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에 담겨 버려진 두 마리의 시골잡종 개 구조이야기
정초에 한빛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고 이한빛 피디: 2017년 CJ E&M에서 드라마‘혼술남녀’ 촬영 중, 화려한 드라마에 가려진 열악한 노동환경, 불합리와 부조리로 이루어진 방송계 갑질 문화를 끝내 묵도하지 못하고 26 살의 한창나이에 비극적 선택을 한 친구 ) 이야기인 즉, 누가 선생님댁에 박스에 담은 개들을 버리고 갔다는 거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래 저래 개를 키울 상황이 안 됐다. 일단 집 안팎에 사는 고양이만 해도 열이 넘고 두 분 모두 사회적 참사와 재난 연대 등의 일로 자주 집을 비우신다. 그런데 그런 집에 느닷없이 택배박스에 담긴 개 두 마리가 배달된 것이다.
한빛 엄마는 박스를 발견하고 주변에 물어볼 데를 떠올리다, 개를 키우고 있는 내 생각이 나 전화했다 하셨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한데 나라고 별 수 있나. 나 역시 집을 자주 비워 오빠네 개들을 맡기고 다니는 처지다. 이미 집에 있는 두 마리 건사도 벅차다. 게다가 얘들은 품종견도 아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희고 작은 개가 아니라는 말이다. 괜한 연민에 이것들 집안에 들였다 골치만 썩을 것 같다. 나는 잠시 이마를 만지며 고민하는 척하다 저 역시 선생님을 도와드리기 어려운 처지다. 그러니 원칙대로 아산시 유기견 보호소에 일단 보내라 말씀드렸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보니, 온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 아산은 안락사가 시행되는 보호소다. 그러니 이 친구들이라고 다를까. 해서 그날 밤 이전에도 개를 여럿 구조한 지구 누나한테 연락해 이만저만한 사정으로 개들이 버려졌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친구 역시 나와 같은 입장을 취했다. 그도 그럴게 지구 누나 역시 유기견을 두 마리나 혼자 기르고 있다.
그 후로 나는 녀석들을 애써 잊으려 했다. 한데 어쩐지 이 번엔 유독 신경이 쓰이는 거라. 돌아 누워도 바로 누워도 온통 저 꼬물이들 생각이었다. 한데 희한하지 이 무렵 지구 누나 역시 괴뤄웠단다. 그도 그럴게 버려진 생명이라는 게 애초에 모르면 몰라도 알면 그렇게 눈에 밟힌다. 해서 둘이 한 이틀 서로 여러 번의 구조할까 말까 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확실히 나 보다 지구누나가 더 흔들렸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이가 더 있는 내가 어른스럽게 그녀를 달랬다. 혼자 회사 다니고 밥 해 먹고 개 두 마리 키우는 거 이미 보통일 아니잖아요. 잊읍시다. 그러면서 말 끝에 혹시라도 우리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이 친구들을 임보(임시 보호)라도 해 준다면 그때는 우리가 구조합시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날 저녁 기적처럼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볼트 언니였다. 본인도 현재 기르는 개가 두 마리지만 우리가 지속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녀석들 사진을 보고 마음이 그냥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본인이 잠깐 일을 쉬기에 녀석들을 돌볼 수 있을 거라 했다. 음.... 어?? 뭐라고??? 그래요?? 그럼 합시다. 그렇게 우리 셋은 녀석들을 보호소에서 구조해 왔다.
일단 회사원인 지구 누나가 녀석들 입양 홍보 담당 사무직을 맡았다. 그리고 말을 꺼낸 나 한 마리, 볼트언니 한 마리 이렇게 각기 임시 보호를 시작했다. 그간 적지 않은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낸 지구 누나의 진두지휘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구 누나의 말에 따르면 녀석들 마케팅이 잘 되려면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단다. 몰랐는데 유기견 입양 홍보도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나름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되는 대로 개들 주워다 ‘여기 버려진 개 있어요 불쌍하지 않나요?’라고 홍보하하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버려진 사연을 최대한 살려 홍보해야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입 소문을 탄 다는 얘기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해서 지구 누나는 택배 박스에 버려진 녀석들이라는 상징성을 살려 아이들 이름을 #아산택배즈로 하자 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그 후로 녀석들 이름은 택배와 연관된 이름으로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졌다. “배달이”와 “배송이”로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우리가 구조한 녀석들은 성격이 좋아도 보통 좋은 게 아니었다. 꼬맹이들이 밥만 든든히 먹여두면 종일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또 큰 개 작은 개 가리지 않고 친구라면 다 좋아하고, 실내 생활의 규칙도 잘 지켰다. 우리는 단톡방에서 매일 사진을 공유하고 수다를 떨었다. 그때마다 볼트언니나 나나 택배들 아무래도 천재 같다 학계에 보고하자고 유난을 떨었다. 그럼 지구누나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막아섰다. 한데 말이다. 애들이 어찌나 순하고 손이 안 가고 귀엽기만 한지 녀석들 보고 있으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한 달쯤 됐을까. 비비언니와 내게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공교롭게 녀석들을 다른 집에 보내야 했다. 다행히 하숙집은 금방 구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택배즈 가족 찾기 팀원이은 셋에서 다섯으로 늘었다. 그 후 우리는 밤이고 낮이고 상관없이 단톡방에서 매일 아이들 사진을 공유하며 감탄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매일 단톡방에서 어렵게 구한 생명이니 최대한 잘 보내자고 결의에 결의를 다졌다.
