍 말라 있었다. 그뿐 아니었다. 복 주는 송곳니 끝이 살짝 부러져 있었고 입술에 상처도 심하게 나 있었다. 복주보다 무던한 성격인 해탈이도 호텔링이 힘들었던지 집에 와 몇 날 며칠간 스트레스성 설사를 했다. 당시에 내가 느낀 죄책감과 배신감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 개를 키우며 나 스스로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했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건물 뒤쪽에 자리한 축사의 존재였다. 천막으로 덮여있는 그 축사 안에 분명 개가 있는데 한 둘이 아닌데 그 개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싶어서 말이다.

희한하지? 개를 키우면 키울수록 돈이 된다면 뭐든 하는 인간들의 이기심에 놀란다. 다음으로 더 놀라운 건, 그런 인간을 여전히 믿고 의지하는 개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개를 실제로 키워 보니 개들은 생각보다 영리하고 복잡하게 사고했다. 개들의 감정 층위 역시 다양했다. 개들은 어떻게 하면 내가 웃는지 우는지 정확하게 알고 행동했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내게 고맙고 미안하고 쑥스러운 마음까지 표현했다.  

그러니 말이다. 우리 아무리 돈이 된다고 한들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지 않으면 안 될까? 우리처럼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짐승이 아니더라도 다른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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