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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Jan 01. 2020

설리와 구하라의 죽음을 기억하며

공정거래 아이돌 소비운동을 제안합니다

천수를 누린 일가친척의 죽음보다 일면식도 모르는 청춘의 비명횡사가 더 가슴 아픈 것은 아마도 인지상정이겠지, 어쨌거나 나는 이 꽃 같은 아이들이 꽃 다운 나이에 차례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아프다. 어쩌면 나 역시 젊은 날에 수 없이 많은 시간 벼랑 끝을 거닐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고,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나는 '청춘'도 '젊음'도 다 싫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무기력의 시절이 나는 너무나도 싫다. 해서 안다. 젊어서 더 죽고 싶다는 것을, 나 역시 희한하게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니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았으므로.


각설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해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가족을 만든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원 가정은 내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하여 더러 망가진 형태의 가족 안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불행이 그곳에서 시작된다. 왜냐면 가족관계가 탄탄한 사람들은 정신과에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과 선생님 피셜이다) 그렇지 않은가, 언제라도 긴급하게 내게 애정을 주고 전적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 어째서 낯선 사람에게 가 속 얘기를 털어놓겠는가 (잠깐, 가족이 있든 없든 마음이 아픈 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꼭 받길, 꾸준히 받길)


불행히도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데서 자란 아이들은 하나같이 서둘러 연애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도 애정이 절박한 나머지 연애 상대를 잘못 고르기 쉽다. 게다가 여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기 때문에 사랑받는 방법도, 사랑을 받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러니까 상대의 사랑을 끝없이 확인하고 집착하거나, 혹은 자신과 비슷한 정서상태를  가진 불안정한 사람에게 끌리는 거다. 왜? 불안한 게 익숙하니까, 여태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해서 계속 이들은 불안정한 연애를 한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 하지만 나쁜 연애를 자꾸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의 경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런 연애는 영혼을 갉아먹는다. 긴 말 않겠다. 구하라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보통 사람은 이 지경까지 자신을 몰고 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절박했던, 혹은 모든 걸 다 걸었던 관계가 파멸되면 이들의 상처는 중첩되고, 그 상처가 사랑의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다.


그리고 중요 한 건, 이들의 데뷔 나이가 한국 나이로 11살 13살이었다는 거다. 여러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들도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 타인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면 자존감이 무너지는데, 이 아이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개인적으로 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데에 우리 사회에 수많은 공범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레기와 악플러에 대해서는 입이 아파 말도 하기 싫다. 그리고 구하라 동영상 확인했다는 판사 새끼, 이 새끼도 참 나쁜 새끼지, 그러니 니들은 진짜 손가락이라도 곪아라, 눈 병이라도 나던지.


됐고, 그 외에 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 중 첫째가 이들의 가족이라고 본다. 어쨌거나 이 아이들 주변에 단 한 사람이라도 아이들을 전적으로 사랑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부모가 아니었다면 조부모라도 아니 그냥 이 아이들이 힘들고 지칠 때 언제든 파고들 넉넉한 품을 가진 진짜 어른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런 어른들이 이 아이들을 끝까지 사랑했다면 아마 이 아이들이 이지경까지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둘째로는 그 어린 나이에, 이 아이들을 기획사로 부른 사람들이다. 백번 양보해서 아이들이 원해서 갔다고 치자. 그럼 적어도 아이들을 그렇게 혹사시켜서는 안 됐다. 한창 사랑받아야 할 나이에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자라야 할 시기에 이 아이들은 매일같이 경쟁에 내몰렸다. 또 살인적인 스캐쥴에 휴대폰 압수, 성형과 다이어트 강요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도 당했다. 그럼 이들에게 정서적 케어가 있었을까? 아니 오히려 학대가 있었겠지, 이쯤에서 궁예질을 해 보면 분명 이들의 기획사 안에는 누군가 이들의 교육을 빙자하여 혹독한 가스 라이팅을 한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무대 위에서 그 어린애들이 그런 각 잡힌 퍼포먼스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전에 싸이 때문이던가, 소녀시내 때문이던가 한참 한류가 시작하던 시절, 미국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한국의 틴에이져들이 저렇게 완벽하게 군무를 할 수 있냐고 한국의 십 대들은 반항을 잘 안 하는 모양이라고, 해서 그게 아니라,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이들에게 혹독하게 연습을 시키기에 무대에서 잘하는 거다. 하니 그가 깜짝 놀라며 아마 미국이었으면 그 아이들 부모들이 전부 아동학대로 고소당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  이상 소년과 소녀를 소비하지 말자.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을 굶기고, 예쁘게 분칠 해서 무대에 세우지 말자. 더 이상 그런 쇼도 보지 말고 사지 말자. 수요가 없어야 공급이 없어질 것 아닌가. 물론 스스로 좋아서 즐기며 하는 걸그룹, 보이그룹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 누구의 통제도 없이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가운데 본인이 원해서 24시간 연습한다면 좋다. 말리지 않겠다. 아마도 이들은 연아킴이나 손흥민처럼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정말 공장식으로 아이돌을 찍어 내는 회사의 콘텐츠는 우리 다 같이 사지도 말고 보지도 말자.


아니 진짜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공정무역 커피를 사 먹자는 나라에서, 아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축구공을 만드는 나이키를 불매하자는 나라에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 소녀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고 소비하는 것이 말이다.


그러니 우리 불공정 아이돌 제품 불매하자. 그래야 또 다른 설리와 구하라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 나는 이 말을 내가 하는 것도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은 응당 가요계 선배들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마 신해철이 살아있었으면 했을 거다. 해서 나는 요즘 그의 부재가 아쉽다. 하여 나라도 말하는 거다. 우리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이 아이들에게 그래서는 안 됐던 거라고, 그러니 더 이상 소년소녀들을 상품으로 소비하지 말자고 말이다.


+ 추가: 고작해야 아이들의 무대를 봐주고, 음원 스트리밍해 주는 게 뭐 대단한 소비라고, 그딴 악플을 달지?

당신 논리대로라면, 악플 싫다고 징징대는 연예인은 연예인 자격이 없으니 당신들이 애초에 관심 주지 말고 악플 달지 않았으면 되는 거잖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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