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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Mar 12. 2024

17화_돌아온 배달이

입양 열흘 만에 파양 당한 배달이

배달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몹시 들떠 있었다. 아이들 입양 완료 파티를 준비하며 신이 단단히 나 있었다. 이렇게 신났던 게 언제였는지 헤아려 보니 까마득했다. 사고 이후 나는 감정이 무뎌질 대로 무뎌져 (PTSD 후유증) 어지간한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슬픔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누군가 내 앞에서 가슴을 치며 하소연해도 겉으론 귀담아듣는 척하며, 속으로는 하품을 했다. 초상집에 가 목 놓아 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신과 선생님은 이런 내 감정을 PTSD의 흔한 후유증이라고 했다. 주로 참전 군인들이 호소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한빛 엄마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식이 죽고 나니 모든 게 다 시들하다고. 그러게요. 저도 그래요. 그 마음 내 어찌 모를까.


한데 개들을 입양 보내고 나서는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저는 삼풍생존자입니다’ 책을 쓰고부터 이날 이때까지 밤낮으로 나는 죽은 사람들 얘기만 쫓아다녔다. 누굴 만나도 나는 죽음부터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했다. 어쩌다 보니 나를 설명하는 한 줄은 “재난참사 피해자”였다.


새로 주어진 내 일이 싫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냥 기쁘지도 않다. 아무리 내가 남의 감정에 덜 휘둘린다 해도 그렇지 나도 기본적으로 “상실”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관련 글을 쓰며 유가족을 만나고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서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가득 태운 배가 진도 앞바다에 빠져 죽어도 핼러윈 축제에 나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깔려 죽었다고, 그때 자식을 잃은 이들은 그 시간에 사로 잡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게다가 나는 이들과 결이 다르지 않은  당사자다. 그러니 별안간 부지불식간에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슴을 뜯고 우는 사연을 잉크에 피를 풀어 글로 옮겨 쓸 수 있다. 그래서 한다. 세상에 알려야 하기 때문에. 해서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만나며 보낸다.


와중에 배달이 배송이의 일은 예상치 못한 경사였다. 이 작고 하찮은 짐승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그토록 기쁠 줄 몰랐다. 해서 나는 택배들 구조와 임보 입양에 연루된 인연들에게 날을 잡아 근사한 파티를 하자며 혼자서 김칫국을 신나게 마셨다.


서울과 부산의 중간인 대전에서 반려견 운동장을 하나를 빌려 아는 개들도 다 초대해 놀자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전날 먼저 내려가 운동장에 만국기도 걸고 오케스트라도 단상에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소박하게 티셔츠나 한 장씩 맞추자 했다. 그러려면 사전에 수요조사를 해야겠지? 하며 혼자 반팔이 좋을까 후드가 좋을까 사진첩을 뒤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이 유기 됐을 때 일러스트레이터 김삼분님께서 그려준 그림이 감사하게 있어 선생님께 허락을 받고 일을 진행하면 될 것 같았다.


그뿐인가 훗날 녀석들이 방을 뺀 날을 기념해 이매해 유기견 입양 센터에 후원도 얼마 할 생각이었다. 이미 복주와 해탈이 생일 즈음에 케이크값 아껴 여러 동물 보호단체에 후원하고 있으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리라 하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때 갑자기 배달이가 방을 뺀 지 열흘 만에 돌아온 것이다. 배달이를 돌려받은 건 마지막까지 배달이를 돌보던 룽지누나였는데 배달이가 쓰던 용품 그대로 비닐 봉투에 담겨 그대로 배달이가 룽지네로 왔더란다. 그래서 대체 왜 배달이를 돌려보낸 거냐 물으니 중간에서 연락을 대신한 지구 누나가 내게 메시지를 하나 보여줬다.


그 글에는 본인의 다섯 살 난 딸아이가 배달이를 괴롭혀 더는 배달이를 키우지 못하게 됐다는 얘기가 적혀있었다. 아니 그런데 내가 꼰대여서 그런지 도대체 나는 파양사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설령 자기 애가 배달이를 괴롭혔다 치자. 그래서 못 키운다 치자. 그렇다 해도 그렇지 어른이라면 아이 핑계는 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그 책임을 오롯이 다섯 살 난 딸애게 전가하는가.  

<입양가기전 임보집에서 룽지누나랑 신나있는 배달이>
<열흘 후 임보집으로 다시 온 배달이>

열흘 만에 하숙집으로 다시 돌아온 배달이는 놀랍게도 모든 행동이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아마 어린 개한테 열흘이란 시간은 매우 길었던 모양이다. 룽지누나 말에 따르면 전에는 목욕을 해도 아무런 저항이 없던 친구였는데 심지어 목욕을 즐기던 녀석이었는데 이제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고 타월을 보면 자지러진다고 한다. 또 자꾸 어딘가로 숨고 외부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단다. 특히나 가슴 아픈 건 배달이가 쉬고 있을 때 근처로 사람이 지나가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누나는 정성을 다해 배달이를 다시 돌 보고 있지만 주눅이 잔뜩 든 녀석의 행동을 보면 이전처럼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했다.


실제 개들도 파양을 당하면 후유증을 만만치 않게 겪는다. 친한 훈련사가 그러는데 산책하다가 버려진 개는 그 후 죽을 때까지 산책을 거부하고  차에 태워가다 버려진 개는 그 후 절대 타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못 한다 뿐이지 개들이 느끼는 상실의 감정도 사람과 다르지 않다.

<임보집에 온 배달이>

입양 갔던 배달이가 돌아오며 계획하던 파티는 취소 됐고, 우리의 고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배달이 주가가 한창 높을 시기를 한 달 넘게 저 집에 입양 문제로 엮여 입양 체험까지 다녀오느라 최적의 입양시기를 놓쳤다는 데 있다. 그리고 배달이가 돌아오며 내게 생긴 말 못 할 근심은 돌아온 배달이 얼굴이 그새 너무 못생겨진 것이었다. 해서 나이 오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는 오늘 지구 누나와 통화하면서 “이 얼굴로 이제 어떻게 입양 홍보를 해.”라고 못나게 굴었다. 어쩔 수 없다. 입양 시장에서 가장 으뜸가는 건 외모다.


솔직히 배달이를 파양 한 가족에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이 와중에 고마운 점도 하나 있다. 고마운 건 그나마 더 지체하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유기하지 않고 배달이를 고대로 다시 우리한테 돌려보내 준 것이다.


이날 이후 나는 결국 내가 세 마리의 개를 기르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네 마리보다는 낫지만 세 마리라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도 그럴게 사실 한창 예쁜 시기를 지난 시골 개는 입양 판에서 주목을 끌지 못한다. 아마 기회가 있어도 해외에나 있을 것이다. 저 작은놈을 하나 우리끼리 못 키워 외국에 보낸다니 가당치 않다. 사람 아기 입양 보내는 것도 수치스러운 판국에 개까지 보내다니 그 일에 내가 일조하다니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내가 거둬야지. 둘이나 셋이나 또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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