여기서 애들을 “잘 보낸다”는 의미는 별 거 아니다. 재산세는 얼마나 납부하는지 자동차 배기량은 어느 정도인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저 우리는 개를 존중할 줄 아는 집에 보내고 싶었다. 한창 예쁠 때 어디서 개 한 마리 데려다 덩그러니 집에 던져두고 한 달에 한 번 마트 가서 사료 한 포대 사다 퍼주면서 저들 할 일 다 하고 시간 남으면 어쩌다 한 번씩 예뻐해 주는 그런 사랑 말고, 개를 가족 구성원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개와 교감하고 많은 시간을 개와 보내줄 그런 보호자를 찾는다는 얘기였다. 그러자니 절로 입양 심사기준이 높아졌다. 게다가 이 프로젝트 참여자가 한빛이네를 빼고도 벌써 다섯이다. 많은 이들의 기대에 맞는 집을 찾아야 했다.
심사는 서류와 면접으로 나뉘었다. 그랬더니 더더욱 입양 문의가 없었다. 대부분 개를 직접 보기도 전에 포기했다. 그러자 나는 자꾸 조급증이 났다. 이러다 한창 예쁠 시기인 “골든 타임”을 놓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지구누나는 한 번에 잘 보내는 게 중요하지 대충 보냈다가 파양 당하면 더 골치 아파 안 되다고 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누나의 조언에 마음을 추슬러도 잘 밤에 누워 “포인핸드”라는 유기견 입양 어플에 들어가 입양 코너에 우리 애들하고 같이 이름을 올리고 입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을 보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버려진 개가 이토록 많을 줄이야. 그뿐인가 전부 하나같이 작고 하얗고 예쁜 애들이다. 그에 비해 우리 애들은 그저 흔하고 평범한 시골 개다. 덕분에 나는 매일 밤 내가 넷을 돌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잠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적처럼 배달이 녀석에게 먼저 입양 가족이 생겼다. 그 후 약속한 듯 배송이한테도 기적처럼 입양 가족이 나타났다. 그렇게 개들은 사이좋게 구조 후 2달 만에 각자 평생 가족을 찾아 임보집에서 방을 뺐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나는 얼른 한빛이네 알렸다. 한빛 엄마도 뛸 듯이 기뻐하셨다.
한빛엄마가 말씀하시길 그간 내게 괜한 짐을 지운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으셨다며 거듭 고맙다고 하셨다. 그런 선생님께 나는 결코 이 일 혼자 한 거 아니라고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많은 사람이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씀드렸다. 정말이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도저히 녀석들을 데려오지 못했으리라. 또 녀석들이 만약 한빛이네가 아니라 다른 집에 버려졌어도 마찬가지다. 아마 모른 척했을 것이다.
한빛 엄마랑 인연이 된 건 416 재단에서 주관하는 재난 참사 피해 자조 모임에서였다. 우린 거기서 첫 만남에 덜컥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세례명까지 밝혔다. 누가 보면 전생부터 알고 지낸 인연이라 여길 만큼 우린 급격히 친해졌다. 그렇다 우리를 그토록 단숨에 단단하게 연결시켜 준 건 불행히도 서로의 생을 처참하게 짓밟은 비극이었다. 그 후로 종종 만나 차도 마시고 밥도 함께 먹으며 속 편히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이렇게 아프다. 선생님은 어떠시냐. 나는 이게 사무친다. 선민 씨는 요즘 어떠냐 서로 묻고 보듬으며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겪은 사람은 다르다. 이 차이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하나는 우리는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특유의 감정이 있다. 그건 버틴 것. 견디는 것 그런 것들, 또 직접 당하지 않고는 도저히 모르는 일들이 만든 감정들.
이런 연유에서 우리는 세상을 쉽게 믿지 않고 사람을 경계한다. 말해 무엇할까 그건 우리가 참사 피해자나 유가족이 되어 만난 비정한 세상의 민낯 때문이다. 우리의 투쟁을 정쟁의 도구로 보고 무조건 혐오와 막말을 하는 사람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욕설과 조롱. 이들 사이에서 우리의 속은 남 모르게 천천히 시들어갔다. 물론 이 보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행보를 응원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사람 맘이 그렇지 않은가. 온종일 받은 친절 보다 저녁나절 한 대 얻어맞은 따귀가 오래 기억나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나는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기꺼이 돕는다는 걸, 이 작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용기를 낸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위험과 경계를 넘어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가고 있다는 것.
이 일을 통해 한빛이네나 나나 의의의 순간에 연대의 힘을 또 한 번 느꼈다. 박스에 담겨 버려진 녀석들을 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였던 그 착한 마음들을 아마 나는 사는 동안 내내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고맙다. 다들
그런데 말이다. 이 글을 쓰는데 다급하게 지구 누나에게 연락이 왔다. 글쎄, 배달이 녀석이 다시 하숙집으로 열흘 만에 돌아왔다는 (파양)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